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얼마 뒤면 전 세계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티켓 투 라이드>가 발매 20주년을 맞이한다. 매년 수많은 보드게임이 만들어지며 이전에 만들어진 게임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거친 환경 속에서,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인 10년을 두 번이나 견뎌낸 것이다. 그것도 여전히 현대 보드게임을 대표하는 대표작 중 하나란 자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제 곧 20주년을 맞이할 <티켓 투 라이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먼저 <티켓 투 라이드>가 거쳐온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자.
<티켓 투 라이드>는 2004년 초에 처음 발매되었고, 그해 여름에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을 수상하며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카탄>과 <카르카손> 등 걸출한 현대 보드게임의 대표작을 배출하며 현대 보드게임의 부흥을 이끈 독일은 전 세계 보드게임 팬들로부터 보드게임의 중심지로 인정받고 있었으며, 독일 올해의 게임상은 보드게임 기업과 관계없는 독립적인 평론가와 기자들로 이뤄진 심사위원단이 수상작을 정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고 권위를 높이 사는 상이었고, 따라서 수상 소식만으로도 전 세계의 보드게임 팬에게 큰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티켓 투 라이드>를 수상작으로 발표하며 '놀랍도록 간단한 규칙과 유쾌하고 다층적이며 복합적인 가능성이 흥미롭게 혼합되어 있다. 쉽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흥미진진하다'라 평가했다.

2004년 독일 올해의 게임상 수상작이라는 표시가 부착된 티켓 투 라이드 독일어판
독일 보드게임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독일 올해의 게임상 수상작이 그해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인데, <티켓 투 라이드>도 어김없이 수상작 선정과 동시에 주문량이 치솟으며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당시 독일 보드게임 업체들 사이에 철도 테마의 게임은 판매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철도 테마의 게임들은 대체로 열차 노선을 만들고, 이를 운영하는 회사를 경영하며, 이들의 주식을 사고 파는 등의 어려운 게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티켓 투 라이드>는 그런 선입견을 뒤집어 쉽고 간결한 행태로 철도 테마의 게임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거둔 <티켓 투 라이드>의 성공은 독일 보드게임 업체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더군다나, <티켓 투 라이드>의 퍼블리셔인 데이즈 오브 원더에게도 독일 올해의 게임상 수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면서도 '독일식 보드게임을 개발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던 데이즈 오브 원더에게, 독일 올해의 게임상 수상은 자신들의 목표가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데이즈 오브 원더는 창립 2주년을 갓 넘긴 신생회사였는데, 창립 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독일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한 회사라는 기록을 세운 것 역시 부수적인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보드게임의 중심지인 독일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티켓 투 라이드>는 그 이후에 세계 여러 나라의 보드게임 평론가들에게도 인정받으며, 2008년까지 미국, 일본, 프랑스, 스웨덴 등 총 11개의 보드게임 상을 받았다. <티켓 투 라이드>는 현재까지 총 22개의 언어 판본이 만들어졌는데, 정식 발매된 국가들 두 곳 중 한 곳에서 상을 받은 샘이다. 모든 국가에 보드게임 관련 상이 제정된 것이 아니기에 보드게임 평론이 활성화된 국가에서는 거의 상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800만 개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하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 시점에서 <티켓 투 라이드>는 <카탄>, <카르카손>과 함께 현대 보드게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티켓 투 라이드>가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자기 차례에 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는 기차 카드를 가져오는 것이다. 앞면으로 정보가 공개된 카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뒷면으로 놓여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카드 더미 맨 위의 카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쉬운 규칙으로 인한 높은 접근성을 들 수 있다. <티켓 투 라이드>는 많은 구성물을 사용하며, 제법 넓은 공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쉬운 규칙을 가지고 있다. 자기 차례인 플레이어는 기차 카드를 가져가거나, 노선을 연결하거나, 목적지 카드를 뽑거나 이렇게 세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서 실행하면 된다. 그마저도 목적지 카드를 뽑는 것은 어느 정도 게임이 충분히 진행된 다음에나 고려할 사항이므로, 게임 중반에 이를 때까지 플레이어는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된다. 그렇기에 <티켓 투 라이드>를 처음 접한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게임이 시작되어 차례가 몇 번 지나기도 전에 게임의 진행 방식을 익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티켓 투 라이드>의 접근성을 높이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게임이 시작될 때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지는 목적지 카드다. 목적지 카드에는 두 개의 도시가 표시돼 있는데, 게임이 끝났을 때 두 도시의 연결에 성공한 경우 점수를 얻을 뿐만 아니라 실패하면 점수를 잃기까지 하는 탓에, 플레이어는 목적지 카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게임의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게 된다. 플레이어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게임판에서 어느 경로를 선택해 자신의 노선을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단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며, 그에 따라 어떤 기차 카드를 가져갈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목적지 카드는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를 이끄는 역할을 하여 그만큼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더군다나,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지면 처음 받은 목적지 카드에만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적극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 <티켓 투 라이드>의 매력이다.


