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4세 이상│2~4명│한 편당 60분
"대역병 시대 이후,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포칼립스 이후, 71년
“우리와 같은 마지막 남은 무리들은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세계를 지탱해 왔다. 우리는 3세대에 걸쳐 “안식처”라 부르는 바다 위 시설 여러 군데에 나뉘어 살고 있다. (중략)
우리의 보급이 이제 예전만큼 대역병을 막지 못하는 모양인 데다, 남은 보급품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숨기려고 무던히도 애쓰지만, 이제 와서 그걸 누가 모를까.”
레거시 게임
2008년, 전 세계에 퍼진 역병을 치료한다는 내용의 협력 게임 <팬데믹>은 신선한 테마와 독특한 협력 시스템으로 오래 사랑 받은 지맨게임즈의 베스트셀러이다. 2015년, 지맨게임즈는 이 게임에 스토리와 시간 개념이 도입된 레거시 시스템을 도입하여 <팬데믹 레거시>라는 새로운 게임으로 만들었다. 레거시는 ‘유산’이라는 뜻으로, 보드게임에서는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을 통해 처음 공개된 시스템이다. 첫 게임이 영구적으로 후속 게임에 영향을 주며, 모두 완료된 후에는 다시 처음부터 진행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말한다. 레거시 시스템은 보드판이나 카드에, 플레이어들이 진행했던 게임의 내용을 적거나 스티커로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플레이어 구성에 따라 독자적인 흐름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팬데믹 레거시 시즌 1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을 통해 처음 등장한 생소한 시스템은 전 세계의 보드게임 팬들에게 기대 혹은 당황을 주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카드를 찢거나 보드를 변형해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당혹감은 다른 보드게임과 비교해 싸지만은 않은 이 게임의 상품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시장에 진입함과 동시에 그런 우려들을 불식시키고 단시간에 보드게임긱 보드게임 랭킹 1위에 입성하는 등 거침없는 인기몰이를 시작했고,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많은 대작 게임의 공세를 막아내며 보드게임긱 랭킹 1위에서 내려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팬데믹 레거시 시즌 2>는 시즌1과 마찬가지로 게임 내 일부 요소가 다음 번 게임에 그대로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첫 게임에서 진행한 게임의 흔적 일부는 두 번째, 세 번째 게임에도 그대로 남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게임의 회차에 따라 열두 달로 나누어지는 스토리가 이어진다. 게임 내의 시간 흐름에 따라 새로운 정보들이 공개되므로, 12회 차에 해당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을 12월까지 제대로 끝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세계를 훌륭하게 지켜냈겠지만, 시즌 2는 그런 플레이어들의 지난 경험과는 다른 평행세계에서 시작된다. 시즌 1에서의 대역병으로 세계가 멸망한 지 70여 년 후의 이야기로, ‘안식처’라는 바다 위 은신처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역병은 육지를 여전히 점령 중이고, 육지의 도시들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바다 위 안식처마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이번 모험의 주인공들은 아포칼립스 이후의 새로운 세대, 바다 위에서 태어나고 바다 위에서 자라며 육지를 상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세계를 구할 사명을 이어받은 새로운 세대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지 지켜보는 것도 이 게임의 중요한 흥밋거리다.
일회용 게임?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을 실제로 플레이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논란이지만, <팬데믹 레거시 시즌 2> 역시 ‘일회용 게임’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한번의 시나리오를 완결하기 위해서는 최소 12회, 최대 24회의 게임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1회차마다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른 걱정을 해보아야 할 판이다. ‘끝까지 플레이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말이다.
시즌 2는 시즌 1 종료로부터 71년 후의 세계다. 하지만 시즌 1에서 플레이어가 세계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가정하에 이어지는 스토리인 만큼,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거의 스핀오프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시즌 1의 시나리오가 시즌 2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레거시 카드, 자금 지원, 게임 종료 업그레이드, 비밀문서, 보관함 같은 시스템은 시즌 1의 것을 그대로 차용했지만 새로운 장치들도 추가되었다. 조금 더 발전한 장치들과 더 풍성해진 서사가 시즌 1을 경험한 사람에게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충분히 새롭게 다가갈 것이다.
글 강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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