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넓은 보드게임의 세계, 너무나도 많은 게임 사이에서 입문자를 위한 게임을 찾는 신규 보드게임 플레이어를 위해 게임을 엄선해 추천하려 한다. 이번 시간엔 수많은 보드게임 상 중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상 중 하나인 독일 게임상(Deutscher Spiele Preis) 수상작 중에서 골라봤다. 독일 게임상은 독일의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의 투표로 인해 수상작이 정해지는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독일의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이 추천한 게임들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추천작으로 선정된 게임들에 대해 알아보자.
선정 기준
• 수상 연도: 세상 만물이 그렇듯이 보드게임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에 따라 새로운 보드게임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유행을 타고 특정 종류의 게임이 성행하다가 잠잠해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은 게임을 중심으로 하여, 가능한 한 시대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게임들을 추천작으로 정했다.
• 난이도: 연령, 보드게임 경험 유무 등 다양한 조건의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기 적합한 정도에 따라 난이도를 나눴으며, 단계에 따라 조금씩 어렵고 복잡한 게임으로 골랐다.
1단계
1단계의 게임은 차례 중에 플레이어가 해야 할 선택이 복잡하지 않으면서, 그 결과가 바로 보이는 편인 게임들이다. 그런데, 독일 게임상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보드게임 플레이어 중에는 숙련자의 빈도가 높은 만큼 숙련자를 위한 게임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게임들은 대체로 규칙이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기에 독일 게임상 본상 수상작만으로는 1단계로 삼을 쉬운 규칙의 게임이 많지 않아, 1단계에는 어린이 게임 부문 수상작까지 범위를 넓혔다.
젝스님트 - 1994년 수상작
만 8세 이상 | 2~10명 | 20분
'6 가져가!' 정도 의미인 독일어 제목이 붙은 보드게임 <젝스님트>는 1부터 104까지의 숫자 카드만을 사용하는 게임으로 규칙이 매우 간단하다. 라운드가 시작되면 탁자 위에 카드 4장을 펼쳐 놓아 카드 열 4개를 만들고,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기 손에 카드 10장씩을 든다. 모든 플레이어는 각자 자기 손에 든 카드 중 1장을 선택해서 비공개로 내고, 동시에 공개한 후 가장 낮은 카드부터 카드 열에 붙여 놓는 식으로 진행한다. 기존 열의 가장 끝에 있는 카드들 가운데 공개한 카드보다 더 작은 숫자이면서 둘 사이의 차이가 가장 작은 카드가 있는 열에 붙여 놓는다. 이때 한 열에 여섯 번째인 카드를 놓는 플레이어는 그 카드를 제외하고 해당 열에 있던 카드 5장을 가져가야 한다. 이 카드들은 손에 든 카드와 섞이지 않게 자신의 앞에 놓는다. 플레이어들이 손에 든 카드를 모두 다 내면 한 라운드가 끝나며, 각자 자신의 앞에 놓인 카드에 표시된 소의 머리 수 합계만큼 벌점을 받는다.
처음 한 게임을 마친 직후에는 좋은 카드를 잘 받았는가에 좌우되는 게임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젝스님트>는 단 한 번의 라운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묘미다. 처음 게임을 하고 각자 받은 벌점을 계산한 다음, 벌점 66점을 넘은 플레이어가 없다면, 바로 이어서 다음 라운드가 시작된다. 여러 라운드에 걸쳐 게임이 진행되기에 카드의 운에 의한 영향은 점차 희석되며, 결과적으로 누가 주어진 카드를 더 잘 운영했나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에 참여한 사람의 수에 따라 한정된 숫자 범위의 카드만 사용하는 규칙을 적용하면 게임은 운에 의한 영향은 거의 사라지고, 더더욱 전략적으로 변한다. 간단한 규칙으로 인해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전략적인 게임 진행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게임이다.
