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큐브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
1. 루미큐브, 한 번에 타일을 내는 게 유리하지 않나요?
<루미큐브>를 자주 하는 많은 사람이 즐겨 쓰는 전법 중 하나로 타이밍이 올 때까지 타일을 아껴두는것이 있다. <루미큐브>의 규칙을 잘 생각해보자. 플레이어는 차례마다 타일 1개를 받거나 타일을 쓰거나 둘 중 한 가지 행동을 한다. 타일을 쓸 수 없을 때 타일 1개를 받는 것은 일종의 벌칙이긴 하지만, 대신에 이렇게 추가된 타일은 가지고 있는 타일들로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높여주는 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다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루미큐브>는 (등록을 마쳤다는 전제하에) 한 번의 차례에 내려놓을 수 있는 타일의 수에 제한이 없다. 20개의 타일을 두 번의 차례에 나눠서 내려놓든, 한 번에 다 내려놓든 결과가 같다면 모았다가 한 번에 내려놓는 것이 무조건 유리해 보인다. 특히 내가 낸 타일을 상대가 사용할 수 있으므로, 내 자원을 끝까지 상대가 못 쓰게 하다가 한 번에 내려놓는 것이 당연한 전략처럼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처음 조커를 받은 사람이 조커를 게임 끝까지 쥐고 있다가 마지막 차례에 쓰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전략적인 플레이라 할 수 있다. 내 자원을 남이 못 쓰게 하겠다는 것은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인 전략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런 전략을 만들어냈다.
1. 자기 차례엔 무조건 타일을 받는다.
2. 다수의 타일을 한 번에 내려놓을 기회를 노리며 차례마다 받기만 한다.
3. 한 번에 다 내려놓고 승리.
그런데 이 전법으로 승승장구해온 사람들이 <루미큐브> 대회에 나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왜냐면 이 전략은 사실 친목 게임에서 규칙을 느슨하게 적용해 생긴 빈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큰 판에서는 게임 양상이 다르고 이러한 소극 전략으로 세계제패는 불가능하다. 세계 대회의 특별한 규칙 때문일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루미큐브>의 현행 공식 규칙은 세계 대회를 통해 보완된 규칙의 기본을 꽤 잘 반영하고 있다. 다만 대게의 플레이어가 흔히 그런 규칙을 무시할 뿐이다.
등록한 차례에 타일을 조합해서 내는 것도 가능한가?
사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점이기도 하며, 규칙서에도 좀 모호하게 쓰여져 있는 편이다. 이 문제는 2003년의 제5회 세계대회를 거치며 정리가 되었고, 등록하는 순간 차례를 끝내는 것이 맞는 규칙이다. 이 규칙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고, 친목 게임에서는 알면서도 등록한 차례에 타일 재조합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규칙의 차이가 한 번에 타일을 내는 식의 진행을 더욱 부추기는 면이 있다. 등록한 차례에 타일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한 번의 차례에 모든 타일을 다 내려놓고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등록은 숙제처럼 미리 하게 된다. 안 그러면 정작 기회가 왔을 때 등록부터 하고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될 테니까.
모래시계의 중요성
<루미큐브>는 모래시계 등을 사용해서 한 차례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을 두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생각하고 행동할 시간을 모두 포함해서 모래시계가 한 번 떨어질 만큼의 시간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친목 게임에서는 모래시계를 사용하지 않거나 한 번의 차례에 너무 오래 생각만 하는 플레이어에게 생각은 그만하고 빨리 차례를 끝내라는 독촉 정도의 역할만 한다. 본래 모래시계의 올바른 사용법은 차례 시작 때 세팅하는 것이다. 이 모래시계는 한 번의 차례에 내려놓을 수 있는 타일의 개수를 제약한다. 상상 속에선 손만 빠르면 30개든 40개든 다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당신 차례 바로 전 사람이 타일 몇 개를 소진하고 테이블을 휘저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따라서 모래시계로 차례 진행 시간이 제약되는 게임에서는 한 번의 차례에 내려놓기 어려운 분량의 타일이 모이기 전에 적당히 타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점수가 중요한가?
