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렌더
광채, 빛남, 화려함을 뜻하는 '스플렌더(splendor)'는 마치 보석을 형상화한 단어와도 같다. <스플렌더> 보드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르네상스 시기의 부유한 상인 역할을 맡으며, 자신의 자원을 사용해 광산이나 교통수단을 얻고 원석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바꿔줄 장인을 고용한다. 가치가 높은 보석을 알마나 확보했나에 따라 점수를 얻으며, 모은 보석 세트에 따라 귀족의 호의를 얻어 점수를 얻기도 한다.
<스플렌더>에서 플레이어는 보석 토큰과 황금 토큰을 가져가고, 이 토큰을 이용해 개발 카드를 구매하면, 개발 카드는 플레이어에게 점수와 보너스를 제공한다. 이 보너스는 플레이어가 앞으로 구매할 개발 카드의 비용을 줄여준다. 한 플레이어가 15점 이상을 모으면 마지막 플레이어까지 차례를 진행한 뒤 게임이 끝나고, 이때 점수가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이와 같이 간단명료한 게임 방식을 가지고 있는 <스플렌더>는 상당한 전략적 깊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 싸움이 펼쳐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게임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1월에 열린 <뉘른베르크 완구박람회>에서 발표됐다. <스플렌더>는 박람회장에서 이 게임을 접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는데, 게임을 해 본 직후에 "<카르카손>만큼의 잠재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남긴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당시 <카르카손>은 10년 넘게 베스트셀러로 군림하며, 독일식 보드게임의 대표작으로서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기에 이는 매우 과감한 평가였다. 그런 평가와 함께, <뉘른베르크 완구박람회> 현장에서 <스플렌더>의 한국어판 발매가 결정됐다. 물론 그 직전인 2013년 10월에 열린 에센 <슈필>에서 전달받은 프로토타입을 검토한 바가 있었기에 빠른 결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어판 발매가 결정된 지 어느덧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이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스플렌더>는 최소한 한국에서 <카르카손>을 넘어서는 판매를 기록했고, 전략적인 보드게임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하나의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스플렌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으며, 두터운 팬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렇게 <스플렌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전국 각지에서 예선전을 치르고, 예선 통과자들을 모아 본선을 치르는 <스플렌더 그랑프리>와 같은 전국대회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이런 대단위 행사를 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10년 사이에 <스플렌더>는 본판을 보강하기 위한 확장과 2명 전용 게임, 마블과 포켓몬스터라는 유명 시리즈와 합작한 파생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지난 10년간 <스플렌더>와 함께 했던 시간을 하나씩 되짚어 보자.
스플렌더가 만들어지기까지

스플렌더를 만든 마르크 안드레 작가
<스플렌더>를 만든 마르크 안드레 작가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무역업에 종사했었다. 물건을 사고팔며 돈을 버는 일을 게임처럼 즐겼던 그는 일하는 데 드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중점을 두기로 결정하며,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그는 2011년에 <봉봉>이라는 기억력 게임을 발표하며 보드게임 작가로 데뷔하였고, 그다음에 만든 게임이 바로 <스플렌더>다.

마르크 안드레 작가의 데뷔작인 봉봉
<스플렌더>는 기본적으로 보석이라는 다양한 자원이 있고, 각종 개발 카드는 표시된 자원을 이용해 살 수 있으며, 이렇게 산 개발 카드는 정해진 자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에 플레이어가 해당 자원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태로 발전해나가며, 점차 높은 등급의 개발 카드를 사서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플렌더>가 처음 개발되던 당시에는 어떤 테마도 없이 이와 같은 추상적인 뼈대만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 보드게임 시장에서 아무 테마도 없는 추상적인 게임을 낸다는 것은 확고한 의지가 없거나, 특출난 인지도가 없는 개발사가 아닌 한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기에 마르크 안드레 작가와 개발사인 스페이스 카우보이는 게임의 구조에 가장 알맞은 테마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마침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의 일원 중 한 명이 열중하고 있던 르네상스 시대가 게임의 배경으로 정해지게 된다. 사실 <스플렌더>는 게임의 테마가 그리 크게 느껴지는 게임이 아니지만, 테마가 정해짐으로 인해 게임 개발은 점점 속도를 더해갔다.
테마가 정해진 뒤에는 프로젝트 이름으로만 불리던 프로토타입의 제목을 정했다. 보석을 자원으로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보석의 무게 단위를 뜻하는 캐럿(carat)이 최초의 안이었지만, 1998년에 퀸 게임즈에서 <캐럿>이란 제목의 게임을 발매한 바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이 안을 폐기하고 다른 제목을 찾기로 했다. 그 결과는 광채, 화려함, 탁월함과 같이 보석과 어울리는 단어인 '스플렌더(splendor)'가 제목으로 정해졌다.

