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기술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들의 경주에 열광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재미있는 테마에 대해 다루는 보드게임도 당연히 많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자동차 경주는 보드게임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역동적인 속도감과 박진감을 정적인 보드게임으로 재미있게 옮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끔 말도 안되는 완성도로 이런 선입견을 깨는 게임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히트: 질주의 열기(이하 히트)>다.
경주가 시작되기 직전에 출발선에 가지런히 늘어선 자동차들
자동차 경주와 마찬가지로 <히트> 역시 남들보다 빠르게 달려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각 플레이어는 거의 같은 내용의 카드 더미를 가지며, 더미에 속한 대부분의 카드에는 이번 차례에 얻을 수 있는 속도가 표시돼 있고, 각자 7장의 카드를 손에 들고 게임을 진행한다.
게임의 기본은 기어와 카드이다. 플레이어는 차례마다 기어를 1단계 올리거나 내릴 수 있으며, 기어의 단수는 이번 차례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수가 된다.
사용한 카드의 수를 합친 값이 이번 차례의 속도가 되며, 그만큼 이번 차례에 전진하게 된다. 기어는 최대 4단까지 올릴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단이 높을 수록 빠른 주행이 가능하다.
카드 중에는 자동차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스트레스 카드가 있다. 스트레스 카드를 사용하면 더미에서 새롭게 카드를 펼치는데, 정상적인 속도의 카드가 나올 때까지 카드를 펼치고, 그 카드에 표시된 속도가 스트레스 카드의 속도가 된다. 따라서 얼만큼의 속도가 추가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을 만들어준다.
자기 차례에 기어를 2단에 놨다면, 카드 2장을 내고 자동차를 움직인다.
차례를 마칠 때마다 손에 든 카드가 7장이 되도록 각자의 더미에서 카드를 뽑아 다음 차례를 준비한다. 단, 카드를 뽑기 전에 원한다면 손에 든 카드 중 주행 관련 카드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기에 빠르게 달려야 하는 차례와 속도를 줄여야 하는 차례에 적절히 대비할 수 있다.
실제 자동차 경주가 그렇듯 빨리 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히트>에서 플레이어는 각 커브 구간을 지날 때 정해진 속도로 감속해야 하며, 정해진 것을 넘어선 속도로 커브를 통과하면 차에 무리를 주게 된다.
게임에서는 이를 자동차가 열을 받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자동차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스핀 아웃 처리되어 코너 바로 앞에서 저속으로 다시 출발해야 하는 벌칙이 부가된다.
커브 구간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어를 저단에 놓고 적은 수의 카드를 내는 것이다. 대신 이런 안전한 선택의 대가는 커브 구간을 통과한 이후에 다시 속도를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들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자들에게 뒤져지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손에 든 카드를 잘 관리하는 플레이어라면 손에 0이나 1같은 카드를 여러 장 든 상태에서 기어를 고단으로 유지한 상태로 커브 구간을 통과하고, 다음 차례에 빠르게 치고 나갈 것이다.
히트의 자동차 운영에 어려움을 더해주지만, 실감나는 경주라는 재미를 더해주는 열 카드
물론 손에 든 카드가 완벽하지 않을 때에는 자동차에 살짝 무리를 주고 조금 빠르게 커브 구간을 통과할 수도 있다.
각 플레이어는 서킷에 주어진 조건에 따라 6장 정도의 초기 열 카드를 받는데, 이 카드들은 최초에 카드 더미 이외 별도의 열 카드 공간에 놓이며, 이 열 카드들은 플레이어가 커브 구간에서 기준 속도를 초과할 때, 플레이어가 사용하고 버린 카드 더미에 추가된다.
이후 카드 더미가 소진되면 이 열 카드들이 손에 들리기도 하는데, 사용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카드이기에 플레이어에게 큰 부담을 준다. 따라서 열 카드 공간에 남은 열 카드들은 플레이어의 차가 얼마나 더 많은 열을 받아도 버틸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라 할 수 있으며, 이 카드가 줄어들 때마다 플레이어를 압박하게 된다.
다행히 기어를 저단에 놓고 달리거나 최후미에서 달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냉각을 얻으면 열 카드를 다시 열 카드 공간으로 보낼 수 있다.
또 열 카드를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열 카드를 받으면서 좀 더 속도를 얻거나, 한 번에 기어를 두 단 변속하는 특별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열 카드를 절대 받으면 안 되는 존재로 여기기 보다는 손에 든 카드나 기어 상황이 완벽하지 않을 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일종의 자원으로 보고 이를 관리하는 쪽이 더 수월하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 이 열 카드의 존재야 말로 게임 제목이 <히트>인 이유라는 점을 명심하자.
커브 구간은 슬립스트림으로 이익을 보기 좋은 장소다.
코스 숙지와 함께 중요한 것이 페이스 조절이다. 선두부터 꼴찌까지 차례대로 진행하는 이 게임에서 선두가 가지는 이점은 거의 없으며, 꼴찌 자리에 있으면 앞서 언급한 냉각 이외에도 속도에 1을 추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앞 차에 바짝 붙여서 주행을 마치면 슬립스트림으로 인해 2칸 전진해 앞차를 추월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 모두 선두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이점이다.
모두가 어떤 카드를 낼 지를 선택한 다음에 선두부터 차례를 진행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앞차의 바로 뒤 위치를 노리기는 쉽지 않지만, 부스트 기능을 쓸지를 결정할 때 앞차들의 주행을 보며 슬립스트림을 노리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커브 진입 구간 등 자동차들이 일렬로 놓이기 쉬운 곳에서는 다른 자동차들이 몰릴 만한 구간을 노려서 슬립스트림으로 이익을 보는 일이 자주 나올 수 있다.
각자의 카드 더미에는 빨리 달리는 카드와 느리게 달리는 카드가 골고루 있으므로 게임 중 자연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 마련이지만 잠시 뒤쳐졌을 때, 페이스 조절로 얻는 이익을 최대한 활용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승부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누구보다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라!
경쟁하는 자동차들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기에 인원이 많을수록 서로 많이 부딪히고 다른 플레이어를 이용하는 상황이 자주 나오며, 더욱 즐거운 경주를 펼칠 수 있다.
이는 인원이 적을 때 이 장점이 크게 살아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히트>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전설 모듈이라고 불리는 가상 플레이어 추가 규칙이 있다.
매 차례 펼치는 카드 1장에 각 가상 플레이어들의 주행이 모두 나와 있어서 규칙 적용이 간편하며, 이들 가상 플레이어들의 수준 또한 상당해서 여러 플레이어와 함께 게임을 즐기는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가상의 플레이어를 추가하는 전설 모듈 이외에도 튜닝, 기상 상황, 여러 레이스로 이루어지는 챔피언쉽 등 다양한 변수를 추가하는 확장 모듈이 있어서 여러 규칙을 조합해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다.
더군다나, <히트>에는 커브 구간과 직선 주로의 배분, 총 주행 랩 수 등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서킷 4개가 수록돼 있어 다양한 환경에서 경주를 즐길 수 있다. <히트>와 함께 자동차 경주의 열기 속으로 빠져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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