선택한 노선의 색깔과 칸 수를 맞춰 기차 카드를 내면, 그 곳에 자기 기차를 놓아 두 도시를 연결할 수 있다.
규칙이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제법 풍부한 전략적 깊이를 자랑하는 것 또한 <티켓 투 라이드>가 가진 특징이다. 물론 <티켓 투 라이드>의 핵심적인 전략 요소는 경로를 계획하는 것이며, 목적지 카드를 통해 제시된 두 도시를 자기 노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티켓 투 라이드>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어떤 경로를 이용해 노선을 연결하려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 역시 이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결과란 점수의 높고 낮음을 따져 누가 더 높은 점수인지를 따지는 것이기에 어마어마하게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와 비교해 1점이라도 더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자가 필요로 하는 경로를 미리 차지해서 멀리 돌아가게 만든다거나 아예 끊어 버리면, 그만큼 경쟁자의 점수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게임판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로 중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과 동시에 경쟁자가 선택한 경로에 대응하여 계획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수정할 수 있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선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기차 카드는 게임에서 중요한 자원으로서 기능하며, 어떤 기차 카드를 확보하여 어느 노선을 차지할지를 결정하는 기차 카드 관리 역시 중요한 요소다. 당장 필요한 기차 카드를 가져와 즉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더 긴 노선을 만들기 위해 기차 카드를 전략적으로 모으고 있을지에 대한 판단 역시 중요하다. 여기에, 앞면으로 펼쳐져서 공개된 카드 5장과 뒷면으로 놓여 알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는 기차 카드 더미 중에서 카드를 선택해서 가져간다는 규칙 역시 전략적인 깊이를 더해준다. 펼쳐진 카드를 선택하면 불확실성을 줄이고 의도한 카드를 가져갈 수 있지만, 그 대신 어떤 카드를 가져가는지를 다른 플레이어가 알 수 있으니 내 전략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된다. 반대로, 카드 더미에서 카드를 가져가면 다른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숨길 수 있지만 어떤 카드를 가져오게 되는지는 전적으로 운에 맡겨야 한다. 기차 카드를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전략 실행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티켓 투 라이드>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게임이 시작될 때 받은 목적지 카드 말고, 추가로 목적지 카드를 가져오는 것도 가능하다.
목적지 카드에는 두 도시가 표시돼 있으며, 이 두 도시를 연결하면 추가 점수를 받는다.
이 외에도 <티켓 투 라이드>의 커다란 게임판은 제법 넓은 자리를 차지하며, 수많은 구성물을 이용해 게임을 진행한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경험과 시각적인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게임이 발매될 당시엔 기차란 테마가 약점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티켓 투 라이드>의 장점 중 하나다. 실존하는 지역의 지도를 옮겨놓은 게임판 위에서 각자 자신의 철도 노선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높은 몰입감을 선사하며, 게임의 테마인 여행 계획을 세우는 듯한 느낌도 준다.