스플렌더의 귀족 타일들
<스플렌더>의 배경이 르네상스 시대 임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귀족 타일의 인물들은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경쟁 군주들인 영국의 헨리 8세,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1세를 비롯하여, 이들과 연관 관계를 가지는 다양한 인물들이 선정되었다. 프랑수아 1세의 장모인 안 드 브르타뉴, 프랑수아 1세의 며느리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 헨리 8세의 장모이자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인 이사벨 1세, 헨리 8세의 조카 손녀이자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며느리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1세 등 이들은 다양한 관계로 엮여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귀족 타일로 만들어질 인물의 선정 기준은 무엇보다도 단순했는데, '초상화가 남아 있어서 외모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임 구성물로서 인물을 시각적으로 묘사를 해야 하는 만큼 어찌 보면 합당한 이유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초상화는 각기 다른 화가에 의해 그려졌기에 초상화는 참고 자료로 삼고, 게임의 그림을 맡은 파스칼 퀴달 화가가 새롭게 그렸다.

프랑시스 클루에 화가가 그린 프랑스 샤를 4세의 부인 엘리자베트 왕비(엘리자베트 폰 외스터라이히)의 초상화(왼쪽)와 그를 모델로 하여 파스칼 퀴달 화가가 그린 귀족 타일(오른쪽)
게임의 가장 특징적인 구성물인 보석 토큰은 한창 개발이 진행된 뒤에야 도입되었다. 처음 개발 중이던 당시에는 개발 카드와 마찬가지로 보석들도 카드로 표현되어 있었다. 게임이 진행되며 보석 카드를 손에 들고, 보석 카드를 내서 개발 카드를 산다거나, 손에 개발 카드를 드는 행위가 여러 차례 반복되다 보니, 손에 너무 많은 카드를 들게 되어 번거로워진다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마르크 안드레 작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던 중 다른 게임에서 커다란 칩을 게임 중 자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칩은 쉽게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윗면에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을만한 크기였기에, 이를 활용하면 손에 들지 않고 각자 자기 앞에 쌓아놓으며 게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마르크 안드레 작가가 스페이스 카우보이에 보석을 카드가 아닌 칩 형태의 토큰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달했을 때, 스페이스 카우보이는 즉각 그 의견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플라스틱 토큰은 카드에 비해 훨씬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섣불리 사용하기 곤란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플라스틱 토큰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게임을 훨씬 깔끔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마르크 안드레 작가는 게임에 필요한 보석 토큰의 수를 줄이면 가격을 맞출 수 있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를 내기에 이른다. 게임에 사용되는 보석의 수를 줄여 40개만으로도 원활하게 게임이 진행되도록 규칙을 다듬은 것이다.

스플렌더의 보석을 카드가 아닌 토큰으로 표현한 것이야 말로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게임의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스페이스 카우보이는 아스모디에 <스플렌더>의 존재를 소개했으며, 아스모디는 2013년 에센 <슈필>에서 만난 전 세계 파트너사에 <스플렌더> 프로토타입을 제공하며, 게임에 대한 검토를 부탁했다. 그리고, 아스모디는 2014년 1월에 열리는 <뉘른베르크 완구박람회>에 맞춰 게임을 발매했고, 그 직후 많은 파트너사로부터 다양한 언어판에 대한 주문을 받게 되었다.