세계 대회에서는 보통 4명이 한 라운드에 총 4번 게임을 진행한다. 4번의 게임이 끝난 뒤 가장 승수가 많은 사람이 다음 라운드 경기에 진출하는데 4명이 4게임을 하니 압도적인 실력 차가 크게 나는 것이 아니라면 승리한 회수가 같을 가능성이 높다. 이때 최종 승자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점수다. 점수 계산은 다음과 같이 한다.
타일이 남은 사람은 타일의 모든 숫자를 더하고 그 숫자만큼 감점한다. 조커 타일을 끝까지 쥐고 있으면 감점 30점으로 계산한다. 게임 끝까지 등록을 못 한 플레이어는 감점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감점 100점으로 계산한다. 승자는 모든 사람의 감점을 더한 만큼 점수를 받는다.
보통 친목 게임에서 이 점수 계산 규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이겼는지만 확인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대회에서 이 규칙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 점수 규칙은 한 번에 타일을 내려놓는 전략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이기지 못했을 때의 리스크를 매우 크게 만든다. 맨 앞에 언급했던 조커를 끝까지 쥐고 있으라는 비장의 책략도 여기서는 의미가 없다. 게임에 포함된 규칙서에서는 조커를 끝까지 가지고 있을 경우의 벌점을 30점으로 하고 있지만 2015년에 열린 베를린 대회에서는 무려 50점 감점이 적용됐다.
타일이 모두 바닥나 승자가 나지 않을 때 <루미큐브>의 마지막흐름은 다음과 같다. 타일 공급처가 다 떨어진 뒤에는 타일 뽑기 없이 게임이 진행된다. 강제로 타일 1개 이상 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때 누군가가 타일을 낼 수 없게 되면 게임은 끝난다. 이렇게 승자 없이 끝나는 게임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 역시 한 번에 타일을 내려놓는 전략을 취한 플레이어다.
이렇게 대회 규칙을 적용하면 한 번에 타일을 내려놓으려는 플레이어가 설 자리는 꽤 줄어든다. <루미큐브>는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한 번에 타일을 내려놓는 전략을 지양하도록 방향을 수정해왔으며 그 노하우는 현재의 규칙에 잘 반영되어 있다. 말하자면 별도의 하우스룰도 필요 없다는 얘기다. 만약 가까운 사람들과 <루미큐브> 게임을 했을 때 모두가 한 번에 타일을 내려놓으려고만 해서 지루함을 느꼈던 분들은 대회에서처럼 규칙 적용을 엄격하게 해서 해볼 것을 권한다. 사람들이 타일을 계속 내줘야 게임이 더 매끄럽고 재미있고 묘수도 많이 나오는 법이다.
2. 그 외에 알아둘 점
때때로 받은 타일이 너무 나빠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처음 타일을 나눠 받았을 때, 색깔과 숫자가 같은 타일 3쌍을 받았을 경우 이를 보여주고 타일 배분을 다시 하자고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대회에서도 인정해주는 규칙이니 받은 타일이 좋지 않을 때는 꼭 사용하도록 하자.
13 다음에 1이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생각보다 종종 나오는데,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계 대회 규칙에서 이와 관련된 별도의 조항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미국 발매 버전 중엔 13 다음에 1을 연결할 수 있게 허용하는 규칙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도 한다. 일단 국제 공인은 아니지만 게임을 더 빠르고 매끄럽게 만들어주며 13의 불리함을 조금 타파해줄 수도 있는 규칙이라 모두가 동의한다면 하우스룰로 적용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3. 종류가 왜 이렇게 많아요?
<루미큐브>를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바로 ‘루미큐브 각 제품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이다. 같은 게임이 6종 이상의 다른 규격으로 만들어져 동시에 진열되어 있는 풍경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선, 제품 규격과 상관없이 게임의 규칙은 모두 같다.


