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게임의 발견: 다이아몬드 게임

2017-08-25
1050

 
1980년대 초, <부루마불>조차 없던 시절이지만 그때도 현대적인 보드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기나 바둑만큼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는 꽤 세련된 디자인의 추상 전략 보드게임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게임에는 제대로 된 게임 규칙서가 들어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정확한 게임 규칙이 잘 구전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이 게임은 동네마다 게임 방법을 아는 어린이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지만 게임 자체는 집집마다 있는 독특한 위치의 물건이 되었다. 심지어 이 게임의 정확한 명칭조차도 수수께끼였는데, 흔히 부르던 이름은 <다이아몬드 게임>이었다.
 
보드게임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이 게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드게임 업계에서도 이 게임의 근원이나 유래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게임을 보고 <차이니즈 체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지만 이것도 100점짜리 답은 아니다.
 
세계의 전통 게임 중에는 격자 형식 말판에 말을 놓고 그 말을 움직여서 특정 패턴을 만들거나, 상대 말을 잡으며 진행하는 방식의 추상 전략 게임이 꽤 많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놀이가 많으며 이들을 통칭 고누 놀이라고 부른다. <다이아몬드 게임>이라는 이 별 모양 게임도 그 근원을 파고들면 이 세상 어딘가의 고누 놀이 비슷한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 게임>은 각자에게 주어진 말 10개를 맞은 편에 위치한 진영 10칸에 먼저 보내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자기 차례에는 자기 말 1개를 1칸 이동시키거나, 자기 말 1개로 다른 말 1개를 뛰어넘는 점프 이동을 할 수 있으며, 점프 이동을 한 뒤 점프 이동이 가능한 칸이 더  있다면 여러 번 점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번 뛰어넘는 점프  이동 규칙 때문에 <체커>와도 종종 비교되지만 <체커>는 점프한 뒤 점프 경로에 있는 상대 말을 잡는 게임이지만 <다이아몬드 게임>에는 말을 잡는 개념이 없다. 또 <체커>는 점프가 가능하다면 무조건 점프해야 하는 규칙이 있지만 <다이아몬드 게임>은 원하는 만큼 점프하고 원할 때 점프를 마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라 할 수 있다.
 

컨스피라토, 우골키, 할마
 
 
<다이아몬드 게임>과 유사한 게임으로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게임은 프랑스의 게임 <컨스피라토>로, 게임의 이름인 ‘컨스피라토’란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컨스피라토>가 만들어진 시기는 확실하지 않은데, 17세기로 추정하기도 하고 18세기 프랑스 혁명 시대의 게임으로 보기도 한다. 그림에서 보듯이 게임판 가운데의 표시된 부분이 새 말을 놓을 수 있는 곳이고, 게임판 가장자리의 표시된 칸이 해당 말들의 목적지인 성역이다. <컨스피라토>는 시작할 때 말 배치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자기 차례에 이동(이동 방법은 <다이아몬드 게임>처럼 1칸 이동 또는 원하는 만큼의 점프 이동으로 되어 있다.) 또는 말 1개 추가를 하게 되어 있고 주어진 자기 말 전부를 탈출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2명이 할 때는 플레이어마다 말 20개씩, 4명이 할 때는 플레이어마다 말 10개씩 주어지며, 각자 자기 말 모두를 성역으로 탈출시켜야 한다. 하지만, 가장자리 성역 칸은 39칸이므로 꼴찌는 자신의 말 모두를 탈출시킬 수 없게 되어 있다. 
 
<컨스피라토> 보다 좀 더 늦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우골키>는 좀 더 <다이아몬드 게임>과 비슷한 형태의 게임이다. 18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시작 말 배치가 정해져 있고 이 말들을 모두 반대편 도착 진영으로 옮기는 게임인데, 러시아에서 성행했다고 한다.
 