아스모디가 파트너사에 전달한 프로토타입.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으로 만들어진 카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플렌더 한국어판이 발매되기까지
<스플렌더> 한국어판을 발매하기로 한 코리아보드게임즈도 마냥 쉽게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의 보드게임 시장은 전략 게임의 비중이 매우 낮았으며, 언어 요소가 없는 게임의 경우 병행 수입이 큰 위협이 되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르카손>만큼의 잠재력이 있다고 보긴 했지만, <스플렌더>는 <카르카손>보다 비쌌기에 어느 정도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도 <스플렌더>가 가진 매력을 외면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다만, 당시에는 과감한 결정이었던 만큼 정식 발매에 앞서 예약판매 형식으로 게임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묵직한 보석 토큰이 주는 느낌을 사진과 글만으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예약판매 첫 일주일간의 판매 결과는 매우 저조했다. 무엇보다도 <스플렌더>라는 게임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우려했던 가격 문제도 걸림돌이 되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 결과를 받은 코리아보드게임즈는 게임을 알리기 위한 설명회와 직접 게임을 해본 뒤 후기를 남기게 하는 이벤트 등 다양한 추가 홍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게임을 체험해 보면 <스플렌더>의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홍보 활동을 통해 공개된 몇 편의 후기는 결국 <스플렌더>에 대한 평가를 바꿔놓았다.
후기를 남긴 사람들이 가장 높은 평가를 내린 것은 역시 보석 토큰이었다. <스플렌더>의 보석 토큰은 여타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품질을 지녔으며 보석 토큰이 주는 느낌이 상당한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인터넷에서 사진만으로 <스플렌더>를 접한 사람들은 보석을 토큰이 아니라 카드로 만들었다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 게임이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스플렌더>의 체험 후기가 공개되며 이런 주장은 급격하게 사그라들었다. 보석 토큰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카드가 아닌 토큰 형태야말로 이 게임에 적합하다는 것을, 그리고 보석 토큰의 묵직한 무게와 내구성이 게임의 경험을 얼마나 증진시키는지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런 후기로 인해 가격에 대한 논란도 조금은 잠잠해졌다.

