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 사람으로 이뤄진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좋은 게임들에 대해
두 사람의 가족
보드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 가장 적당한 인원수는 몇 명일까요? 상당수의 보드게이머는 4명이라 답할 겁니다. 실제로 많은 게임들이 2~4명을 적정 인원으로 하면서, 4명이 즐길 때 가장 재미있다고 평가받곤 하죠. 보드게임이 가족에게 잘 맞는 아주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의 수가 3~4명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메인 기사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이제는 2명 가족, 혹은 1명 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인원에서라면, 앞서 두 기사에서 쓴 것처럼 보드게임의 다양한 특장점을 떠나 오로지 순수하게 게임으로서의 재미로만 놓고 이야기하기 좋습니다.
'가족의 대화' 편에서 소개해 드린 게임들은 3명부터 시작해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 즐기기에 적합한 게임입니다. '가족의 모험' 편의 게임들은 2명이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지만, 여느 보드게임처럼 다수 인원에서 묘미가 사는 게임들이죠. 그리고 많은 게임에서 보조 규칙으로 1인 규칙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 1명용 게임을 이야기하려면 별도의 설명이 뒤따릅니다. 그렇기에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2명이 즐기기에 좋은 게임에 집중해 소개하려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즐길 보드게임은 사실 상당히 많습니다. 2명부터 시작하는 게임들 대부분이 무리 없이 즐길 수 있고, <스플렌더 대결>, <7원더스 대결>, <자이푸르> 같이 널리 알려진 2명 전용 보드게임도 꽤 많습니다. 사실 몇 개 게임을 골라 추천하는 것이 좀 무색하기는 합니다만, 가족이 어울려 즐기기 좋은 게임을 생각하며 골라 보았습니다.
위즈스톤 시리즈
제 유년 시절을 곱씹어 보면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버지가 바둑 기사급으로 바둑을 두신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린 제가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죠. 곱씹어보면 제가 머리가 좀 더 커진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제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차분하거나 생각이 깊은 성품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바둑판을 앞에 둔 때만큼은 사색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둑과 직접적으로 통하는 규칙을 기반으로 변형 바둑의 느낌을 주는 <그레이트 킹덤>. 고전 게임 ‘스트라테고’와 비슷하면서도 숫자 대결 규칙에 변주를 주어 상당한 심리전이 펼쳐지는 <나인 나이츠>. 숫자를 기억해 선택하고 활용하는 독특한 전략이 인상적인 <킹스 크라운>. 천재 바둑 기사로 명성을 떨친 승부사 이세돌이 바둑을 모태로 직접 디자인한 위즈스톤 시리즈의 3가지 게임은 다들 여러 수를 내다보는 진중한 수싸움이 펼쳐집니다.
게임들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저는 위즈스톤 시리즈를 보면 제 어린 시절 바둑돌 너머를 보는 것 같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게임들을,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이에게 사색을 알려주기 좋은 게임으로 추천합니다. 왕, 왕국, 기사 등의 테마로 중후한 느낌도 강하죠. 물론 어른들도 게임을 익혀서 가르치게 될 것이므로, 바둑과 체스에 능숙한 어른이 아이에게 완숙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우의 수를 찬찬히 계산하고 승리를 목표로 내 수를 신중하게 한 수 한 수 놓는 고전 전략 게임의 저력은 똑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콰왈레
<위즈스톤>이 부모와 자녀가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는 바둑이나 체스 같은 느낌이라면, <콰왈레>는 그보다는 오목에 가깝습니다. 친구들끼리 모눈종이 한 장에 각자 펜만 꺼내면 뚝딱 즐길 수 있었던, 경쾌한 템포로 시원하게 공방이 펼쳐지는 맛이 <콰왈레>에 담겨 있습니다.
오목을 거론하긴 했는데, 이 게임도 사목 게임입니다. 가로/세로/대각선 한 줄을 자기 자갈로 완성하면 승리하죠. 방법도 오목만큼 간단합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자갈 하나를 게임판에 올려놓고, 그 칸의 모든 자갈을 들어 한 칸씩 옆으로 옮겨가며 칸마다 자갈을 하나씩 놓으면 됩니다.
