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100 - 카르카손

타일을 놓아 진행하는 게임의 대표작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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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드게임은 10만종에 이른다. 수없이 많은 게임들이 탄생해, 어떤 것들은 잊혀지고 어떤 것들은 클래식으로 남는다. 이 코너에서는 보드게임의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100선을 뽑아 소개한다.
 
 
<카르카손>은 독일 출신의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 작가가 만들고 한스임글뤽에서 2000년 출판한 타일 놓기 형식의 보드게임이다. <카르카손>은 <카탄>과 함께 21세기에도 보드게임이 건재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게임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독일의 유명한 2대 보드게임상인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과 독일 게임상(Deutsche Spiel Preis)을 비롯해 당시의 각종 중요한 보드게임 상을 대부분 휩쓸었다. 올해의 게임상은 대중성을, 독일 게임상은 게임성을 주로 평가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카르카손>이 두 가지 상을 모두 받았다는 것은 쉬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려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어떤 게임인가?
<카르카손>은 타일을 놓아 도시를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카르카손>에는 길, 성, 들판, 수도원 등이 그려진 타일들이 있는데, 이 타일들을 연결해 도시를 만들면 된다. 자기 차례가 되면 타일 하나를 무작위로 뽑고 그림을 이어 붙인다. 타일을 붙일 때는 길이나 성 등의 그림이 연결되도록 놓아야 한다. 작은 타일 위에 타일이 붙어 2개가 되고 3개가 되며 점점 커질 것이다. 
 

카르카손 성 전경
 
원한다면, 이번에 놓은 타일 위에 말(도시의 시민)을 놓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타일 위에 올려둔 말은 길, 성, 수도원 등이 완성되면 점수를 얻고 회수할 수 있다. 길, 성, 수도원을 완성하고 점수를 얻는다는 규칙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땅 따먹기’ 놀이와 비슷하다.
 
성 공사가 끝날 때, 길 공사가 끝날 때, 수도원 주변이 개발될 때 등, 특정 시기마다 여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점수를 얻고 플레이어의 손으로 돌아온다. 각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시민의 수가 많지 않으니, 시민을 전략적으로 배분해 제때 돌아오도록 해야 점수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얻은 점수는 아래 사진과 같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기록한다. 점수를 많이 얻어 말을 가장 멀리 전진한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카르카손의 점수판
 
<카르카손>은 평화롭게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 같지만, 막상 게임을 하면 그렇지 않다. 이 게임의 핵심은 시민 배치를 통한 영향력 경쟁이다. <카르카손>은 시민이 타일의 특정 구역을 점거하면 해당 구역에 다른 시민을 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내가 놓은 타일과 연결된 길, 성, 들판에 다른 시민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말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동떨어진 타일들이 다른 타일에 의해 연결되면 한 구역에 두 개의 말이 놓일 수는 있다. 점수 계산 시에는 해당 구역에 시민을 가장 많이 놓은 플레이어만이 혼자 점수를 독식한다(시민의 숫자가 같을 때는 둘 다 득점한다). 그래서 <카르카손>을 하다 보면 남이 키워놓은 성이나 길에 무임승차하려는 노력과, 내 영역에 무임승차하려는 플레이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시종일관 이어진다. 이를 위해 플레이어들은 남은 타일이 얼마나 있는지 끈임없이 생각해야 하며, 게임을 거듭할 수록 <카르카손>의 더욱 풍부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전설의 도시 카르카손
<카르카손>은 실존하는 도시 카르카손을 모델로 하고 있다. 카르카손은 프랑스 남부 랑독-호시용 지역에 위치하며, 오드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에서 파리와 몽 생 미셸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카르카손은 52개의 성과 이중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로, 중세 시대의 성이 잘 보존돼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도 지정됐다. 이 곳은 중세 때 프랑크 왕국의 종교 정책에 맞서 싸운 사라센 자유신앙주의자들의 투쟁을 상징하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카르카손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당시 사라센 왕국은 프랑크 왕국에 포위돼, 식량이 다 떨어져 항복하기 직전이었다. 이 때, 사라센의 왕비 카르카스는 성에 남은 모든 식량을 돼지 한 마리에 모두 먹여 우량 돼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돼지를 성 밖으로 던졌다. 그것을 본 프랑크 왕국의 군사들은 성 안의 식량이 아직 넉넉하다고 판단, 장기전이 될 것을 우려해 철군했다고 한다. 카르카손이란 말은 ‘카르카스의 승리’라는 의미이며, 성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있는 동상도 카르카스의 동상이다.
 

돼지 한 마리로 나라를 구한 사라센의 왕비 카르카스
 
 
카르카손의 성공
<카르카손>은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보드게임 붐을 이끈 게임이다. 그런 만큼 보드게임 분야 곳곳에서 <카르카손>의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다.
 