카르카손 - 2001년 수상작
만 8세 이상 | 2~5명 | 35분
프랑스 남부에 고대 로마인이 건설한 요새에서 기원한 카르카손은 거대한 성이 돋보이는 도시이다. 클라우스 위르겐 브레데 작가는 이 도시를 방문한 후 영감을 받아, 카르카손의 전경을 여러 조각의 타일로 나눠 성과 길, 수도원 등을 만들어 나가는 <카르카손>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자기 차례인 플레이어는 타일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기존에 놓인 타일에 그림이 이어지도록 놓는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타일이 하나둘 놓이고, 마치 직소 퍼즐이 완성되는 것처럼 플레이어들만의 카르카손이 만들어진다. 타일을 놓은 다음엔 '미플'이라 불리는 자기 게임 말 중 하나를 방금 놓은 타일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데, 타일에 표시된 성, 도로, 들판, 수도원 중 한 구역을 정해서 그 위에 놓는다. 이때, 다른 타일에서 미플이 이미 놓여 있는 구역과 연결된 구역에는 미플을 올려놓을 수 없다. 단, 연결되지 않은 구역에 미플을 올려놓았다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두 구역이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이 게임의 묘미 중 하나다. 점수를 얻는 시점과 점수 계산 방법은 타일의 어느 구역에 놓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미플은 점수를 얻기 전까지는 타일 위에 남아 있게 되기 때문에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카르카손>은 게임이 진행됨과 함께 아름답게 완성되어 가는 카르카손의 모습이 인상적인 게임이다. 규칙이 간결하기에 쉽게 익힐 수 있으며, 운과 실력 요소가 적절하게 조화된 것이 강점이다. 처음 <카르카손>을 접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미플이 놓인 길, 성, 수도원 등을 완성하는 것에 급급하지만, 게임에 점차 익숙해지면 상대가 공들인 구역에 올라타서 같이 점수를 얻거나 상대에 대한 견제 요령이 생기며, 좀 더 전략적인 게임 진행이 가능하다.
<카르카손>은 <카탄>과 더불어 독일식 보드게임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게 한 주역이며, 인상적인 게임 말로 인해 '미플'이란 단어를 탄생시키는 등 보드게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아이스 쿨 - 2017년 어린이 게임 부문 수상작
만 6세 이상 | 2~4명 | 30분
<아이스 쿨>의 게임 방식은 장기알이나 바둑돌을 이용해 내 말을 손가락으로 튕겨 상대의 말이 게임판 바깥으로 떨어지게 하는 '알까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이스 쿨>은 알까기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펭귄 모양의 게임 말이 사용되며, 이 게임 말 아래쪽은 반구형으로 되어 있으며 무게 중심도 아래쪽에 잡혀 있어 오뚝이처럼 잘 균형을 잡고 있다. 무게 중심이 아래쪽에 잡혀 있으면서 회전에 민감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을 어떻게 타격했느냐에 따라 매우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게임 말의 뒤쪽 중앙 부분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게임 말이 직선으로 움직이고, 중앙에서 벗어난 왼쪽이나 오른쪽 뒷부분을 튕기면 튕긴 방향으로 회전하며 움직인다. 또한, 게임 말의 머리 부분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게임 말을 뛰어오르게 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들은 돌아가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한 플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는 개구쟁이 펭귄이 되어 게임판 여러 곳을 누비며 물고기를 모아야 하고, 한 플레이어는 반장 펭귄 역할을 맡아 다른 플레이어를 쫓아 다녀야 한다. 게임판은 위가 뚫린 형태의 상자 여러 개를 합쳐 만들며, 벽과 문이 달린 학교 건물이 무대가 된다. 여러 개의 문 중에서 3곳에 물고기 말이 꽂혀 있고, 개구쟁이 펭귄 역할을 맡은 플레이어들은 자기 게임 말이 이 문을 통과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물고기 말과 점수 카드를 받기 때문이다. 반장 펭귄 역할을 맡은 플레이어는 물고기 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게임 말이 다른 플레이어의 게임말에 부딪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부딪힌 개구쟁이 펭귄을 잡은 것이 되고, 그에 따라 점수를 얻는다. 다른 이들과 목표를 달리하는 플레이어가 존재함으로 인해, <아이스 쿨>은 누가 최적의 경로를 빠르게 움직이냐와 같은 단조로움에서 벗어났으며, 추격전으로 인한 긴장감이 더해졌다.
