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드게임은 10만 종에 이른다. 수없이 많은 게임이 탄생해, 어떤 것들은 잊히고 어떤 것들은 명작으로 남는다. 이 코너에서는 보드게임의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100선을 뽑아 소개한다.
우리는 휴지통에 휴지를 버릴 때, 종종 멀리서 던져 넣는 시도를 한다. 작은 지점을 겨냥해 던지는 행동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골프, 볼링, 구슬치기, 다트, 농구 등 이런 속성의 놀이는 꽤 많다.
힘 조절을 하며 발사체를 날려 목표를 맞추는 게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디지털 게임 분야에서도 곡사포로 상대를 공격하는 게임이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졌다. 이 게임의 유전자는 발전을 거듭해 컴퓨터 게임 시대에는 <웜즈> 시리즈, <포트리스>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고, 스마트폰 게임 시대에는 <앵그리 버드> 시리즈가 주역을 차지했다.
‘이런 게임을 보드게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태어난 게임들도 여럿 있는데, <코코너츠>는 이런 게임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보드게임이다.
게임 방법
<코코너츠>의 규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각자 나눠 받은 게임판의 빨간 여의봉 뒤에 원숭이 모양의 발사대를 놓고, 자기 차례에 코코넛 1개를 발사한다.
2) 코코넛을 컵에 넣으면, 그 컵을 가져와 자신의 게임판에 놓는다. 컵을 놓을 때는 컵 3개가 1층, 컵 2개가 2층, 컵 1개가 3층에 놓이는 형태가 되도록, 즉 피라미드 모양이 되도록 쌓는다.
4) 빨간색 컵을 가져왔다면, 코코넛을 한 번 더 발사한다.
5) 6개의 컵을 먼저 차지하면 승리한다.
6) 코코넛을 발사하기 전, 나 또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술법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코코넛을 발사해 컵에 넣어야 한다.
재미있는 점은 상대가 이미 획득한 컵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확보한 컵에 코코넛을 넣으면 그 컵을 가져올 수 있다. 이를 통해 역전이 자주 일어나고 강자에 대한 견제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게임이 끝날 때까지 흥미진진하다. 또한, 게임을 시작할 때 술법 카드를 2장씩 가지고 시작하는데, 술법 카드를 사용하면 눈 감고 쏘기, 바구니 지정하기, 바람 불기, 한 번 더 쏘기 등 재미있는 효과가 추가돼 게임을 더욱 유쾌하게 만들어 준다.
코코너츠 개발 이야기
코리아보드게임즈는 2012년부터 해외 시장 개척을 목표로 보드게임 공모전을 기획하고, 해외 작가들의 게임 출판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세계 무대에서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인지도는 대단치 않았기에, 해외 유명 작가의 핵심 작품이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코코너츠를 만든 발터 슈나이더 작가는 오스트리아 아이스하키 전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다. 코코너츠는 그가 만든 첫 보드게임이다.
그러던 중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개발팀은 독일 작가 박람회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발터 슈나이더 작가가 개발한 ‘코코넛’이라는 프로토타입의 게임을 발견했다.
‘코코넛’은 플라스틱 책갈피의 탄력으로 스펀지 코코넛을 날려 컵에 넣는 간단한 게임으로, 자기 차례가 될 때마다 발사대로 코코넛을 발사하고, 컵이 들어가면 자기 앞에 모으며, 컵 6개를 모으면 승리했다. 처음에는 쉽게 컵을 차지할 수 있지만, 중앙의 컵은 점점 줄어드니 후반으로 갈수록 기술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 앞에 놓인 컵에 코코넛을 넣어 빼앗는 등 실력자 견제도 가능했다. 발사대를 사용하는 어린이 지향 게임이지만 상당한 기술을 요구하고 있었고, 몇 가지 부분만 빼면 바로 상품화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도 높았다.
당시 코리아보드게임즈 개발팀은 상쾌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컵에 들어가는 스펀지 볼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스펀지 볼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것보다 더 극적인 긴장감을 준다고 생각했다.
발사체를 날리는 대부분의 기존 게임들은 포물선을 그리기보다 직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과녁이 되는 대상이 발사대보다 높은 곳에 있으므로, 발사체를 날려 과녁을 부수는 경우에도 포물선보다는 직선이 효과적이었기에, 포물선을 사용하는 이 게임은 다른 게임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게다가 그 동안 발사대로 발사체를 날리던 다른 게임들에 비해 기술의 비중이 확연히 높은 만큼, 코리아보드게임즈 개발팀은 분명히 수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 게임의 제목을 <코코너츠>로 확정한 뒤, 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했다.
<코코너츠>를 주력 제품으로 결정하고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의 고민이 많았다. 대개 이런 액션 게임은 외국 회사들의 유명한 제품이 많이 나와 있는 데다가 그들의 시장 내 위치가 확고한 편이었고,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전에 비슷한 형태의 게임을 취급했었지만 잘 팔리지 않았던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코코너츠>를 상품화하려면 플라스틱 사출이나 발사대 설계를 해야 하는데, 당시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 분야의 경험이 없었다.