예약판매가 진행되는 중에 카멜업, 스플렌더, 콘셉트가 독일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약판매가 진행되는 중에 <스플렌더>가 <영국 게임 엑스포>에서 최고의 신규 보드게임상을 수상하고, 독일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전 세계 보드게임 플레이어의 이목이 집중되는 독일 올해의 게임상 후보작 발표에서 심사위원단은 <스플렌더>가 후보작에 꼽힌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스플렌더>는 고급스러운 구성물과 독창적이고 간단명료한 규칙이 인상적입니다. 플레이어는 보석을 수집하는 과정에서부터 탁자에 놓인 목표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이 게임은 어느 순간 '과연 누가 15점에 먼저 도달할까'라는 일종의 경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이 게임은 게임을 할 때마다 흥미진진함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한 판이 끝나면 곧바로 재대결을 청하게 만듭니다."
이런 해외 평론가들의 호평은 예약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판매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로 마무리됐다.
<스플렌더>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이 바뀐 것은 결국 예약 구매자들이 제품을 받아본 직후부터였다. 예약 구매한 게임을 받은 사람들이 직접 게임을 해본 후에 호평이 쏟아졌던 것이다. <스플렌더>가 가진 잠재력이 실제로 발현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예약판매에 대한 처리가 끝나고 정식 발매가 이뤄진 후에는 점차 판매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5년에는 대형 할인점을 비롯한 모든 유통 채널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스플렌더 그랑프리
<스플렌더>는 2015년 <보드게임콘>에서 전국보드게임대회 종목으로 선정됐고, <제1회 전국 대학 보드게임 대전>에서도 150여 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토너먼트 경기가 펼쳐지는 등 대중적인 행사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 또한, 쉽게 설명할 수 있으면서도 전략적인 게임 진행이 가능했기에 보드게임 카페에서도 처음 보드게임을 하러 온 손님에게 권하는 대표적인 보드게임이 되기도 했다.
제1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제1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우승자 김가람 선수, 준우승자 김은지 선수, 3등을 기록한 신철민 선수
그러던 차에 2016년에는 전국적으로 <스플렌더>를 알고 있는 사람이 충분히 생겼다는 판단과 이들을 모아 대회를 함으로써 <스플렌더>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맞물리며, <스플렌더>만을 위한 전국 규모의 대회인 <스플렌더 그랑프리>가 기획되었다. '모두의 축제, 하나의 왕좌'라는 슬로건 아래 <스플렌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전부 모아 챔피언을 뽑아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어, 2달 동안 전국 각지에서 총 75회의 예선이 치러졌다. 이 예선에 참여한 참가 선수가 무려 3천여 명에 달했을 정도로 <스플렌더 그랑프리>는 당시 최대 규모의 보드게임 대회였다. 2016년 8월 21일에 치러진 7시간에 걸친 본선 경기 끝에 한 명의 챔피언을 배출했다. <스플렌더>를 만든 마르크 안드레 작가도 <스플렌더 그랑프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축전 영상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대회를 위한 규칙 정비에 참여하기도 했다. 예선을 거쳐 선발된 133명의 본선 진출자가 펼친 첫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 본선에서는 김가람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며, 첫 번째 스플렌더 챔피언이 되었다.
2017년에 열린 제2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제2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우승자이자, 스플렌더 전략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정지원 선수
첫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가 성공적으로 끝났기에, 2017년에도 <스플렌더 그랑프리>가 열렸다. 첫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가 마르크 안드레 작가의 축사로 시작됐다면, 두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는 <스플렌더>의 확장 <스플렌더 확장: 찬란한 도시>가 곧 찾아올 것임을 알리는 영상과 함께 시작됐다. 선수들의 연령 구분 없이 진행됐던 첫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와 달리 두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부터는 선수의 연령에 따라 초등부와 일반부로 나뉘어 대회가 치러졌다. 체력과 집중력에 있어 성인과 비교해서 약한 초등학생 선수들이 대회 후반으로 가며 점차 불리해졌기에, 둘로 나눠 별개의 대회로 치르기로 한 것이다. 첫 번째 대회가 끝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 연구하였던 덕에 새로운 강자들이 예선에 등장하며 이변을 예고했다. 그 결과 첫 번째 대회에서 4강에 올랐던 선수들이 속속 탈락하고 치열한 접전 끝에 지난 대회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신예 선수인 정지원 선수가 일반부 우승을 국효성 선수가 초등부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지원 선수는 대회에 참여하기 전에 <스플렌더>를 무려 2,000판 넘게 했을 정도로 <스플렌더>에 대해 깊이 연구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지원 선수는 대회를 마친 후에 자신이 <스플렌더>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했던 전략과 팁을 공유했다. 그는 <스플렌더>에서 효율이 좋은 카드를 찾는 법과 상황에 따른 대처법 등은 물론 특정한 상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귀족 타일을 노리는 전략이 비효율적일 수 있음을 공유했다. 그의 전략 공개는 <스플렌더> 플레이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대회 후에 많은 플레이어들의 실력 향상에 기여했다.