<아이스 쿨>은 미취학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기 좋은 게임이다. 고차원 적인 사고 능력보다는 누가 더 능숙하게 게임 말을 움직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에 플레이어의 나이가 많고 적음이 게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2단계
2단계 게임들부터는 일종의 성장 요소가 있다. 플레이어들이 차례 중에 한 선택이 점차 쌓이며, 나중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보다 나중을 위한 포석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고, 1단계의 게임들보다는 어렵지만 규칙이 아주 복잡하지는 않으면서 직관적인 편이라 금방 익힐 수 있다. 그저 승리를 위한 전략을 찾는 것이 그보다는 조금 어려울 뿐이다. 2단계에 선정된 세 게임은 독일 게임상뿐만 아니라 해당 연도의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도 수상한 게임들로, 독일의 보드게임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은 게임들이다.
카탄 - 1995년 수상작
만 10세 이상 | 3~4명 | 75분
<카탄>에서 플레이어들은 '카탄 섬'이라 불리는 무인도에 도착한 개척자 역할을 맡아, 자신이 이끄는 세력이 가장 먼저 일정 수준에 도달하도록 경쟁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무, 밀, 양, 철과 같은 각종 자원을 얻고, 얻은 자원을 활용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 처음 만든 마을에서 도로를 연장해 새로운 빈 땅으로 뻗어나가야 하고, 빈 땅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고, 마을을 도시로 발전시키는 등의 개척 활동을 벌인다.
카탄 섬에서 어떤 자원이 어디서 생산되는지는 처음 게임을 준비할 때 무작위로 정해지며, 마을을 지을 수 있는 지점엔 한 플레이어의 마을만 존재할 수 있기에, 플레이어마다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건설할 때 필요한 자원은 누구에게나 같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마다 각기 다른 자원이 남거나 모자라게 된다. <카탄>에선 서로에게 남는 자원을 다른 플레이어와 거래를 통해 교환할 수 있고, 주사위값에 따라 게임 중에 자원의 가치가 달라지기에 서로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협상하게 된다. 거래를 통한 자원 교환은 서로 경쟁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인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장치가 된다.
독일을 휩쓸었던 <카탄>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며 보드게임 업계의 부흥을 이끌었으니, 현대 보드게임은 <카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탄>은 전략 게임의 기준선을 세웠으며, 이후 만들어지는 전략 게임들은 <카탄>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보드게임의 제왕'이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아직 현대 보드게임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카탄>은 반드시 경험해봐야 할 존재라 할 수 있다.
도미니언 - 2009년 수상작
만 8세 이상 | 2~4명 | 30분
<도미니언>은 카드만을 사용하는 게임으로, 카드로 이뤄진 자신의 왕국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게임은 자기 차례에 카드를 사용하고, 카드를 구입하여 자기 덱에 추가하고, 정리한다는 매우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게임의 진행을 보자면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여러 종류의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결코 단조롭지 않다.
게임을 시작할 때는 모두가 같은 구성의 카드로 이뤄진 카드 더미를 사용하지만, 이후 어떤 카드를 구입했느냐에 따라 각자의 카드 더미가 달라져 간다. 자신이 구입해서 카드 더미에 넣은 카드만 사용할 수 있기에 어떤 카드를 구입했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행동이 달라진다. 카드를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플레이어의 판단과 선택에 따르기 때문에, 플레이어 각자가 지향하는 전략적 방향에 맞춰 카드를 구입하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상황과 자신이 구상하는 전략에 따라 카드를 구입하며 전략을 완성하는 것은 상당한 재미를 준다.
<도미니언> 역시 보드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게임이다. 각자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카드를 선택해서 추가하여 자신의 카드 더미(덱)를 완성해 나가는 게임 방식을 가리켜 '덱 만들기'라 부르는데, 이 게임 방식이 바로 <도미니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미니언>이 발매된 이후, 덱 만들기 방식을 사용한 게임이 유행처럼 숱하게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해 나갔다. 현재까지 갖가지 덱 만들기 게임이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언>은 덱 만들기 게임의 전형을 만들어낸 시초이면서도 아직 그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보적이라 하겠다.