지금 모습의 코코너츠 발사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팀은 나름의 확신과 비전을 갖고 여러 차례 다양한 형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프로토타입과 같은 형태의 플라스틱판 탄성 발사대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기존에 있는 유사 게임들의 발사대와 비교해 조악했다. 더군다나, 이 플라스틱판 발사대는 사용 횟수가 많아질수록 점차 마모돼 처음의 탄력을 잃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점도 고려해야 했다. 스프링 장치, 고무줄 장치를 비롯해 끈의 반동을 이용한 중세 공성무기인 캐터펄트 형태, 추를 이용한 공성무기였던 트레뷰셋 형태 등 여러 테스트 모형이 만들어졌다.
다른 게임의 발사대와는 달리 기왕이면 더 크게, 힘 조절에 따른 비행 거리 차이는 될 수 있는 한 크게, 비슷한 힘에서 비행 거리 차이와 좌우의 오차는 가능한 한 작게 하는 것으로 개발 목표를 삼았다. 그리고 수많은 발사 테스트를 거치며 발사대는 점차 완성품이 돼갔다.
한편, <코코너츠>의 또 다른 중요 구성 요소는 코코넛이었다. 코코넛의 재질은 스펀지와 스티로폼으로 시작됐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탄성이 있는 작은 구슬을 날렸더니 바닥에 튕긴 다음 컵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 크게 튀면 곤란하지만, 바닥에 튕겨서 컵에 들어가는 것이 충분한 재미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코코넛의 재질을 탄성이 있는 플라스틱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코코넛이 바닥에 튕겨서 들어가는 일의 빈도를 조금 높이고자 컵의 높이를 낮췄다. 또, 코코넛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코코넛에 맞은 컵이 쓰러지는 문제가 발생해 컵의 두께와 재질도 보강했다.

코코너츠의 손오공 스케치
게임의 구성 요소들이 자리를 잡자, 게임의 배경에도 신경 써야 했다. 처음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농구복을 입은 고릴라가 농구공을 골대에 던지는 테마를 구상했으나, 유럽 시장에서 독특하게 보일 수 있는 테마를 찾는 과정에서 ‘손오공’이 등장하는 것으로 바꿨다. 또 손오공 캐릭터가 더 많이 등장하면서 파티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아이디어로 ‘술법 카드’를 만들었다.
북미 유통이 시작된 이후에는 입소문을 타고 판매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게임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로 확산돼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발트 3국,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러시아, 중국, 대만 등 총 32개의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코코너츠의 확장판
코코너츠 듀오의 다국어판. 코코너츠 듀오는 해외 시장의 인기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코코너츠>는 초판 발매 이후 구매 문의가 쇄도했고, 해외 유명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영어판 발매를 위한 모금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게임을 접해본 해외 플레이어들은 여러 가지 기상천외한 <코코너츠> 이벤트를 벌였다. 또 제품 2개를 사서 <코코너츠>를 6명이 즐기는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2014년에는 2명 게임으로 즐길 수도, <코코너츠>과 합쳐 6명까지 확장해 즐길 수도 있는 <코코너츠 듀오>가 출시됐다. <코코너츠 듀오>는 기본판과 다른 술법 카드가 수록돼 눈길을 끌었다. 또한, 제품 내에 분홍색과 녹색의 코코넛을 추가했다. 새로운 색의 코코넛들은 별도의 용도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플레이어들은 각자 다른 색상의 코코넛을 활용하는 추가 규칙을 만들어서 즐기곤 한다.
프랑스에서 열린 인간 코코너츠 대회. 시타델을 만든 브루노 페두티 작가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게임
발매 이후 빠르게 입소문을 탄 <코코너츠>는 2014년 3월,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도 <골든 긱 어워드(Golden Geek Award)>의 최종 경쟁 부문에 한국 퍼블리셔의 게임 최초로 진출했다. 2014년 9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우수게임> 기능성 게임 부문을 수상해 그 잠재력을 확인받았으며, 같은 해 덴마크 올해의 게임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그리고 2015년 4월 6일, <코코너츠>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보드게임 커뮤니티 보드게임 긱(Board Game Geek)의 유저 차트에서 어린이 게임 부문 1위에 오르는 쾌거를 기록했다. 보드게임 긱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전 세계 3,800여 종의 어린이 게임 중 <루핑루이>와 같은 기존의 인기 어린이 게임의 아성을 위협한 게임이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결과다. 매년 좋은 어린이 게임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지만, <코코너츠>는 2017년 11월 현재까지 여전히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행사장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인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 선수가 일명 ‘임진록’이라고 일컫는 그들의 대결을 <코코너츠>를 통해 재현해 화제를 모았다. 양쪽이 5개의 컵을 모아 1개의 컵으로 승부가 갈리는 상황에서 홍진호 선수가 발사한 코코넛이 바닥에 튕겨 임요환 선수의 컵으로 들어가는 멋진 장면이 연출됐다.
2013년 지스타의 <코코너츠> ‘임진록’ 장면
일반적으로 좋은 게임을 말할 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을 한다. 최근 운을 가능한 한 배제해 수 싸움이나 효율적인 움직임을 겨루는 게임들이 주목받지만, <카탄>을 비롯해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은 보드게임들은 운이 어느 정도 작용해 극적인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기도 한다. 게임에서 ‘운’은 극적인 요소를 만들어 “한판 더!”를 외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코코너츠>는 어린이 게임 중 드물게 기술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프로게이머들도 승부를 겨룰 만큼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족 게임이 탄생한 것이다. 운과 기술의 절묘한 조화. <코코너츠>의 전 세계적인 흥행이 이해가 가는 이유다.
글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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