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100 - 달무티

불공평한 인생을 담은 게임

요약정보

이야기
901

2018-04-20

#보드게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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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게임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드게임은 10만 종에 이른다. 수없이 많은 게임이 탄생해, 어떤 것들은 잊히고 어떤 것들은 명작으로 남는다. 이 코너에서는 보드게임의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100선을 뽑아 소개한다.
 
 
불공평한 인생을 담은 게임, 달무티
<달무티>는 <매직: 더 개더링>, <넷러너>를 비롯한 다양한 컬렉터블 카드 게임을 만든 리처드 가필드 작가가 만든 게임이다. 컬렉터블 카드 게임이라 불리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게임 영역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그가 만든 게임 중에서  <달무티>는 좀 튀는 게임이다. <달무티>는 컬렉터블 카드 게임이 아닌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카드게임이기 때문이다.
 
1995년, <매직: 더 개더링>의 퍼블리셔인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가 내놓은 <달무티>는 이듬해인 1996년에 <매직: 더 개더링>과 함께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한국어판이 나오며 큰 성공을 거두던 <매직: 더 개더링>에 가려져 <달무티>는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몇몇 동호인들 사이에 인기를 누리며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달무티>는 그 후 한참 뒤인 2016년에야 한국어판이 처음 등장했는데, 그제야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오랜 세월 함께한 탓에 한국어판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이다.
 
<달무티>의 게임 목표는 게임을 시작할 때 받은 카드를 가능한 한 빨리 사용해서 없애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원카드>부터 4명이 하는 카드게임 중 으뜸이라는 <티츄>에 이르기까지 손에 든 카드를 가능한 한 빨리 없앤다는 목표를 가진 게임은 많다. 얼핏 보면 <달무티>는 이런 게임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볼 때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달무티>의 카드 구성이다. <우노>의 카드가 4가지 색깔로 나뉜 것이나 <티츄>의 카드가 4가지 수트로 나뉜 것과 달리, <달무티>의 카드엔 수트 구분이 없다. 또한 다른 게임에선 각각의 숫자마다 같은 수의 카드가 들어있는 것과 달리, 달무티에선 1번 카드가 1장, 2번 카드가 2장, 3번 카드가 3장의 순으로 12번 카드에 이르기까지 카드에 쓰여 있는 숫자만큼 해당 카드가 들어있다. 이 카드들은 각각의 계급을 나타내며, 계급 간의 상하 관계와 각 계급마다 다른 카드 수가 게임의 핵심이 된다.
 

가장 높은 계급인 달무티(1)부터 가장 낮은 계급인 농노(12)까지의 모습

 
카드를 내는 규칙은 해당 라운드의 시작 플레이어가 한 계급의 카드를 원하는 장수만큼 내면, 다음 플레이어는 카드 장수에 맞춰 그보다 높은 계급의 카드를 내는 것이다. 즉, 높은 계급의 카드가 낮은 계급의 카드보다 우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낮은 계급의 카드에 대응해 높은 계급의 카드는 낼 수 있지만, 높은 계급의 카드에 대응해 낮은 계급의 카드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신분제 사회에서 높은 계급이 낮은 계급을 대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낮은 계급의 카드는 같은 장수일 때 높은 계급에 밀리지만, 카드가 더 많다는 수적인 우위를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작 플레이어가 한 계급의 카드 6장을 냈다면, 5짜리 이상인 계급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기 차례에 카드를 낼 수 없거나, 내지 않기로 선택하면 아무 카드도 내지 않고 차례를 건너뛴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가 누구도 앞에 나온 카드보다 더 높은 계급의 카드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한 라운드가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다시 시작 플레이어가 되어 새 라운드를 시작한다. 라운드를 반복하다가 자기 카드를 모두 사용한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빠지고, 아직 카드를 들고 있는 플레이어들끼리 계속해서 마지막 플레이어가 남을 때까지 게임을 진행한다. 
 

앞 플레이어가 광부(11) 2장을 냈다면, 이제 이 플레이어는 그보다 높은 계급의 카드로 2장을 내야 한다. 즉, 이 상황에서는 요리사(9) 2장이나 재봉사(7) 2장을 낼 수 있다.
 