아줄 - 2018년 수상작
만 8세 이상 | 2~4명 | 30~45분
<아줄>은 포르투갈의 왕 마누엘 1세가 에보라 왕궁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고용한 타일 장인들이 '아줄레주'라는 새로운 타일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바로 그 타일 장인이 되어 자신이 맡은 벽면을 타일로 장식해야 한다. 게임 중에는 이국적인 무늬의 아름다운 타일들이 사용되며, 이 타일을 가져와 각자 자기가 맡은 벽면을 하나씩 채워 가야 한다. 벽면은 각자의 게임판으로 묘사된다.
자기 차례에는 여러 타일 진열대 중 하나에서 한 종류의 타일을 모두 가져온다. 게임판의 각 줄마다 같은 종류 타일들을 채워 나가는데, 타일을 적게 가져오면 타일을 채울 수 없고, 반대로 너무 많이 가져와서 넘치면 감점을 당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잘 계산하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엄청난 감점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순서로 자기 게임판을 채워 갈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모든 플레이어의 게임판과 선택할 수 있는 타일들은 공개되어 있다. 이렇게 공개된 선택지를 놓고 순서대로 골라 가져가게 된다. 라운드마다 타일이 준비되고 난 다음에는 무작위적인 요소가 없고 모든 선택지가 공개된 만큼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과 계획하는 실력이 크게 작용한다. 자신이 이득을 보기 위한 설계도 중요하고, 상대에게 감점을 주려는 설계도 중요하다. 아름다운 그림과 구성물, 타일 채우기라는 평화로운 테마, 간단한 규칙을 가진 <아줄>에선 차가운 두뇌 승부가 펼쳐진다.
3단계
3단계의 게임들은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게임들이다. 치밀한 전략적 판단하에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런 선택이 누적됨에 따라 다양한 효과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이 단계부터 숙련자 게임이라 볼 수 있으며, 습득해야 하는 규칙의 양도 차례마다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아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3단계의 게임을 처음 즐길 때는 규칙을 익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여유 있게 진행할 것을 권한다.
아그리콜라 - 2008년 수상작
만 12세 이상 | 1~4명 | 90분
<아그리콜라>는 유럽의 한 농부 가족이 되어 자신의 농장을 경영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2명으로 이뤄진 한 가족을 맡으며, 가족 구성원들이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게 함으로 농장을 발전시켜야 한다. 자기 차례인 플레이어가 자기 가족 구성원 게임 말 하나를 게임판에 표시된 여러 개의 행동 칸 중 아직 다른 게임 말이 놓이지 않은 칸 하나에 놓고, 해당 칸의 효과를 적용받는 식으로 진행되며, 이런 게임 방식을 가리켜 '일꾼 놓기'라 부른다. 게임의 핵심 규칙인 일꾼 놓기 방식은 농장 경영이라는 테마와 그럴듯하게 어우러지며,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렇게 행동 칸을 선택하고 효과를 적용함으로써, 곡식과 채소를 심을 밭이 일궈지고, 가축을 키울 우리가 지어지고, 집이 확장되는 등 농장이 점차 발전해 나간다. 생활이 안정화됨에 따라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태어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단,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 수확이 일어난 다음엔 비축한 식량으로 가족 구성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겨울이 찾아오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대비가 충분하지 못했을 때는 구걸을 해야 하는 불명예가 주어진다.
<아그리콜라>의 등장은 보드게임계에 큰 충격을 줬다. 요즘에야 <아그리콜라>보다 많은 구성물의 보드게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게임이 첫선을 보인 2007년만 하더라도 수많은 구성물과 함께 수백 장의 카드를 사용하는 보드게임이란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심지어 <아그리콜라>를 만든 룩아웃 게임즈에서는 번역해야 할 분량이 많아 다른 언어 판본이 나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그리콜라>가 성공을 거둔 이후, 숙련자 게임들의 대작화가 본격화됐다.
