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드게임은 10만 종에 이른다. 수없이 많은 게임이 탄생해, 어떤 것들은 잊히고 어떤 것들은 명작으로 남는다. 이 코너에서는 보드게임의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100선을 뽑아 소개한다.
<보난자>는 농부가 되어 콩을 심고 수확하는 게임으로, 게임 중에 일어나는 협상 과정이 인상적이다. 이 게임의 상자에는 ‘콩 심은 데 돈 난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보난자>가 콩을 심어 수확하고, 이를 통해 돈을 번다는 이 게임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
<보난자>는 <아그리콜라>, <패치워크>, <르 아브르>, <뤄양의 사람들>, <카베르나>, <오딘을 위하여> 등의 게임으로 유명한 우베 로젠베르크 작가의 대표작이다. 우베 로젠베르크 작가는 콩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최근에 발표한 <오딘을 위하여>에는 게임에 등장하는 자원으로 두 종류의 콩을 등장시켰으며, 용어집에 다시 한 번 자신이 얼마나 콩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보난자>는 발매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확장판과 스핀오프 작품이 출시되고 있다. 이는 <보난자>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임 진행
<보난자>는 콩을 심고 수확.판매해 가장 많은 금화를 획득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게임 시작 전, 플레이어들은 카드를 5장씩 나눠 갖는다. 남은 카드는 뒷면이 보이도록 쌓아 탁자 중앙에 놓는다.
8 종류의 콩 카드
위 그림은 게임에서 심는 콩 카드들이다. 콩은 8종류가 있으며, 카드 하단에는 각 종류의 콩을 수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화가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강낭콩은 2장을 수확하면 금화 2개를, 3장을 수확하면 금화 3개를 얻는다. 푸르대콩은 4장을 수확하면 금화 1개, 6장을 수확하면 금화 2개, 8장을 수확하면 금화 3개, 10장을 수확하면 금화 4개를 얻는다. 수확해서 얻는 금화는 게임 중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콩 카드 뒷면에는 금화가 표시돼 있는데, 수확한 카드 중 일부를 뒤집어 금화로 만들어 플레이어가 갖고, 남은 카드를 버림 더미에 놓는다.
칠리콩 3장을 수확했다. 칠리콩 3장은 금화 1개이므로, 수확한 칠리콩 3장 중 1장은 금화가 표시된 뒷면으로 뒤집어 플레이어의 금화 쌓는 곳에 놓고, 나머지 2장은 버림 더미에 놓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콩들은 종류마다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 번에 같은 콩을 여러 장 팔수록 더 많은 금화를 얻을 수 있다.
게임의 기본이 되는 두 전제 조건
본격적인 게임을 하기에 앞서, <보난자>의 핵심 규칙 2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에 든 카드들의 순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둘째, 한 사람에게 주어진 밭 구획은 2개뿐이다(3명이 게임할 때는 3개).
콩을 심는 단계
내 차례에 하는 행동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1. 내 콩 심기
먼저, 콩을 심어야 한다. 이 게임에서는 탁자에 카드를 내려놓는 것을 ‘콩을 심는다’고 한다. 현재 내 손에 있는 콩 카드를 콩밭에 1장 또는 2장을 내려놓는데, 반드시 첫째 콩 카드부터(손에 든 카드 중 맨 앞에 있는 카드) 심어야 한다. 손에 있는 카드를 섞거나 순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심어야 하는 콩과 같은 콩이 이미 밭에 있다면, 그 위에 카드를 겹쳐 올려놓을 수 있다. 어떤 밭에도 같은 종류의 콩이 심어져 있지 않다면, 빈 밭에만 심을 수 있다. 자기 차례에 콩은 1개 이상 꼭 심어야 한다. 만약 새로운 콩을 심으려고 하는데 빈 밭이 없다면, 자신의 밭 하나를 골라 그 밭의 콩을 모두 수확해서 판매하고, 빈 밭으로 만들어 콩을 심는다. 이럴 경우 수확한 콩 카드 수에 따라 금화를 얻는다. 만약 충분한 콩 카드를 모으지 못했다면 금화를 얻지 못한 채 수확한 콩이 버려질 수도 있다.
첫 번째 카드는 반드시 심어야 하지만, 두 번째 카드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심어도 되고 안 심어도 된다.
2. 거래하기
두 번째 단계에서는 쌓여 있는 카드 더미에서 2장을 뽑아, 모두가 잘 볼 수 있게 펼쳐놓는다. 이 2장의 카드는 밭에 심거나 다른 사람과의 거래에 사용해서 모두 없애야만 한다. 대가 없이 선물로 줄 수도 있고(단, 받겠다는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카드와 교환할 수도 있다.
이 단계가 <보난자>의 가장 중요한 단계다. <보난자>는 같은 종류의 콩을 많이 모을수록 더 많은 금화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필요 없는 카드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주고, 내가 원하는 콩은 최대한 많이 받아와야 한다.