이렇게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나면 다음 게임부터 본격적으로 <달무티>의 진가가 드러난다. <달무티>는 여러 번의 게임을 연속해서 하는 것을 가정한 게임이며, 한 번의 게임이 다음 게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카드를 다 없앤 순서대로 플레이어들의 계급이 정해지는데, 이 계급은 다음 게임의 시작 방식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다음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높은 계급부터 가장 낮은 계급순으로 계급에 따라 자리를 바꿔 앉은 후 가장 낮은 계급인 농노 역할을 맡은 플레이어가 이전 게임에 사용한 카드를 섞어 모든 플레이어에게 나눠준다. 이때 플레이어 수에 따라 카드가 모자랄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엔 높은 계급의 플레이어들이 카드를 1장 더 갖는다. 거기다 농노인 플레이어는 가장 높은 계급인 위대한 달무티 역할을 맡은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가진 카드 중 가장 높은 계급의 카드 2장을 상납해야 한다. 반대로 위대한 달무티 플레이어는 농노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가진 카드 중 아무 카드나 2장을 선택해 준다. 보통 자신에게 가장 필요 없는 카드를 주기 마련이다. 농노 바로 위 계급인 소작농과 달무티 바로 아래 계급인 총리대신은 같은 방법으로 서로 카드 1장씩을 주고 받는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가장 필요 없는 것을 받게 된다는 것부터 뭔가 불공평한 느낌이 들 것이다. 사실 이 계급차로 인한 불평등이야말로 ‘인생은 불공평합니다’라는 게임의 메인 카피를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매력 요소다.
 
심지어 게임이 시작되면 위대한 달무티가 시작 플레이어가 돼, 자신이 내고 싶은 카드를 정해서 낼 수 있다. 라운드를 시작하는 플레이어만이 해당 라운드에 내야 하는 카드 수를 결정하므로, 처음 카드를 내는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에 남아 있는 카드들을 기반으로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계획하고 게임을 주도할 수 있다. 반대로 다른 플레이어들은 라운드 중에 마지막으로 카드를 내고 다음 라운드의 시작 플레이어가 되어야만 주도권을 쥘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다소 무리한 운영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있다. 한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농노가 카드들을 정리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덤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게임 규칙서는 게임 진행 중 발생하는 불공평함과 계급 간의 관계를 게임 밖으로까지 연장하는 것을 권한다. 위대한 달무티가 가장 좋은 의자에 앉고 농노는 바닥에 앉아서 게임을 한다거나, 각자의 계급에 따라 높은 계급에게 존대하고 낮은 계급에게 하대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게임 외적인 역할극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의 설정에 더욱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며, 한 게임이 끝나 새로운 계급이 정해질 때마다 다음 게임을 시작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달무티>가 무작정 아랫 계급의 플레이어들에게 무자비한 것만은 아니다. 어릿광대는 높은 계급의 플레이어들의 폭정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어릿광대는 숫자가 붙어 있지 않으며, 단독으로는 가장 낮은 계급의 카드로 간주되지만, 다른 카드와 함께 낼 때는 그 카드의 계급의 카드로 간주하는 와일드 카드다. 가장 낮은 계급으로 치기 때문에 세금을 바칠 때에도 높은 계급의 플레이어에게 주지 않으므로, 아랫 계급 플레이어에게도 게임 운용에 있어서도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라운드가 시작될 때 카드를 나눠 받은 다음 어릿광대 카드 2장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혁명이 일어난 라운드에는 세금이 없으며, 처음 나눠받은 카드 그대로 라운드를 진행해야 하므로 위대한 달무티인 플레이어나 농노인 플레이어도 나눠 받은 카드 그대로 어떤 도움이나 불리함 없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어릿광대 2장을 가진 플레이어가 농노라면, 대혁명이 일어나며, 그 순간 모든 지위가 거꾸로 되어, 농노와 위대한 달무티는 물론 그 중간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의 지위가 바뀌게 된다. 혁명으로 인한 전복적인 상황은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아랫 계급에 머물러 있는 플레이어마저도 게임에서 이탈하지 않고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게임의 결과에 따라 계급이 역동적으로 바뀌는 것도 여기에 매력을 더한다. 이런 특유의 매력 덕분에 <달무티>는 한번 시작했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끊임없이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으로 유명하다. MT, 워크샵 등에서 <달무티>를 시작했다가 밤을 새웠다는 식의 증언을 유독 많이 들을 수 있다.
 