테라포밍 마스 - 2017년 수상작
만 14세 이상 | 1~5명 | 90~120분
<테라포밍 마스>는 제목 그대로 화성을 지구와 같이 인류가 살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을 그린 게임이다. 하지만, 화성 개척사업에 뛰어든 거대기업의 총수인 플레이어들의 목표는 화성 개척 그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화성 개척사업이 끝난 뒤 각 기업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며,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점수가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테라포밍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판에는 테라포밍의 진척도를 나타낼 세 가지 지표가 있으며, 이 지표 모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게임이 끝난다. 한 라운드를 세대라 표현하는데,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테라포밍 사업에 대한 기여도가 평가되고 정부 지원에 반영된다. 점수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테라포밍에 기여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기온을 올리거나 숲을 만드는 등의 행동을 통해 점수와 자금, 자원을 얻는 것이다. 자금과 자원, 생산력 등이 많을수록 테라포밍에 참여하기도 쉽고 기업을 발전시키기도 쉽다. 플레이어들이 운영하는 기업마다 특화된 부분이나 효과가 다르기에 자기 기업에 맞춰 전략을 구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테라포밍 마스>는 플레이어의 판단에 따라 끊임없이 투자가 집행되며 거대 기업이 변모하는 게임이다. 테라포밍 사업에 대한 투자는 물론이고 자기 기업의 기술 및 정책에 대한 투자도 함께 이뤄져야만 승리할 수 있다. 기업의 기술 투자를 나타내는 프로젝트 카드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한 것인 만큼 게임을 보다 현실감 넘치게 만들어 준다. 게임 진행의 상당 부분이 프로젝트 카드를 사용하여 그 효과를 받는 것이기에, 프로젝트 카드는 게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더군다나, 모든 프로젝트 카드는 그 내용이 각기 다른 데다 게임 속 세계관을 반영하여 플레이어들이 배경 서사 속으로 녹아들게 만든다. <테라포밍 마스>는 2016년 발매 직후 전 세계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을 열광시켰다. 심지어 보드게임 모임에서 '또 테라포밍 마스를 한다'는 의미의 '또포마'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게임이다.
아크 노바 - 2022년 수상작
만 14세 이상 | 1~4명 | 90~150분
'새로운 방주'란 뜻을 가진 <아크 노바>는 자신만의 동물원을 건설하는 게임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동물원은 동물을 모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 보호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동물원에 동물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각 동물의 특성에 맞는 우리와 연구 시설을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동물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건설하고 관리해야 한다. 동물원에 동물이 다양하고 많아질수록 매력 점수가 높아지며 찾아오는 관람객이 많아져서 더 큰 수입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특정 동물 유형 전문가가 되어 동물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고, 멸종 위기의 동물을 번식시켜 다시 야생으로 되돌리는 동물 보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보호 점수를 높이는 것 역시 병행해야 한다. 즉, <아크 노바>에서는 매력 점수와 보호 점수를 가장 잘 조합한 동물원이 최고의 동물원이다.
<아크 노바>의 특징적인 규칙 중 하나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행동이 약해지고, 선택하지 않은 행동이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이 규칙은 특정한 행동에 대해서 아직 충분히 강력하지 않기에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고 약하더라도 그 행동을 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를 플레이어에게 안겨준다. 이 딜레마를 적절히 극복하는 것이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다. 게다가, 행동들은 업그레이드 효과를 통해 강화되는데 모든 행동을 업그레이드할 수는 없기에 전략과 상황에 맞춘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판 위의 공간을 관리하는 것도 플레이어의 몫이다. 게임판의 칸 수는 제한되어 있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필요한 건물이 많아지니 도형 퍼즐 하듯 건물들을 배치하게 된다. 이 외에도 <아크 노바>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상당한 수준의 전략적 깊이를 자랑한다.
<아크 노바>는 2022년 현재 독일 보드게임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이 주목하고 있는 숙련자 보드게임이다. 고난도 전략 보드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할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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