개방형 타일 받침대와 폐쇄형 타일 받침대의 차이
루미큐브는 카드 대신 플라스틱 타일을 사용하는 게임이다. 카드 게임에서 보통 자신의 카드는 손에 쥐어서 다른 사람에게 내용을 보여주지 않은 채로 들고 있게 되는데, <루미큐브>에서는 타일의 앞면을 상대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내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받침대라는 별도의 도구가 제공된다. 이 받침대에는 2가지 스타일이 있으며 하나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많은 타일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플레이어가 볼 수 없게 가려주는 또 하나는 다른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타일의 수가 몇 개인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공개된 개방형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말하면 폐쇄형 받침대로 게임을 하더라도 타일을 몇 개 보유하고 있는지 게임 중 질문받으면 알려줘야 하는 것이 예의라서 게임성이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국제 대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개방형 받침대를 사용하고 있다. 폐쇄형 받침대는 자기 타일을 한 번에 보기 조금 더 쉬운 감이 있고 개방형 받침대는 받침대에서 타일이 떨어질 우려를 조금 덜 해도 되는 장점이 있다. 보통 <루미큐브> 플레이어들은 조합이 만들어진 타일 3~4개씩 모아서 놓는 것을 선호하는데 개방형 받침대에서는 이렇게 하면 가지고 있는 타일 수 이상의 정보를 노출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초보자에겐 일단 폐쇄형 받침대를 권한다. <루미큐브> 제품 규격에는 보통형, 소형, 고급형이 있으며 각 규격에 개방형 제품과 폐쇄형 제품이 하나씩 있다고 이해하면 좋다.
보통형 제품 루미큐브 클래식, 루미큐브 인피니티
보통 제품은 가로 2.7cm 세로 3.9cm 두께 0.5cm 규격의 타일을 사용하는 제품이다(왼쪽의 사진에 보이는 타일 크기가 실물 크기이다). 표준 제품이라 할 수 있고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편이다. 폐쇄형 받침대가 포함된 <루미큐브 클래식>과 개방형 받침대가 포함된 <루미큐브 인피니티>가 있다.
소형 제품 루미큐브 트래블, 루미큐브 보이저
소형 제품은 가로 1.9cm 세로 2.7cm 두께 0.5cm 규격의 타일을 사용하는 제품이다. <루미큐브 트래블>, <루미큐브 보이저>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제품군은 여행 등에 휴대하는 것을 염두에 둔 제품이다. <루미큐브 트래블>은 폐쇄형 받침대를 채용하고 있고, <루미큐브 보이저>는 개방형 받침대를 채용하고 있다. 또 <루미큐브 트래블>은 양철 케이스라는 특징이 있고, <루미큐브 보이저>는 받침대를 조합해서 휴대용 패키지를 만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고급형 제품 루미큐브 셀렉트, 루미큐브 클럽
루미큐브의 고급형 제품들은 소형 제품과 보통형 제품과는 달리 숫자가 음각으로 파여 있어서 숫자 인쇄가 지워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소형과 보통형은 숫자가 마모되어 지워질 것을 우려해 곡면으로 파서 안쪽에 숫자를 인쇄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데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보드게임 카페 등에서는 인쇄가 지워지는 일이 가끔 생긴다). 또한 보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두껍고 무게감 있는 타일을 사용하므로, 섞을 때 더 좋은 소리가 나고 뽑는 손맛도 훨씬 좋다.
<루미큐브 셀렉트>는 별도의 하드 케이스에 제품을 수납할 수 있고 폐쇄형 받침대를 사용하는 제품이며, <루미큐브 클럽>은 받침대가 없이 마작 패처럼 세워서 사용한다.
루미큐브 트위스트
가장 최근에 등장한 상품으로. 제품 규격은 <루미큐브 클래식>과 비슷한데 타일이 기와처럼 곡면으로 만들어져 타일을 포개어 쌓기 좋게 되어 있으며, 추가 조커 타일과 이를 사용하는 추가 규칙이 들어 있다. 물론 추가 요소를 빼고 기본 규칙으로 즐겨도 문제없다.
글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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