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러시', 얼핏 보면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커피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아늑함과 러시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분주함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커피 러시>라는 말만큼 이 게임에 어울리는 제목도 없다. 커피의 아늑함과 러시의 분주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카페 경영 서바이벌 게임, <커피 러시>를 만나보자.
<커피 러시>는 카페를 경영하며 SNS 평판을 관리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유명한 카페 거리의 작은 카페 경영자가 되어,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아내야 한다. 카페를 경영하는 방법은 주문을 받고, 재료를 수급하고, 주문에 맞게 재료를 배치해 음료를 내놓는 식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담아낸 이 구조는 모바일 게임 등으로 한 번쯤 플레이해보았을 ‘타이쿤 게임’과 비슷하다. ‘좋아요’와 ‘싫어요’를 받는 방법도 간단한데, 제때 주문을 처리하면 ‘좋아요’를, 주문이 밀려 손님이 돌아가게 만들면 ‘싫어요’를 받는다.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선 재료판 위에서 움직이며 재료를 확보해야 한다.
재료 수급은 게임말을 재료판 위에서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임판 위에서 세 칸을 움직이고, 게임말이 밟고 지나간 칸의 재료들을 하나씩 가져간다. 아무 업그레이드도 하지 않은 상태라면 한 차례에 확보할 수 있는 재료는 세 개까지다. 주의해야 할 점은 재료를 가져오는 단계와 음료를 제조하는 단계가 구분되어 있지 않기에, 가져온 재료로 곧바로 음료를 제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져온 재료는 즉시 커피잔에 담아야 하며, 한번 담은 재료는 다른 잔으로 옮길 수 없다. 커피잔은 플레이어마다 세 개씩만 주어지며 게임 중에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부터 계획을 잘 짜야 한다. 원한다면 커피잔 하나의 재료를 통째로 버릴 수도 있지만, 재료를 골라서 버릴 수 없기에 손실이 크다.
각종 음료에 사용될 재료토큰이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어졌다.
특정 주문카드가 요구하는 재료토큰을 컵에 다 모았다면 주문을 처리할 수 있다. 재료토큰의 수가 모자라도 넘쳐도 안 되며, 정확하게 맞는 주문카드만 처리할 수 있다. 재료가 다 모였다면 주문카드는 몇 장이든 처리할 수 있으며, 만약 이때 처리한 카드 중 스페셜티 메뉴가 있다면, 스페셜티 메뉴 하나당 러시토큰 1개씩을 받는다. 러시토큰은 재료를 수급하는 단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하나를 낼 때마다 한 칸을 더 이동할 수 있고, 이동한 만큼 재료를 추가로 수급하게 해준다. 처리한 주문카드는 개인판 왼쪽 위의 좋아요 영역으로 옮겨 두는데, 게임이 끝나고 여기에 모여있는 카드 한 장마다 1점을 받는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라는 단서가 붙는 이유는 게임 도중에 처리한 주문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례를 시작할 때 처리한 주문카드를 버리고 카페를 원하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더 많은 재료를 더 쉽게 수급할 수 있다.
주문서에 표시된 재료를 다 모았다면 해당 주문을 처리할 수 있다.
재료를 수급하고 주문을 처리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지만, 문제는 차례를 마칠 때마다 시간이 흐른다는 점이다. 자기 차례를 마칠 때는 대기열에 있는 모든 주문카드를 아래로 한 칸씩 옮겨야 하는데, 마지막 대기열에 있던 주문카드가 대기열을 벗어나면 그 주문카드는 싫어요 영역으로 가게 된다. 게임이 끝나고 여기에 모인 카드는 벌점이 되며, 심지어 5장이 모이면 게임이 곧바로 끝나 버리기 때문에 초반에 싫어요를 많이 받기라도 하면 그대로 게임이 끝나고 패자가 될 위기에 노출되어 버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각자 자기 ‘커피’를 만들며 카페를 경영해 나갈 뿐인 흐름이지만, 이 게임은 생각보다 상호작용의 영향이 크고, 이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심해진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 <커피 러시>의 ‘러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차례를 마칠 때 주문 대기열에 있던 카드들이 한 칸씩 밑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해서 대기열을 벗어난 카드는 '싫어요' 하나가 된다. 그래도 러시토큰 하나는 남기므로 다음 주문 처리할 때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누군가 주문카드를 처리하면 그 플레이어의 다음 플레이어와 그다음 플레이어에게 새 주문카드가 추가된다. 만약 처리한 주문카드가 2장이라면 추가되는 카드도 2장씩이다. 게임이 진행되다보면 모두가 하나둘 업그레이드를 해서 재료 수급도 빨라지고 한꺼번에 처리하는 주문도 많아지는데, 그렇다 보니 새 주문카드가 들어오는 속도도 빨라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하기 버거워지는 꼴이다. 이 ‘러시’가 시작될 때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많은 주문카드가 개인판 바닥을 뚫고 내려가서 한꺼번에 많은 벌점을 받고 무너지기 십상이다.
게임의 소재와 아트워크가 아늑함을 연출하기에 처음엔 눈치채지 못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커피 러시>는 타이쿤보다는 타워 디펜스에 가까운 게임이다. 게임 중에 착실하게 점수도 모아야 하지만 이 후반전의 디펜스에 실패하면 패배가 거의 확정되기 때문에, 얼마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충분한 투자를 하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다. 개발 초기에는 싫어요 5개를 모으면 게임에서 탈락하는 규칙이었지만, 한의진 작가가 “열심히 했는데 탈락하면 슬프다”는 이유를 들어 모두가 점수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밀려오는 일을 적시에 처리하는 ‘러시’도 중요하지만, ‘커피’의 느긋함 역시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플레이어가 주문을 처리하면, 처리해야 할 새로운 주문이 들어온다. 게임 중반이 되면 주문이 러시하듯 밀려들어올 것이다.
치열한 ‘러시’ 스타일을 ‘피크타임의 카페를 운영한다’라는 이야기에 그럴싸하게 녹여낼 수 있었던 데는 구성물의 힘도 한몫했다. 대충만 보아도 ‘커피’를 표현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각각의 특징을 잘 살려 입체조형으로 만들어진 구성물과 그 구성물을 담는 컵, 주문카드마다 섬세하게 그려진 음료들까지,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에 넘치고 모자람이 없다. ‘커피’도 ‘러시’도, 충분히 담아낸 <커피 러시>, 오늘의 한 잔으로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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