앞서 말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인 ‘손에 든 카드는 순서를 바꿀 수 없다’라는 규칙은 이 단계에서 살짝 풀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순서와 관계없이 뽑아 상대방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내가 들고 있는 첫째 콩 카드를 강제적으로 심어야 하므로, 이렇게 거래를 통해 손에 있는 카드 중 필요 없는 카드를 제거하고 나한테 필요한 카드만 남기는 것이 게임의 핵심 전략이 된다.
거래할 때는 콩 카드가 손에 든 카드 중 몇 번째이건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손에 있는 카드 중 쓸모없는 카드들은 도리어 독이 된다. 차례가 시작되면 1단계 내 콩 심기 단계에 반드시 첫째 콩 카드를 심어야 하는데, 이 카드가 플레이어의 밭에 있는 콩과 같은 종류의 콩이 아니라면, 멀쩡히 잘 키우고 있던 밭의 콩을 수확해야만 하므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드를 주고받거나, 그냥 줄 때도 있으며, 대가 없이 받아주기를 간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신뢰를 쌓아갈 수도 있고, 때로는 더 나쁜 조건으로 카드를 교환해 다른 플레이어를 방해하거나, 공짜로 준다는 카드도 안 받는 등 다양한 협상이 펼쳐진다. 이렇게 협상이 끝나면 두 번째 단계가 마무리된다.
3. 공개된 콩 심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고받은 콩들을 반드시 밭에 심어야 한다.
거래하기 단계 중에 펼쳐졌던 푸르대콩 1개와 거래를 통해 받아온 팥 1개를 밭에 심는다.
4. 콩 보충하기
마지막 네 번째 단계에서는, 카드 더미에서 3장의 카드를 보충받고 차례를 마무리한다. 카드 순서가 바뀌면 안 되기 때문에, 3장의 카드를 가져올 때는 반드시 맨 뒤로 가져와야 한다.
게임 종료
그리고 게임 중 언제든지 밭에 있는 콩들을 수확해 금화로 바꿀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카드 더미가 떨어지는데, 수확하고 나서 버려진 카드들을 다시 섞어 카드 더미를 만든다. 이 더미가 3번 떨어지면 게임이 끝난다. 게임이 끝나면 미처 수확하지 못한 밭의 콩들을 수확해 판매하고, 그 후 금화 개수를 비교해 게임의 승자를 정한다. 이렇듯 <보난자>는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협상이 주를 이루며, 협상의 결과가 게임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게임이다.
게임 구조 ‘협상’의 장단점
보드게임 중에는 차례마다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 꺼려지는 게임들이 있다. 한 사람의 차례가 지나치게 길면 다른 사람들은 멍하니 지켜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게임에 걸리는 시간을 표기할 때 게임이 시작해서 끝나는 시간을 플레이어 1명당 얼마나 걸리나로 표현하는 게임이 있을 만큼, ‘차례의 길이’라는 것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다.
<보난자>는 손에 든 카드의 순서를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협상이 필수다. 이 협상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도 집중을 유지하고 흥미를 잃지 않게 되어, 한 플레이어의 차례가 늘어지더라도 지루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협상 게임이 갖는 단점이기도 한데, 오랜 시간 큰 목소리로 집중해 게임을 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져, 앉은 자리에서 여러 번 하기에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보난자>는 이러한 면을 나름의 방법으로 깔끔하게 정제했다. 게임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보난자>는 기와 승은 천천히, 전과 결은 빠르게 가속되는 양상을 보인다. 카드 더미에 카드가 다 떨어져서 버림 더미를 섞을 때엔 밭에 심겨 있는 콩과 금화로 바뀐 콩이 빠진 상태로 섞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지는 카드 더미는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보다 훨씬 적은 카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보난자의 수상 이력
2007 Juego del Ano Finalist
2005 Vuoden Peli Adult Game of the Year Nominee
2003 Nederlandse Spellenprijs Nominee
1997 Spiel des Jahres Recommended
1997 Meeples’ Choice Award
1997 Fairplay A la carte Winner
<보난자>가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는 것은 수상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 게임이 출시된 지 10년 뒤에도 상을 받았다는 것은, <보난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게임으로 기억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작품임을 시사한다.
보난자의 매력
<보난자>는 협력과 견제가 잘 어우러져 있는 즐거운 협상 게임이다. 또한 규칙이 간단하고 누구나 즐기기 쉽다. 이것이 <보난자>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자기 차례에 해야 할 행동의 종류가 적은 편이라 1시간 이내에 넉넉히 마칠 수 있으며, 익살스러운 일러스트도 게임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소 중 하나다. 무엇보다 <보난자>의 가장 큰 매력은 웃으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면서도, 협상 게임 특유의 치열함을 함께 갖췄다는 점에 있다. 가벼우면서도 풍성한 협상 게임을 찾는 플레이어라면, 고전 명작으로 불리는 <보난자>가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글 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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