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드게임은 10만 종에 이른다. 수없이 많은 게임이 탄생해, 어떤 것들은 잊히고 어떤 것들은 명작으로 남는다. 이 코너에서는 보드게임의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100선을 뽑아 소개한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이 보드게임을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은 그리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마텔이 판권을 가진 보드게임들은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멘사 셀렉트로 유명한 <블로커스>나 보드게임 산업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보드게임 카페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는 <텀블링몽키>, 단어 게임의 대명사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보드게임 <스크래블>까지. 이 모두가 마텔이 판권을 보유한 게임이다(단, <스크래블>은 지역에 따라 해즈브로가 판권을 보유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모습의 우노
<우노>는 그런 마텔의 게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게임이다. 한국에서는 <텀블링몽키>의 아성에 다소 밀려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팔린 양으로 따지면 누적 2억 개 가까이 되는 베스트셀러다. 이 게임이 세상에 등장한 후 약 50년간 수많은 파생작이 만들어졌고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와 <우노 포켓몬>이 있다.

펼쳐진 카드와 숫자가 같거나 색이 같은 카드를 한 장 내려서 펼쳐진 카드를 덮는다.

낼 카드가 없다면, 더미에서 카드를 한 장 가져온다.
<우노>는 돌아가며 손에 든 카드를 한 장씩 내다가 다 없앤 사람이 승리하는 간단한 게임이다. 자기 차례에는 버린 카드 더미 맨 위에 있는 카드와 숫자나 색깔이나 기능이 같은 카드를 1장 낸다. 만약 낼 수 있는 카드가 없거나 내고 싶지 않다면, 카드를 내는 대신 카드 더미에서 카드 1장을 가져온다. 이렇게 가져온 카드가 낼 수 있는 카드라면 그 카드를 바로 내도 되고, 아니면 바로 차례를 마쳐도 된다. 자기 차례에 카드를 내면서 손에 카드가 1장만 남게 되었다면, 카드를 내면서 “우노”라고 외쳐야 한다. 만약 이때 “우노”라고 외치지 않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지적당하면 벌칙으로 카드 더미에서 카드 2장을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지적당하기 전에 다음 플레이어가 차례를 시작했다면, 그 후에 지적당해도 벌칙은 없다. 누군가 자기 카드를 모두 없애면 라운드가 끝나고 점수를 계산한 후 다음 라운드를 진행한다. 점수는 자기 카드를 모두 없앤 사람만 계산하며, 다른 사람들이 없애지 못하고 손에 남긴 카드에 따라 점수를 얻는다.

우노와 비슷한 규칙의 게임들. 이들 모두 ‘크레이지 에이츠’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게임들이다.
<우노>의 뼈대는 플레잉 카드를 이용한 구전 게임 ‘크레이지 에이츠’다. ‘크레이지 에이츠’는 차례마다 앞 사람이 낸 카드와 숫자 혹은 수트가 같은 카드를 내서 손에 있는 카드를 모두 없애는 게임으로, <원카드 클래식>이나 <타키> 등 다양한 상용 게임의 모델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우노>는 ‘크레이지 에이츠’를 최초로 상용화한 게임이다. 이런 종류의 게임들의 성패는 대개 특수 카드를 얼마나 잘 배합했느냐에 달렸는데, <우노>에도 특유의 특수 카드가 들어있다. 차례 진행 방향을 바꾸는 리버스 카드, 다음 차례의 사람을 건너뛰고 그다음 차례의 사람이 진행하도록 하는 스킵 카드, 다른 사람 1명과 손에 든 카드를 통째로 교환하게 해주는 카드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그중에서도 <우노>를 상징하는 최고의 카드는 다음 차례의 사람이 카드 4장을 받게 만드는 와일드 드로우 4와, 원하는 규칙을 마음대로 적을 수 있는 와일드 규칙 만들기 카드다. 물론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노>의 파생작들도 다 저마다의 테마에 따라 고유의 특수 카드가 추가되어 있어, 서로 다른 테마의 <우노>를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노의 다양한 특수 카드가 게임의 재미를 살렸다.
‘Uno’라는 단어는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모두에서 숫자1을 의미하기에, 이 게임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게임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 이 게임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이다. 1971년에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멀 로빈스 작가가 만들어 팔던 것이 시작이다. 멀 로빈스 작가는 원래 가족이나 친구들과 크레이지 에이츠를 자주 즐겼는데, 규칙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보태 전용 카드를 만들면 상품성이 충분히 있겠다고 판단해 <우노>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발소 손님들을 상대로만 판매했는데, 입소문만으로 5,000개가 금세 동이 나고 말았다. <우노>의 입소문은 오하이오주 인근의 일리노이주까지 흘러들어갔는데, 일리노이주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던 장례사 로버트 테작도 이 게임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로버트 테작은 멀 로빈스 작가를 찾아가 <우노>에 대한 판매권을 사들였고, 자신의 장례식장 뒤에 사무실을 마련해 <우노>를 팔기 위한 회사 인터내셔널 게임즈를 설립했다. <우노>는 이후 20년간 순조롭게 성장하며 인터내셔널 게임즈의 부를 키웠고. 1992년에 인터내셔널 게임즈가 마텔에 합병되면서 마텔의 게임이 되었다.

멀 로빈스 작가가 만든 첫 번째 우노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우노 레트로 에디션. 1970년대의 투박하고 거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마텔의 상품이 된 이후로도 <우노>는 승승장구했다. <우노> 이후 ‘크레이지 에이츠’의 상용 버전 게임이 여럿 나오긴 했지만, <우노>의 아성을 따라간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우노>는 근 45년간 이렇다 할 개정 없이도 다른 유사작품들이 넘보지 못할 만큼의 사랑을 계속 받았고, 2016년에 45주년 기념판이 나오면서 처음으로 규칙 등이 리뉴얼되었다. <우노>의 특별한 카드인 ‘와일드 규칙 만들기 카드’도 이때 생긴 카드다. 마텔에게 있어서 <우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후속작 격인 제품이 계속 시도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마텔은 <우노>에 이어 스페인어로 숫자 2를 뜻하는 <도스>라는 후속작을 만들어 <우노>와의 연결점을 강조하기도 했고, <우노>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페이즈 10>이라는 게임의 패키지에 ‘<우노>를 만든 회사 제품’이라는 점을 주요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페이즈 10의 영문판에는 ‘우노를 만든 제조사의 게임’이라는 홍보 문구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두 게임의 공통점이라고는 둘 다 마텔의 게임이며, 카드를 활용하는 게임이라는 점 밖에 없는데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서 마텔을 상징하는 바비 인형의 위상도, 마텔의 위상도 많이 떨어졌지만 <우노>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어쩌면 마텔이 없는 미래가 오더라도 <우노>만은 곳곳에서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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