2018년에 열린 제3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제3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우승자들과 준우승자들
2018년에는 어김없이 세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가 찾아왔다. 어느덧 예선 참가 인원은 5천여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스플렌더 그랑프리>의 위상이 높아졌다. 초등부에서는 김의빈 선수가, 일반부에서는 전찬기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초등부의 김의빈 선수는 두 번째 <스플렌더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국효성 선수에게 지며 준우승을 차지했었는데, 마침내 우승을 차지했다. 일반부에서는 전년도 대회와 전혀 다른 선수들이 4강에 진출하며 신흥 강자들의 힘을 과시했다. 무엇보다도 정진원 선수가 공개한 전략을 기반으로 하고 이를 응용하여 저 나름대로 발전시킨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회장 한편에서는 <스플렌더 확장: 찬란한 도시>를 이용한 미니 대회도 펼쳐져, 토너먼트에서 일찍 떨어진 선수들도 미니 대회에 참가해 하루를 <스플렌더>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2019년에 열린 제4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제4회 스플렌더 그랑프리 우승자들과 준우승자들
2019년에도 어김없이 <스플렌더 그랑프리>가 열렸다. 전국 7천여 명의 선수가 예선에 참여해 또다시 최다 인원 참가 보드게임대회라는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초등부를 저학년부와 고학년부로 나눠, 초등부의 규모를 더 키웠다. 그 결과 초등부 224명(저학년부 107명, 고학년부 117명), 일반부 86명이 한자리에 모여 본선 대회가 치러졌다. 초등 저학년부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이미 전략 연구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에서의 대회라 그런지, 참가한 선수들 중 누가 우승을 차지하건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참가자가 상당한 실력을 뽐냈다. 누가 더 신중하게 자신의 전략을 현실화시키는가에 승패가 좌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의 어느 대회보다도 긴장감이 넘치는 대회였다. 초등 저학년부에서는 이지후 선수가, 초등 고학년부에서는 정준형 선수가, 일반부에서는 구형남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2023년 스플렌더 그랑프리
아쉽게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해 <스플렌더 그랑프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열리지 못했다. 2023년에 다시 돌아온 <스플렌더 그랑프리>는 초등부 대회로 축소되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대회였기에 치열한 경쟁의 장이라기보다는 축제의 장으로서 함께 즐기는 행사로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예선 대회는 초등학교 여름 방학 전후인 7월 8일부터 8월 27일까지 진행됐다. 총 160회의 예선 대회가 열렸으며, 3천 명이 넘는 선수가 참여했다. 초등부로 대회가 축소되었음에도 첫 번째 대회와 맞먹는 인원이 참여할 정도로 <스플렌더 그랑프리>가 돌아온 것을 반기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선을 통과한 216명의 선수가 본선 대회에 참여했다. 저학년부와 고학년부로 나뉘어 대회가 진행됐으며, 중간에 탈락하는 선수 없이 모든 참가자가 3번의 게임을 즐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우승자 1명을 뽑는 것이 아니라, 매 라운드마다의 성적에 따라 스티커를 모았다. 3라운드 모두에서 1등을 차지해 스티커 9개를 모은 선수는 고학년부에서 주하라, 전건우, 김유찬 선수, 저학년부에서 신희재, 이익주, 지건우, 최승현 선수가 있었다.
스플렌더 확장: 찬란한 도시
<스플렌더>는 그 자체로도 매우 균형 잡힌 게임이다. 게임이 끝났을 때 점수 차가 크게 나는 경우가 드물고, 카드 운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실력 차이가 좁혀지기 때문에 자신보다 숙련된 상대와도 추격전을 즐길 수 있으며 종반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게임의 재미나 접근성, 사용자 편의 등 여러 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기에 상대와 취향을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러하듯 완벽한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치열한 전략 연구 끝에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 귀족 타일이 제법 약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카드의 가치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기도 했다. 즉, <스플렌더>는 매우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지만 보완의 여지가 있기는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마르크 안드레 작가와 스페이스 카우보이는 확장을 통해 <스플렌더>를 보완하기로 결정했고, <스플렌더>가 발매된 지 3년이 지난 2017년에 <스플렌더 확장: 찬란한 도시>를 발표했다.
확장이 만들어질 것이란 소식이 들려오자, 기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스플렌더>가 이미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기에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을 잘못 건드려 그 균형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위험이 있으며, 그런 위험을 피하려고 부가적인 장치를 덧대다가는 난잡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스플렌더 확장: 찬란한 도시>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확장은 정확히는 4가지 확장을 포함한 하나의 세트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이들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도시’ 확장은 부가적인 점수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했던 귀족 타일을 대신해, 그 자체가 승리 조건이자 종료 조건인 대도시 타일이 사용된다. 15점을 얻기 위한 경주와 같았던 분위기는 조금 약해지고, 카드 획득에 있어 좀 더 전략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교역소’ 확장에선 ‘동방교역로’ 게임판이 추가되며, 플레이어가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교역소를 점유하고 그 교역소의 효과를 받을 수 있다. 교역소마다 상황과 전략에 따라 미치는 파급력이 달라지므로, 어느 교역소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할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동방무역’ 확장에선 새로운 종류의 개발 카드가 추가된다. 이 확장에선 누가 얼마나 더 새로운 개발 카드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승패가 갈린다.
‘성채’ 확장을 추가하면 개발 카드 선점을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해진다. 플레이어는 카드를 구매할 때마다 성채를 활용할 수 있는데, 펼쳐진 개발 카드 위에 새로운 성채를 놓거나, 이미 놓인 내 성채를 이동하거나, 다른 플레이어의 성채를 제거할 수 있다. 성채를 적절히 사용하면 다른 플레이어를 확실히 견제할 수 있고, 자신의 계획을 착실히 수행해 나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스플렌더>를 변화시키는 4가지 확장들은 게임의 핵심을 흔들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장치들을 덧대어 번잡한 게임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보석상인들의 세계를 더 넓은 무대로 옮겨, 좀 더 광대하고 치열한 세계로 만들어냈다.
스플렌더 대결
<스플렌더 확장: 찬란한 도시>가 발표되고 5년이 지난 2022년 말에는 <스플렌더>를 기반으로 하여 2명이서 더욱더 치열하게 즐길 수 있는 <스플렌더 대결>이 만들어진다. 2명 전용 게임에 특기를 가지고 있는 브루노 카탈라 작가가 마르크 안드레 작가와 협업하여 완성한 게임이 바로 <스플렌더 대결>이다.

