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갈리,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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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리콜라>와 같은 심오한 전략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그의 주변에는 간단한 게임을 즐기는 1,000명 이상의 사람이 있다. 2002년 보드게임 카페가 생긴 이래 <카탄>을 필두로 다수의 해외 전략 게임이 국내에 소개됐지만, 정작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고 많이 판매된 보드게임은 간단한 게임이다. 그중 가장 잘 나가는 게임은 무엇일까? 물어볼 것도 없이 <할리갈리>다.
 
‘같은 과일이 다섯 개가 되면 종을 쳐라’라는 한마디로 압축되는 간단한 규칙, 속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환경, 재미를 극대화하는 소도구 ‘종’의 사용 등 <할리갈리>의 간단하지만 흥미로운 게임 요소는 많은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게임이 워낙 단순해서 별로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게임일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의 개척은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
 
특히 <할리갈리>의 핵심 소도구인 종은 지금이야 너무나 보편화 되어있고, 반응속도를 겨루는 보드게임이라면 당연히 들어가는 구성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런 풍조도 <할리갈리>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할리갈리>의 과일은 딸기, 바나나, 라임, 자두 4종이며, 카드에는 각각의 과일이 1개에서 5개까지 그려져 있다. 게임을 할 때는 먼저 카드를 잘 섞은 뒤 모두 똑같이 카드를 나눠 갖는다. 카드 더미는 그림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은 채 각자 앞에 둔다. 이제 하는 일은 서로 돌아가며 각자의 카드 더미에서 맨 위에 있는 카드를 1장 펼치는 일. 플레이 인원만큼의 카드가 펼쳐지고 한 장씩 바뀌는 상황이 계속된다.
 

종을 울릴 시간이다
 
어떤 한 종류의 과일이 5개가 되면 재빨리 종을 쳐야 한다. 종을 가장 빨리 친 사람은 현재까지 테이블에 쌓인 카드들을 획득한다. 각자가 가진 카드 더미의 두께는 소위 말하는 피통(HP)의 개념이다. 따라서 카드를 모두 잃은 사람은 게임에서 탈락, 최후까지 남은 사람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말로는 이렇게 건조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실제 게임 분위기는 총잡이나 검객의 결투를 연상시킬 만큼 긴장감 가득하다. <할리갈리>의 대만판 제목이 ‘독일 심장병’인데 게임의 이런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카드가 한 장씩 펼쳐질 때마다 상황이 바뀌고, 같은 과일 5개가 언제 뜰지 모르는 데다 막상 과일 5개가 뜨면 가장 손이 빠른 한 사람만이 카드를 독식한다. 이렇게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들이 군더더기 없이 마련되어 있다.
 

<할리갈리> 대만판. 제목을 한국식 독음으로 읽으면 ‘덕국심장병’이다. ‘덕국’은 독일을 의미한다.
 
게임 자체가 가진 재미 외에도, 한국인들에게는 <할리갈리>에 끌릴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퀄리티가 달라지는 비디오 게임의 발전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저마다의 손에서 돌아가는 스마트 게임의 난립은 많은 사람에게 손쉬운 즐거움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동네 놀이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던 공동체 놀이의 빠른 소멸이라는 아쉬움도 함께 품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제, 그런 공동체 놀이의 감각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할리갈리>가 보드게임 카페 시대의 대표 게임으로 떠오르고 많은 학부모가 <할리갈리>를 사게 된 이유 중에는 <할리갈리>에서 풍기는 구식 놀이 감각이 주는 향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장점들이 소비자에게 크게 호감을 사 <할리갈리>는 국내에서 빨리 전파되었다. 학교와 유치원 등 교육 기관에도 많이 보급되어 어린이라면 다 아는 게임이 되었으며, 해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몇 해 동안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의 어린이 선물로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가 알고 있는 국민 게임이 되어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지금은 어지간한 언론이나 방송에서 <할리갈리>가 언급될 때도, 굳이 <할리갈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윷놀이가 어떤 게임인지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할리갈리>라는 이름은 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이름이다. 1990년, <할리갈리>의 작가 하임 샤피르가 훗날 <할리갈리>의 제작사가 되는 독일의 아미고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가져간 <할리갈리> 프로토타입의 이름은 ‘테이크 파이브(Take 5)’였다. 같은 그림이 다섯 개가 되었을 때 액션을 해야 한다는 게임 규칙을 그대로 표현한 이름이다. 아미고는 이 ‘테이크 파이브’를 1991년 정식 발매하면서 게임 이름을 새로 지었는데, 프로토타입의 발상과는 달리 카드의 테마인 과일 부분에 착안해 이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이 얻은 새 이름은 <투티 프루티(Tutti Frutti)>. 이탈리아어로 ‘모든 과일’이라는 뜻이며, 여러 종류의 과일이 들어간 아이스크림 등에 쓰이는 관용어다. ‘투티 프루티’는 미국에서는 1955년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가 발표한 노래 제목으로도 유명한데, 1950년대를 풍미했던 블루스/록 계열 가수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자기 음반에 수록을 시도한 명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한국 CF에서도 자주 나와 여러 사람에게 친숙하게 들리는 곡이다.
 