오목이 그러하듯 특별한 기술이 없이 느낌 가는 대로 놓는데도 상황이 풀리는 듯한 전개도 인상적이고, 게임이 진행될수록 길이 보이는 느낌도 좋습니다. 자갈을 쏙 빼닮은 목제 타일이 자그락 자그락 딸깍하는 소리도 기분 좋게 들리고, 완성되고 나면 게임판도 예쁘게 보여서 매력적입니다.
규칙이 간단한데 꽤 깊이 있는 느낌으로 즐기기 좋고, 구성물이 큼직큼직해서 금방 꺼내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미덕입니다. 저녁 설거지 내기 게임 한 판, <콰왈레>로 어떠십니까? 하다못해 식기세척기 돌리기나 분리수거 쓰레기 내놓기를 걸고 즐기기에도 아주 괜찮을 겁니다.
하모니즈
<하모니즈>는 2~4명이 즐기는 빡빡한 퍼즐 게임입니다. 풍경 토큰을 가져와 자신의 작은 개인판에 놓고, 서식지 조건이 갖춰진 동물들을 그곳에 살게 합니다. 서식지 조건을 잘 보고 동물 카드를 골라와야 하고, 풍경 토큰도 내가 가진 동물과 앞으로 가져올 만한 동물을 고려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작은 공간에 치밀하게 토큰을 집어넣어야 하는 만큼, 1점이라도 더 내기 위해서는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계산하게 됩니다.
적당한 수준의 규칙에서 빡빡한 계산이 뒤따르는 <아줄>, <캐스캐디아>와 유사한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만큼 2명 게임에서 쾌적하게 돌아갑니다. 내 차례가 돌아오기 전까지 중앙판의 풍경 토큰도 동물 카드도 많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 계산이 꼬이는 경우도 좀 더 적고요.
구성물이 상당히 예쁘다는 것에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 내 게임판이 어떤 모양으로 구성되더라도 게임이 끝나고 나면 오밀조밀 예쁜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너무 빡빡한 수싸움까지 생각하지 않고 가벼운 느낌으로 즐기기에도 괜찮은 게임입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쁘게 그려진 동물 카드를 보기만 해도 감탄이 먼저 나올 겁니다.
캐터펄트 킹덤
지금까지 수싸움과 계산이 위주인 게임들을 많이 소개했으니, 마지막으로는 훨씬 가볍게 즐길 만한 게임을 소개하겠습니다. 알까기, <앵그리 버드>, <포트리스> 등이 떠오르는 피지컬 슈팅 게임, <캐터펄트 킹덤>입니다. 게임 두 세트를 합치면 4명까지도 즐길 수 있다지만, 기본적으로는 2명의 대결 구도로 전개되는 게임입니다.
각자 성벽을 쌓고 병사들을 세웁니다. 자기 차례가 되면 다양한 카드들을 사용하고, 캐터펄트로 고무공을 쏘아 댑니다. 상대의 병사를 먼저 다 쓰러뜨리는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이 게임은 공을 쏘아 맞혀서 무너뜨리는 원초적인 재미가 핵심입니다. 배신자를 사용해 상대방의 캐터펄트를 사용한다든지, 사용된 카드의 능력을 복사해서 쓴다든지 하는 등 웃음이 터지는 상황들이 더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그냥 심플하게 성벽을 와르르 무너뜨리며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누리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탑탑>, <텀블링 몽키> 등 균형 감각을 기반으로 하는 파티 게임들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캐터펄트 킹덤>은 2명의 대결 구도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만큼 2명이 적정 인원으로 충분히 신납니다. 포물선으로 공을 쏘는 캐터펄트와는 달리 앞으로 곧게 쏘는 발리스타, 적진으로 다가가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덤비는 충차, 쳐들어오는 바이킹과 화염 탄을 쏘는 삼두룡 등 다양한 확장이 있어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습니다. 성벽을 무너뜨리며 스트레스도 함께 날려 버릴 수 있으니, 어쩌면 가족의 진정한 필수 게임인지도요?
글 신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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