새롭게 추가된 요소인 진주와 특권
<스플렌더 대결>에서 자기 차례인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스플렌더>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플렌더 대결>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능력이 추가된 카드가 등장한다. 이런 카드를 구매한 경우 표시된 능력이 발휘되기에 카드의 가치 판단에 있어 새로운 고려 사항이 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진행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기존에는 볼 수 없던 '진주' 토큰이 새롭게 등장한다. 진주는 다른 색깔의 보석들과 다르게 카드의 보너스로 제공되지 않으며, 오직 토큰 가져오기로만 가져올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보석보다 살짝 가치가 높으며, 적절하게 진주를 얻는 것이 중요해진다.

게임판에서 일직선으로 연결된 보석 토큰 3개까지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빈칸이 있어서는 안 되며, 황금 토큰을 이렇게 가져갈 수는 없다.
토큰을 가져오는 방법도 새롭게 바뀌며, <스플렌더 대결>만의 개성을 드런 내다. 같은 종류의 보석 토큰끼리 쌓여 있던 <스플렌더>와 달리, <스플렌더 대결>에선 게임판의 각 칸마다 보석 토큰 1개씩이 놓인 형태로 바뀌며, 게임판에서 일직선으로 연결된 보석 토큰 3개까지를 가져가게 된다. 게임판 위에 보석 토큰이 놓인 위치와 형태를 고려해야만 하기에 플레이어에게 한 가지 더 고민할 거리를 안겨준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색깔의 토큰 3개를 받거나, 진주 2개를 한 번에 가져가는 것처럼 매우 유리한 선택을 하게 되면 상대에게 특권 1개를 주게 된다. 특권은 게임판에서 원하는 토큰 1개와 교환할 수 있으므로, 이를 통해 행동에 적절한 균형을 맞춘 것이다.

스플렌더 대결에선 게임의 종료 조건이 3가지로 늘었으며, 이로 인해 플레이어는 더욱더 다양한 전략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5점 이상을 모은다는 하나의 종료 조건을 가지고 있던 <스플렌더>와 달리, <스플렌더 대결>은 승점 20점이나, 왕관 10개, 한 색깔의 카드로 승점 10점이라는 3가지 종료 조건 중 하나를 달성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승리 조건이 늘어남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세울 수 있는 전략의 가지 수가 늘어나게 된다. 플레이어는 하나의 승리 조건을 노리며 치밀하게 전략을 갈고닦을 수도 있고, 게임의 진행 양상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승리 조건으로 유연하게 바꿀 수도 있다.
이렇게 <스플렌더 대결>은 기존 <스플렌더>의 핵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다양한 변주를 추가했다. 이로써 <스플렌더 대결>은 더욱더 치밀한 게임 진행을 선사하며, 두 플레이어 간의 더욱더 치열한 대결이 가능하게 해준다.
스플렌더, 유명 시리즈와 만나다
<스플렌더>는 다른 유명 세계관을 가진 시리즈들과도 어색하지 않게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워낙 기본이 탄탄하기에 세계관에 맞는 규칙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해당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2021년에는 타노스에 맞서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며, 히어로와 빌런으로 이뤄진 팀을 구성하는 <스플렌더 마블>이 만들어졌고, 2023년에는 몬스터 볼을 모으며 포켓몬을 잡고 진화시키는 <스플렌더 포켓몬>이 만들어졌다. 이들을 통해, <스플렌더>가 이들 세계관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관에 맞춘 추가 규칙으로 인해 기존 <스플렌더>와는 또 다른 느낌과 전략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마치며
지난 10년간 <스플렌더>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봤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스플렌더>와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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