리틀 리처드
 
<투티 프루티>는 여러모로 친숙하게 들리는 이름이고 시장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태어난 지 2년 만에 개명을 당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문제가 된 것은 상표권. <투티 프루티>가 태어난 지 2년이 지난 1993년, 한 오스트리아의 회사가 ‘Tutti Frutti’라는 이름에 대한 상표권을 등록했고 아미고 측에 2%의 로열티를 지급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아미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티 프루티>의 이름을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바뀐 이름이 우리가 잘 아는 <할리갈리>다.
 
그런데 도대체 <할리갈리>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 <할리갈리>의 작가 하임 샤피르에 따르면, 별다른 뜻은 없고 그저 듣기에 기분 좋은 어감일 뿐이라고 한다. 뜻이 없더라도 이름을 붙인 이유는 있을 터. 아미고 측에 다시 물어보니 독일에서 할리갈리라는 말은 즐거운 분위기, 액션 등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나이트클럽 파티나 디제잉 파티 등에서 할리갈리라는 수식어를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즐거운 소동을 형용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양의 홀짝 게임과 비슷한, 상대의 주먹 안에 씨앗을 몇 개 쥐고 있는지 맞추는 오래된 게임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상대에게 주먹을 보여주며 “할리갈리, 얼마나 들었게?”라고 말하는 법칙인데, 여기서 할리갈리란 말이 쓰인 의미는 아마 우리 식으로는 “준비, 땅”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할리갈리라는 말이 가진 의미들을 조합하면 확실히 보드게임 <할리갈리>의 이미지와 그야말로 걸맞는다. 상표권 문제 등 예기치 않은 일들로 바뀐 이름이지만 어찌 보면 전화위복인 셈이다.
 

<할리갈리>의 작가 하임 샤피르
 
<할리갈리>는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의 보드게임 작가 하임 샤피르의 대표작이다. 하임 샤피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성공한 보드게임 작가이며, 40년 가량 창작 활동에 종사한 원로다. <할리갈리>는 그가 만든 보드게임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한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전 세계 20개 이상 국가에서 정식 발매됐으며 ‘쉽고 재미있는 보드게임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 되었다. 이 간단해 보이는 작품도 사실 3년 정도의 개발 기간과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다.
 
하임 샤피르에게 게임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즐거운 아이디어가 제품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힘이며, 이것이 잘 구축된 작품은 당장 유행하지 않아도 꾸준히 인기 있는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게임 철학이 말해주듯, 하임 샤피르는 간단한 게임 분야에서 굵직한 작품을 다수 만들었다. 물론 이 가운데 상당수 제품이 국내에도 정식 발매됐다.
 
글 박지원
 
다양한 <할리갈리> 시리즈
 
 
할리갈리 딜럭스 
국내 보드게임카페에서 <할리갈리> 두 세트를 합쳐서 노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착안하여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할리갈리> 원작에 카드 19장을 더한 제품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놀 수 있는 제품. 
 
 
할리갈리 주니어 
숫자 다섯을 순식간에 확인할 수 없는 유아들도 즐길 수 있는 좀 더 쉬운 <할리갈리>. 같은 색의 웃는 광대 그림 2장이 나올 때 종을 친다는 것 이외에 <할리갈리>와 큰 차이는 없다. 약간의 혼란 유발 요소로 우는 광대 그림의 카드가 있다. 
 
 
할리갈리 링엘딩 
역시 유아들을 위한 쉬운 <할리갈리>, 카드 그림을 보고 손가락에 색깔 고리를 끼워서 종을 치면 된다. 직관적이라 이해하기 쉽고 색깔과 위치를 인지하는 교구의 느낌도 난다.  
 
 
할리갈리 링크 
테이블 가운데의 카드를 뒤져서 한 장씩 가져와 일곱 장이 공통되는 그림으로 연결되면 종을 칠 수 있다. 테이블의 카드를 모두가 공유하며 찾는 게임이라 다른 <할리갈리> 시리즈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맛이 있다.  
 
 
할리갈리 익스트림 
<할리갈리>의 고수들을 위한 조금 더 어려운 <할리갈리>, 똑같은 패턴의 과일 카드 2장을 보고 종을 치는 것이 기본, 여기까지만 들으면 <할리갈리 주니어>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할리갈리 익스트림>에는 플레이어를 혼란시키는 돼지, 원숭이, 코끼리가 있다. 이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 
시리즈 가장 최근 작품으로 컵 쌓기 스포츠와 컵 쌓기 교구와 <할리갈리>를 합친 듯한 게임이다. 직관적인 규칙과 친근한 도구로 이해하기도 쉽고 몰입도 잘 된다. 최근 <할리갈리> 원작의 아성을 넘보고 있는 캐주얼 게임의 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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