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크펀은 <러시아워>로 대표되는 1인용 퍼즐게임 분야의 대표 기업이다. 1985년 한 부부가 협심하여 창립한 작은 퍼즐 회사가 한 분야를 대표하는 회사가 되기까지 여는 여러 가지 굴곡이 있었다.
씽크펀이 지나온 일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살펴 보기로 하자.
빌 리치와 안드레아 바텔로 부부는 1985년에 바이너리 아츠(Binary Arts)란 작은 퍼즐 제작 회사를 설립한다. 공동 창업자 빌 리치는 창업을 결정하던 당시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아마 1985년 2월 4일 오후 4시에서 4시 15분 사이쯤일 겁니다. 안드레아는 다니던 회사에서 사직했고, 저는 워싱턴 DC의 부동산 업체에서 해고당했죠. 우리는 그 상황에서 빠르게 벗어났습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힘들지만 우리 꿈을 추구하기로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해고한 그 회사 CEO는 보험 사기로 기소돼서 해외로 도망치더군요.”
신생 퍼즐 회사에게 1985년 시장 상황은 절대 좋지 않았다. 토이저러스가 미국 완구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높여가던 상황이라 많은 소규모 독립 완구점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었고, 대형 백화점에서는 보드게임과 퍼즐의 판매를 점차 줄여가고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초에 큰 성공을 거뒀던 <루빅스 큐브>는 유행이 끝나고 거품이 완전히 꺼지는 바람에 공급 과잉 상태가 되어 각종 완구 및 게임 매장에서 악성 재고로 남아 있는 상태였고, 악성 재고가 돼버린 <루빅스 큐브>로 인해 그와 유사한 종류라 할 수 있는 다른 여러 퍼즐게임 역시 악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퍼즐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은 일견 매우 무모한 시도였다. 하지만, 수학적 퍼즐을 무척 좋아하는 이 부부는 시장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자기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그때를 돌이키며 오히려 시장 상황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바이너리 아츠의 첫 번째 제품을 들고 있는
윌리엄 키스터(왼쪽), 안드레아 바텔로(가운데), 빌 리치(오른쪽)
빌 리치와 안드레아 바텔로는 ‘열정적인 수학자, 엔지니어, 발명가들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전 세계의 소년 소녀가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간단한 장난감으로 만드는 것’을 바이너리 아츠가 달성해야 할 임무로 정의했다. 빌 리치가 자라난 환경을 살펴보면 그가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앨리스터 리치는 벨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재직한 바 있다. 벨 연구소는 전화 교환기부터 전선 피복, 트랜지스터에 이르는 제품을 개발했으며, 통신과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벨 연구소의 컴퓨팅 테크놀로지 센터의 이사로 재직한 윌리엄 키스터는 앨리스터 리치의 절친한 친구다. 앨리스터 리치의 장남이자 빌 리치의 형인 데니스 리치도 아버지에 이어 벨 연구소에서 일했으며, 데니스 리치는 C 언어와 유닉스를 개발해 현대 컴퓨터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빌 리치는 윌리엄 키스터, 앨리스터 리치, 데니스 리치와 같은 재능 있고 열정적인 수학자이자 엔지니어, 발명가에게 둘러싸여 살았으며, 이들로 인해 퍼즐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던 것이다.

