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13세 이상│2-5명│60-90분
"역사는 굽이치는 강물과 같이 세대를 가로질러 흐른다. 그 흐름 속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나의 게임에 진지하게 파고들기를 좋아하는 보드게이머들에게 인기 있는 테마 중 하나가 문명 건설이다. 이런 테마를 가진 게임은 대개 플레이어가 국가를 세우거나 정치와 사회, 문화를 관장하고 외교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게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문명 게임들만이 가진 재미가 있다. 문명 게임 특유의 재미는 PC 기반 게임인 <시드 마이어의 문명>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비디오 게임 영역에서도 문명 게임은 대부분 실시간이 아닌 턴제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보드게임과의 연관성이 높고, <시드 마이어의 문명>처럼 비디오 게임에서 보드게임으로 변환된 경우도 있다.
문명 게임은 복잡하고 독특한 재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특징이 장벽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비디오 게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보드게임의 특성상, 문명 소재의 보드게임은 그 복잡한 재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거나 게임이 매우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0년 출시된 <7원더스>는 카드 드래프트 방식을 활용해 이런 문제를 극복하여 빠르고 간결한 문명 게임의 장을 열었다. <7원더스> 이후 카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가벼운 느낌의 문명 게임들이 종종 출시되기도 했다.
<역사의 흐름>은 대만 회사인 모아이디어스에서 출시한 문명 게임이다. <역사의 흐름>을 만든 제시 리 작가는 이전에도 카드를 사용한 문명 게임 <건즈 앤 스틸>을 모다이디어스를 통해 출시한 바 있는데, 이 작가의 게임 중 문명 테마로 더 각광을 받는 작품이 그 이후에 나온 <역사의 흐름>이다. 이 게임은 대만 버전이 출시된 이후 미국의 테이스티 민스트럴 게임즈를 통해서 향상된 그래픽으로 재출시되기도 했다.
이 게임은 분야별로 다양한 카드들을 모으고 카드의 효과를 활용해 더 많은 점수와 더 많은 카드 확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독특한 점은 자신의 다음 차례가 돌아오기 전까지 충분한 투자를 해야 카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갖고 있는 자원들을 카드에 투자하고 다음 차례에 투자한 자원을 지불한 뒤 해당 카드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이미 투자된 자원만큼을 지불하고 상대가 노리는 카드를 빠르게 가져올 수도 있는데, 이를 '저격'이라고 부른다. 대신 기존에 투자한 플레이어는 그 보상으로 더 많은 자원을 보너스로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카드의 확보를 위해서는 넉넉한 자원을 써야 하지만, 오히려 상대의 저격을 유도해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는 일보 후퇴 이보 전진의 묘를 꾀할 수도 있다.

얼핏 보기엔 이 생소한 방식의 진행이 문명 테마와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시대별로 업데이트되는 카드들, 1명만 세울 수 있는 위인과 고유의 효과를 주는 불가사의, 군사력 비교에 달린 상대 공격 등 이전의 문명 게임들이 갖고 있던 고유 요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역사의 흐름>은 나만의 문명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가는 재미로 하는 게임이지만, 한편으로는 상호작용이 강한 게임이기도 하다. 일단 게임의 기본 행동인 투자와 저격을 할 때도 상대의 자산 현황을 고려하여 움직일 수밖에 없고, 좋은 카드 선점을 위한 눈치 보기는 물론이고 방어를 위한 군사력 경쟁도 필요하다. 이 게임은 볼륨으로 따지면 <7원더스>와 <시드 마이어의 문명>의 중간쯤에 있다. 분야별 카드 구성이 다양하고 고유의 기능을 가진 카드도 있기에 <7원더스>에 비하면 게임 전에 숙지해야 할 것들이 많은 편이지만, 투자와 저격, 그리고 카드의 기능과 자원 획득을 위한 행동만 이해하면 게임을 풀어가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모든 카드가 빠짐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카드의 기능들을 잘 숙지할수록 카드 선점이나 획득한 카드 활용 전략을 자연스레 모색할 수 있다. 첫 게임에서 규칙을 익힌 이후부터는, 하면 할수록 재미가 진국처럼 우러나는 매력적인 게임이다.
글 유재혁(주식회사 보드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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