19세기 미국에는 더욱 유사한 게임이 등장했다. 1883년 하버드 의대의 성형외과 의사 조지 하워드 몽크스가 만든 <할마>라는 게임이 그것이다. 이 게임은 1854년 영국에서 나온 <호피티>라는 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관계를 보아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비슷한 게임이 꽤 많이 등장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 게임>에 대해 알고 있다면 <할마>의 규칙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두 게임은 매우 유사하다. <할마>는 <다이아몬드 게임>의 말을 가로 세로로 이동시키는 버전의 게임이라고 설명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우리 나라에서는 별로 보급되지 않아 낯설겠지만 <할마>는 오늘날에도 꽤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게임이다. 여러 개의 클래식 보드게임 묶음 세트 같은 것에도 종종 포함된다. 위의 사진은 2017년 현재 아마존 닷컴에서 판매되고 있는 <할마>의 상품 이미지이다. 
 

슈테른 할마 

 

<할마>가 등장하고 10년쯤 지난 1892년, 독일에서는 최대 6명이 같이 할 수 있는 별 모양 게임판의 새로운 <할마>가 등장한다. 이 게임의 이름은 <슈테른 할마(Stern Halma)>다. 슈테른은 별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로, 슈테른 할마란 별 모양의<할마>라는 뜻이 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이 게임이 상업화되면서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중국 전통 게임’이라는 가짜 배경이 덧씌워졌고, 이 마케팅은 전 세계인을 오류의 소용돌이로 빠뜨려 이후에는 이 게임을 중국 전통 게임으로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오늘날 이 게임은 <슈테른 할마>보다 <차이니즈 체커>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하다. 중국으로 전해진 이 게임을 정작 중국에서는 이 게임을 ‘뛸 도(跳)’자와 ‘바둑 기(棋)’ 자를 써서 <티아오 치(跳棋)>라고 부른다.
 

다이아몬드 게임

 

<다이아몬드 게임>은 한국과 일본에만 퍼져 있는, <슈테른 할마>에서 한 번 더 변경된 게임이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다이아몬드 게임>이라는 이름은 보석의 광채가 퍼지는 모습의 게임판을 사용한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육망성 게임판의 모양을 보석의 광채가 퍼져나가는 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으나,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다이아몬드 게임>이 일반적인 이름이고, 북한에서는 <별꼬니>라고 부른다. 
 
기존의 <슈테른 할마>와 <다이아몬드 게임>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자세히 보면 게임판의 칸수가 다르다. <슈테른 할마>는 총 121칸으로 구성된 게임판을 사용하고, <다이아몬드 게임>은 73칸으로 구성된 게임판을 사용한다. 최대 6명이 함께 할 수 있는 <슈테른 할마>와 달리 <다이아몬드 게임>은 최대 3명까지만 할 수 있다. 
 
<슈테른 할마>의 단점으로 꼽히는 것이 주로 인원이 많을수록 게임이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인데, 이 점에서 보면 게임판의 폭을 줄이고 인원수를 적게 만든 것은 일종의 개량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다이아몬드 게임> 중에도 121칸을 사용하는 버전이 있다. 이 버전에는 각자의 말이 15개씩 주어진다. 다만 현재에는 73칸으로 구성된 게임판에 플레이어 당 말을 10개씩 쓰는 버전이 더 널리 퍼져 있다. 
 

일본의 다이아몬드 게임, 꼭짓점에 있는 말이 대장 말이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다이아몬드 게임>의 경우 각자의 말 중 1개가 일반 말보다 더 크고 강력한 기능의 대장 말로 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대장 말은 자신의 진영 꼭짓점 칸에 놓이며 대장 말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말 여러 개가 한 줄로 놓인 곳을 대장 말은 길게 점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말이 대장 말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게임>은 이웃 나라 카피 완구가 주종을 이루던 시대를 거치며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대체재들과 비교할 때 비교적 싼 가격이라 보급도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고전 게임은 상세한 규칙서를 넣어주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나마 규칙이 구전되거나 자료화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글 박지원
    댓글 (총 0 건)

    12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