바이너리 아츠의 첫 번째 퍼즐 <헥사데미컬 퍼즐>
바이너리 아츠의 첫 번째 제품군은 <헥사데미컬 퍼즐>, <더 캣>, <더 호스> 3종류의 수학적 퍼즐이었다. 이 3종류의 퍼즐은 앞서 언급한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 윌리엄 키스터가 만들었다. <헥사데미컬 퍼즐>은 주어진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당시 대부분의 퍼즐과 달리, 0과 1로 상태를 표시할 수 있는 스위치 4개를 이용해 16가지 난이도로 퍼즐을 즐길 수 있었다. 이는 훗날 <러시아워> 등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 ‘난이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이뤄진 퍼즐’의 시작과도 같다. 하지만, 나무를 깎아 만든 <헥사데미컬 퍼즐>은 퍼즐 자체는 훌륭했으나 높은 제작비로 인해 소비자가 역시 지나치게 비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으며, 정교함에서도 다소 미흡했기 때문에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풍겼다. <헥사데미컬 퍼즐>은 현대 퍼즐게임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겼고 가치를 아는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그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결국 단종되었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바이너리 아츠는 플라스틱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스핀아웃>, <백스핀>, <톱스핀>이라는 이름의 세 가지 퍼즐을 출시한다. 이즈음부터, 정확히는 1990년을 전후해서 미국 시장에 두 가지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1989년 경기 침체로 인해 많은 젊은 실업자가 발생했고 이들은 좀 더 싸면서 성인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작은 장치로 이뤄진 완구를 사는 데 열중했는데, 10달러 전후의 퍼즐이 이 젊은 실업자들의 새로운 취향에 딱 알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부터 도시 교외에 만들어지던 새로운 쇼핑몰들은 새로운 세대의 성인 소비자들에게 맞는 신제품을 갖추길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렇게 새로워진 시장 환경으로 인해 바이너리 아츠는 여러 새로운 퍼즐을 시장에 소개할 수 있었다. 이런 시장의 변화는 바이너리 아츠에게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그리고 뉴욕 완구 박람회에서 런던 해러즈 백화점의 수석 완구 바이어인 이지 대더보이와의 만남은 바이너리 아츠가 미국 시장뿐만이 아닌, 해외 시장으로 수출하는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도약이 승승장구의 길로 이어지진 않았다. 제1차 걸프 전쟁이 발발하면서 바이너리 아츠의 퍼즐을 만드는 공장이 군에 징발되었고, 공장이 징발된 동안 바이너리 아츠가 퍼즐을 만들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생산 기계는 단 한 대뿐이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주문 건을 소화하기 위해 이 단 하나의 생산 기계를 24시간 내내 가동시켜야 했고, 빌 리치는 이때가 바이너리 아츠 역사상 가장 두려웠던 때였다고 회상한다.
1995년, ‘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퍼즐 개발자 요시가하라 노부유키가 자신이 만든 퍼즐 게임 하나를 바이너리 아츠에 소개했다. 그 퍼즐게임의 제목은 <도쿄 주차장(Tokyo Parking)>으로, 좁은 주차장에 차량이 전진과 후진만 가능할 정도로 이중 삼중으로 가득 주차된 주차장에서 차량 하나를 주차장 밖으로 빼내야 하는 퍼즐게임이다. 빌 리치는 이 퍼즐게임을 소개받은 자리에서 놉과 계약하고는 이 퍼즐을 좀 더 발전시켜 1996년 미국 시장에 출시한다. 그렇게 1인용 퍼즐게임 시장에 기념비적인 베스트셀러 <러시아워>가 등장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미국 소매 시장은 또다시 변화하고 있었는데, 성인을 위한 고급 생활용품 매장이 어린이를 위한 고급 완구점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도쿄 주차장>
<러시아워>를 출시하면서 바이너리 아츠는 하나의 새로운 지향점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초급자부터 전문가’까지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난이도의 여러 문제를 푸는 퍼즐게임을 만드는 것이 그 목표였다. 그 후 <호퍼스>, <리버크로싱>, <팁오버>, <러시아워 사파리> 등 이 공식을 따른 다양한 논리 퍼즐게임이 만들어지게 된다. <러시아워> 이후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퍼즐 제품군이 등장한 것이다.

<러시아워>
‘초급자부터 전문가’까지란 개념은 온라인 게임에도 적합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바이너리 아츠도 1990년대 말에 찾아온 ‘닷컴 열풍’에 휩쓸린다. 하지만 컴퓨터 환경에 맞춘 온라인 게임으로 확장하려던 시도는 닷컴 버블의 붕괴 등으로 인해 바이너리 아츠로 하여금 큰 비용을 치르게 했을 뿐이었다. 닷컴 버블의 붕괴는 90년대 말 성장하던 온라인 게임 소매점의 파산과 함께 바이너리 아츠의 2000년대 초반을 힘겹게 만들었다. 그후 바이너리 아츠는 다시 원래 잘하던 분야로 돌아가, 열정적인 발명가들의 아이디어를 훌륭한 퍼즐로 전환해 전 세계의 소년 소녀에게 전달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바이너리 아츠는 미취학 아동과 선행 학습을 원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어 시장을 돌파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내놓은 어린이 게임은 모두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출시된 지 2년 이내에 모두 단종되고 만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지나온 끝에, 2002년에 <징고>가 만들어졌다.


<징고>의 초판과 현재의 모습
<징고>의 시작도 물론 대단히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의 실패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판매가 저조한 것은 다를 바 없었지만, 몇몇 완구점에서만큼은 <징고>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었다. 바이너리 아츠는 곧 <징고>의 판매가 오르고 있는 매장들의 특성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한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징고>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매장들은 주로 점주가 이 게임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체험해볼 수 있는 매장이었다. 즉, 게임 자체는 상품으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품의 겉모습은 소비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제품 패키지 디자인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낡아 보였던 것이 문제였다. 바이너리 아츠는 <징고> 초판의 패키지 디자인을 폐기하고, 즉시 새롭게 패키지 디자인을 변경해서 재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징고> 판매량은 <러시아워> 바로 다음인 2위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2003년 바이너리 아츠는 회사명을 씽크펀으로 변경한다.
<러시아워>와 <징고>의 성공이 계속되고 시장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하면서, 바이너리 아츠는 새로운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회사명에 대한 것이었다. ‘바이너리 아츠’란 이름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었다. 경영진은 이 회사가 가진 제품들의 특성이 ‘사용자가 사고력을 발휘하도록 고안됐으며, 사고력을 사용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제품’이라 정의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씽크펀이란 이름을 만들어냈다. 2003년, 바이너리 아츠는 회사명을 씽크펀으로 변경했고, 그 후 지금까지 씽크펀은 1인용 퍼즐게임의 대표 회사로 자리잡았다. 물론 그 씽크펀의 이름을 가장 돋보이게 만들고 있는 일등공신이 <러시아워>라는 점도 여전하다.
글 현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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