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게임 개발자 하임 샤피르입니다. 게임 개발을 시작한 지는 41년이 됐습니다.
<할리갈리>는 세계적으로도 명작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더욱 특별한데요. <할리갈리>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개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할리갈리>는 처음 개발했을 때는 유아를 위한 교육용 카드 게임이었습니다. 어린이에게 5까지 세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죠. 당시에는 서로 다른 5개의 게임 시리즈로 구상했는데, 이 게임들의 라이선스를 논의하다가 한 프랑스 회사와 만났습니다. 그 회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파리까지 가게 되었는데요, 파리에 가서 프레젠테이션하던 도중에 퍼뜩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할리갈리>에 대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때 파리행을 결정했던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과일 다섯 개를 모으면 종을 치는 방식의 게임이었나요?
사실 처음 개발할 때는 종도 없었고 카드 그림도 과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도 <할리갈리>가 아니라 ‘피콜로’였죠. ‘피콜로’는 호텔에서 가방을 받아주는 벨보이를 의미하는 말인데요, 여행 가방을 5개 모으는 것이 게임 설정이었습니다. 5개를 모으면 소리를 지르는 방식으로 친구들과 게임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게임을 하고 있는데, 한 소년이 누르면 소리가 나는 오리 인형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 인형을 잠깐 빌려서 게임을 해봤더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소리가 나는 물건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피콜로’가 벨보이를 뜻하니까, 자연스럽게 호텔의 종을 떠올리게 됐어요. 이렇게 완성된 게임을 아미고에 ‘테이크 파이브’라는 이름으로 제안했죠.
그러고 나서는 여행 가방이 과일로 대체되었군요. 카드에 들어간 과일의 종류는 어떻게 선택이 된 것인지 궁금한데요, 과일을 고른 기준이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딱 4종류로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과일의 종류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서로 다른 과일이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색상이 뚜렷하게 다른 과일들로 골랐습니다. 과일이 4종류인 것은 그 정도여야 게임의 밸런스가 적당해지기 때문입니다. 과일 5개가 나타나는 것이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안 되니까요.
<할리갈리 익스트림>을 개발한 게 <할리갈리>를 출시하고 15년 만이었죠. <할리갈리 익스트림>을 만들게 된 계기가 따로 있었나요?
<할리갈리>는 어렵지 않은 게임이에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죠. 하지만 아주 어린 사람들은 이 게임도 어려워해요. 그래서 만들었던 것이 <할리갈리 주니어>였습니다. 숫자를 셀 것도 없이 광대의 얼굴을 보고 간단히 구분만 하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리갈리 주니어>가 성공하고 나니, 반대로 <할리갈리>보다 좀 더 어려운 게임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게 <할리갈리 익스트림>을 만들게 된 계기죠.
최근 한국에서는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도 <할리갈리>에 뒤지지 않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요?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는 ‘스피드 스택킹(컵 쌓기)’ 대회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저는 종종 아들 둘과 함께 게임을 개발하곤 하는데, 어느 날 아들이 “우리도 컵 쌓기를 이용해서 게임을 만들어 봐요. 분명 잘 될 거예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제안을 시작으로 우리는 25시간 만에 새로운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서로 다른 색의 컵을 카드의 그림에 따라 쌓거나 늘어놓는 방식으로요. 하지만 카드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할 필요가 있었죠. 처음에 만들었던 것은 그냥 컵이 그려져 있는 카드였거든요. 좀 지루했죠. 그 후로 저는 아들과 함께 카드의 그림을 재미있게 만드는데 골몰했습니다. 3개월이 걸려서 결국 마음에 드는 게임을 완성했고, 그것이 지금의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입니다.
확실히 카드의 재미있는 그림들이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의 매력 포인트이긴 해요. 그 매력 때문에 전 세계 팬들의 아이디어를 모은 팬 에디션이 제작되기도 했었죠?
그 팬 에디션은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의 폴란드 유통사에서 제안한 것인데요,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스스로 이 게임 문화에 공헌할 수 있게 만든 좋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해요. 몇몇 카드는 정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고, 또 어떤 카드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한국에서 참여한 카드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할리갈리 컵스 팬 에디션>
최근 출시된 <이것 좀 봐>도 상당히 인상적인 게임인데요, 이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도 좀 이야기해주세요.
보통 어린이들은 4살 이전까지는 부모가 골라준 퍼즐 같은 것을 가지고 놀다가 4살이 넘으면 보드게임을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때부터 각자의 차례와 라운드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죠. 제 손녀가 4살이었을 때 손녀를 위해 만든 게임이 <이것 좀 봐>입니다. 정말 단순한 게임이죠. 카드를 뒤집고, 카드를 찾으면 됩니다. 저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거기에 살을 더 붙였습니다. 이 게임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봐주면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즐길 수 있지요. 부모들이 자녀들과 노는 걸 재미없게 느끼면, 자녀들도 그걸 눈치챕니다. 부모가 자녀와 게임을 하면서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 게임을 만든 목적이었습니다.

<이것 좀 봐>
어느 인터뷰에서 ‘오래 가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보드게임에 대한 철학이라고 하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 가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간단합니다. 만약 게임 자체로부터 나오는 재미에만 의존한다면 그 게임의 수명은 짧을 것입니다. 게임 규칙을 통해 마련된 재미는 언젠가는 고갈될 테니까요. 하지만 게임 참가자 각자의 성격이나 두뇌 활동에 따라 테이블 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은 단순하면서도 플레이어에게 많은 두뇌 활동을 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게임 참가자들 간의 교감에 비중을 많이 둘수록 그 재미는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면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 게임을 즐기는 사람으로서는 어떤 게임을 선호하나요?
아시다시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략 게임이 있는가 하면, 빠르고 쉬운 게임도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많이 들지 않고 규칙이 짧으면서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합니다. 이런 게임들을 즐기는 것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게임을 잘하는 편인가요? 게임을 하면 주로 누구와 하나요?
게임 개발자들은 업무의 일환으로 게임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가족, 친구 등 가능한 많은 사람과 게임을 합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게임에 대한 기호가 나이나 심리상태 등에 따라 다르므로 가능하면 다양한 연령이나 성격의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게임이라면, 그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기보다는 보통 아이디어를 얻거나 게임 개발자로서 지녀야 할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게임을 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에 대해 분석할 수가 없거든요.
이스라엘 출신이시죠? 이스라엘의 보드게임 문화가 궁금한데요, 이스라엘에서는 보드게임을 많이들 즐기는 편인가요?
이스라엘은 보드게임 문화가 많이 발전된 편입니다. 게임을 하는 것이 매우 긍정적인 활동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게임을 즐기는 문화 자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토양이 이렇다 보니 좋은 게임 개발자도 계속 배출되고 시장도 거대합니다. 다만 이스라엘에서 주류를 이루는 게임은 다소 딱딱한 교육용 게임입니다. 최근에는 교육과 재미를 결합하는 시도들도 진행되고 있어서, 시장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전업 작가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게임을 개발할 때에는 게임보다 사람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관찰하고, 그 마음을 게임에 싣는 것을 시도하세요. 시중에 나와 있는 게임들을 살펴보는 것보다, 눈과 귀와 마음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것을 게임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할리갈리>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할리갈리>에 대한 한국 팬들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내년쯤에는 제가 한국을 방문해서, 팬들과 함께 서로 좋아하는 게임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권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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