미플은 현대 보드게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카르카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곳은 게임 말이다. <카르카손> 이전 게임 말은 보통 평범한 나무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카르카손>에서 선보인 게임 말은 사람 형태로 디자인되어 인기가 높았으며, 미플(meeple)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미플은 my와 people의 합성어다. <카르카손> 이후 수많은 보드게임에서 미플의 변형 말이 사용됐으며, 이 말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회사도 있다. 이런 회사를 통해 해적, 닌자, 원시인 등 특별한 디자인의 미플이 상품화되기도 했다. 미플이라는 이름이 게임 제목으로도 활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7원더스>를 만든 앙투완 보자 작가가 디자인한 <테러 인 미플 시티>가 있다.
 
 
카르카손의 확장판들
<카르카손> 이전에도 인기 있는 게임의 확장판 발매는 상업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일이었는데, <카르카손>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큰 확장판을 거의 매년 발매했다. 타일 몇 개로 구성된 작은 확장판과 미니 확장판, 이벤트 프로모션 확장판, 다른 확장들을 묶어 발매한 스페셜 에디션 등 발매된 확장판의 수만으로도 <카르카손>이 얼마나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카르카손의 첫 번째 확장, 여관과 대성당

 

<카르카손>의 가장 유명한 확장판은 첫 번째로 발매된 확장판인 <여관과 대성당>이다. <여관과 대성당> 확장판은 6명까지 할 수 있게 해주며, 시민 2명분의 일을 하는 큰 미플이 있어 좀 더 전략적으로 영향력 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도로와 성의 점수를 크게 만들어주되 완성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 새로운 타일이 들어있어, 타일을 놓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이 확장판은 사람들이 필수 확장이라 부를 정도로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카르카손 앱

 

<카르카손>은 웹, Xbox Live, iOS 등 다른 플랫폼으로도 즐길 수 있다. 남은 타일 수도 확인하기 쉽고 점수 계산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게임판을 한 눈에 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타일을 뽑는 손맛이나 뽑은 타일을 서로에게 유리한 곳에 붙이라고 설득하는 재미는 기대하기 어려워 역시 직접 손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2016년 카르카손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한 핀란드 대표와 세르비아 대표가 시합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매년 10월 셋째 주에 독일 에센에서는 세계 최대의 보드게임 축제 슈필이 개최되는데, <카르카손 월드 챔피언십>은 이 축제의 메인 행사다. 2006년 시작해 36개국의 챔피언이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월드 챔피언을 배출하고 있다. 대회는 6라운드 스위스리그 시스템으로 진행되며 <카르카손> 기본판만으로 월드 챔피언을 가려낸다. 2016년 현재 아직 한국에서 대회가 조직되지 않은 관계로 한국인의 참가는 없는 상태다.
 
 
작가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
<카르카손>을 만든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 작가는 독일 퀼른과 아른스베르크에서 음악과 신학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다. 1963년생으로 <카르카손> 발매 당시 다른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그래서 <카르카손>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작가보다는 출판사의 공이 크다는 시각도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작가이자 한스 임 글뤽의 사장이던 베른트 브룬호퍼가 젊은 작가의 작품을 발굴해 게임을 세련되게 다듬었기에 <카르카손>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
 

카르카손을 만든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 작가
 
 
그 공을 어디에 돌리든, <카르카손>의 아이디어는 작가 본인의 여행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그의 여행지였던 프랑스 남부 지역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프랑스 남부 지역의 고성들은 암울한 십자군 이야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는 거기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둘러싸인 성의 아름다움에 착안했다. 작가 역시 복잡한 게임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는 이해하기 쉽고 플레이하기 어렵지 않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 결과 초기 구상에서 많은 것들을 덜어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렇게 퍼즐적인 요소가 들어간 <카르카손>이 만들어졌다. <카르카손> 이후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는 폼페이의 몰락과 푸거 가문 등 주목 받는 작품을 냈으나, <카르카손> 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2013년, 그는 한국에 삼국지 영웅집결을 출시해 독일을 벗어나 다양한 회사와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타일놓기 보드게임의 완성형
<카르카손>은 한 판을 플레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으며(40분 정도) 규칙이 간결하면서도 전략성이 있어, 타일을 연결해 나가는 보드게임의 완성형으로 평가된다. 덕분에 십여 년간 해당 카테고리에서 딱히 비교 대상이 될 만한 게임이 없었다. 어쩌면 <카르카손>이 크게 성공함에 따라, 그 이후에 등장하는 타일놓기 형식의 전략 게임은 이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카르카손>은 뛰어난 완성도로 해당 장르 발전을 10년쯤 앞서간 장본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카르카손>은 발매 후 15년 가까이 된 지금도 다양한 확장판과 관련 게임으로 등장하며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글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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