 
리처드 가필드 작가
리처드 가필드 작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드게임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순열 조합론으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리처드 가필드 작가는 게임을 통한 교습법이 다른 어떤 교습법보다도 가장 효과가 크다고 믿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교육 범위를 벗어나는 게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만큼 그의 인생에서는 게임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게임 작가라기보다는 수학자였던 그는 애초에 전업 게임 작가로 활동할 생각은 없었지만, 취미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아직 학생이던 1985년에는 플레이어들이 로봇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미리 계획한 다음, 여러 차례에 걸쳐 미리 정한 계획에 따라 로봇을 움직이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게임을 친구들과 즐기던 그는, 이 게임을 상업화해보는 것이 어떨까란 생각에 여러 보드게임 퍼블리셔와 접촉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보드게임 업계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던 그는 무작정 보드게임 퍼블리셔를 찾아가서 자기 게임을 선보였고, 번번이 퇴짜를 맞을 뿐이었다. 그러기를 5년째, 1990년에 당시 롤플레잉 게임 용 시나리오와 보조 용품 등을 판매하던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의 사장 피터 애드키슨을 만나게 된다. 피터 애드키슨에게도 이 보드게임을 선보였지만 다시 거절당하고 말았는데, 보드게임은 생산비가 너무 많이 들어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와 같은 작은 회사에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피터 애드키슨은 그 대신 휴대하기 편하고 빠르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역으로 제안한다. 거절만 당했을 뿐 이런 식의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던 리처드 가필드는 그의 요구에 맞춰 새로운 게임을 개발해보기로 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컬렉터블 카드 게임인 <매직: 더 개더링>이다. 1993년 <젠콘>에서 데뷔한 <매직: 더 개더링>은 순식간에 초판이 매진됐다. 그해 박사 학위를 받고 위트먼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1년 만에 강단을 떠나 위저즈 오브 더 코스트의 전임 개발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수년간 수많은 보드게임 퍼블리셔로부터 거절당해왔던 게임을 <로보랠리>란 이름으로 정식 출시하기에 이른다.
 
 
게임의 기원
<로보랠리> 출시 다음 해인 1995년, <달무티>가 등장했다. <달무티>는 리처드 가필드 작가가 100% 온전히 만들어낸 게임은 아니다. 작가가 대학원에 다니던 중 친구를 통해 소개받아 즐겼던 이름도 몰랐던 게임에 기반한 것이다. 이 게임에선 승자를 달무티라 칭하고 패자를 농노라 칭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이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게임에 매료된 리처드 가필드 작가는 게임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데이빗 팔렛이 쓴 <어 히스토리 오브 카드 게임즈 a History of Card Games>를 읽고 자신이 한 게임이 중국의 고전 게임 '쩡상요(爭上遊, 쟁상유)'에 기반을 둔 것임을 알게 됐다.
 
'쩡상요'는 중국 저장성과 장수썽 지역에서 인기 있는 카드게임이다. <달무티>의 기반이 된 게임인 만큼, '쩡상요'의 게임 목표 역시 게임을 시작할 때 받은 카드를 모두 사용해 없애는 것이다. 이 두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어떤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냐다. '쩡상요'는 게임 인원에 따라 플레잉 카드 1벌을 사용하기도 하고, 2벌을 사용하기도 한다. 라운드를 시작하는 플레이어는 카드를 조합해서 내는데, 시작 플레이어가 한 조합을 정해서 내면 다음 플레이어들은 그 조합을 유지하면서 그보다 더 높은 카드를 내야 한다. 물론 내고 싶지 않거나 낼 수 없다면 차례를 건너뛰어야 한다.
 
'쩡상요'에 영향을 받은 게임 혹은 이와 비슷한 게임은 여러 곳에서 여러 이름으로 찾아볼 수 있다. 저장성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빅 투'란 이름으로, 장쑤성 북쪽으로 올라가면 '두오디주 斗地主'란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일본에서는 '다이푸고 大富豪' 혹은 '다이힌민 大貧民', 베트남에서는 '티엔 렌', 미국 알래스카 주에선 '리치맨-푸어맨', 유타 주에선 '스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전체적인 얼개는 비슷하지만 각기 미묘하게 다른 규칙들이 존재한다.
 
리처드 가필드 작가는 친구들과 사용하던 달무티란 이름이 '다이힌민'에서 파생된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여러 이름 중에 가장 달무티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느껴서일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가난한 사람이란 뜻의 ‘다이힌민(대빈민)’은 <달무티>에서의 ‘위대한 달무티’와는 가장 반대되는 의미지만 말이다.
 
<달무티>는 <쟁상유>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지만, 게임의 배경과 카드 구성의 차이를 통해 서로 상당히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글 현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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