제법 넓은 게임판 위에 자신이 놓은 기차말들이 노선을 이루며 목적지 카드의 도시들을 잇는 것은 제법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보드게임 숙련자들이 <티켓 투 라이드>에 대해서 말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요소는 '보드게임을 아직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티켓 투 라이드>를 권했을 때 실패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쉬운 규칙으로 확보한 접근성과 큰 연관을 갖는다. 장황한 규칙 설명이 없이 거의 바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데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주어지기에 이전에 보드게임 경험이 없다고 해도 곧바로 전략적인 목표를 구상하여 실행할 수 있고, 숙련자와 제법 비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인 것이다. 더군다나 목적지 카드에 표시된 두 도시를 자기 노선으로 연결하거나, 가장 긴 노선을 만드는 것에 성공하면 게임의 승패와 별도의 만족감을 준다는 점 또한 <티켓 투 라이드>가 가지는 장점이다. 보드게임을 접한 적이 없는 입문자에게 권했을 때 실패한 경험이 없다는 특정 성향에 치우치지 않고 함께 게임을 즐기는 이가 누구이건 상관없이 고른 게임 경험을 보장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다양한 장점과 매력이 어우러진 덕분에 <티켓 투 라이드>는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현대 보드게임의 대표작이란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티켓 투 라이드>는 그 단독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다양한 후속작들과 함께 하는 시리즈로서의 매력도 상당하다. 시리즈 각각의 작품을 한번 살펴보자.
<티켓 투 라이드: 유럽>은 제목 그대로 유럽을 무대로 한 <티켓 투 라이드>다. 단순하게 지도만 바꾼 것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의 지형과 철도 환경에 맞춰 터널과 페리라는 새로운 개념이 추가된 것이 주목할 만한 변화다. 페리는 두 도시를 물 위로 잇는 특별한 노선으로 해당 노선에 표시된 만큼의 기관차 카드를 내야 하기에 기관차 카드 관리의 중요성을 더했고, 터널은 최종 길이를 알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닌 노선으로써 노선을 연결하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얼마만큼의 기차 카드가 필요한지 확정되기에 기차 카드 관리에 또 다른 변수를 더한다. 이외에도 다른 플레이어의 노선 하나를 자기 노선인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차역이라거나, 게임이 시작될 때 주어지는 목적지 카드 중 1장이 장거리 목적지 카드로 바뀐 것도 주목할만한 변경점이다. 여러 가지 요소가 추가됐기에 규칙이 조금 더 복잡해졌으며 좀 더 깊어진 전략을 담고 있다.
<티켓 투 라이드: 노르딕>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와 그 인근 지역을 무대로 한다. <티켓 투 라이드>나 <티켓 투 라이드: 유럽>이 2명에서 5명까지 함께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에 반해, <티켓 투 라이드: 노르딕>은 2명이나 3명이 게임을 즐기는 것에 맞춰져 있다. 게임판의 구성 자체가 적은 인원이서도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시리즈의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색으로든 쓸 수 있던 와일드 카드인 기관차 카드의 용도가 제한되어 누군가가 다수의 기관차 카드를 가져가더라도 크게 유리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9칸짜리 긴 노선인 무르만스크-리엑사 노선이 등장해 특정 색깔을 모으는 전략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적은 인원 사이의 눈치 싸움을 유도한다. 물론 <티켓 투 라이드: 유럽>에서 선보인 페리와 터널도 다시 등장하기에 <티켓 투 라이드: 유럽>과 비슷한 규칙 복잡도와 전략적 깊이를 가지고 있다.
<티켓 투 라이드: 뉴욕>과 <티켓 투 라이드: 샌프란시스코>는 대륙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에 맞춘 <티켓 투 라이드>로, '도시 시리즈'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작고 빠르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무대가 대륙에서 도시로 좁아진 것처럼 게임판이 좀 더 작고 아담하게 변했다. 노선 위에 놓이는 구성물의 모양도 기차가 아닌 각 도시의 특성을 반영해 <티켓 투 라이드: 뉴욕>에서는 택시, <티켓 투 라이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트램으로 바뀌었다. 크기가 작아지고 게임 시간이 짧아졌지만, <티켓 투 라이드> 시리즈가 주는 본연의 재미를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티켓 투 라이드: 뉴욕>은 <티켓 투 라이드>를 그대로 축소시킨 것과 같은 시리즈 본연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티켓 투 라이드: 샌프란시스코>는 페리와 기념품 토큰을 더해 게임에 변주를 가했다.
<티켓 투 라이드: 유령 열차>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티켓 투 라이드>다. 이번엔 실존하는 지역이 아닌 핼러윈 분위기를 풍기는 판타지 세계로 플레이어들을 안내한다. 자기 차례에 할 수 있는 행동은 여전히 같지만, 목적지 카드의 활용법이 달라졌다. 게임이 끝날 때 목적지 카드에 표시된 두 곳의 연결 여부에 따라 추가 점수를 줬던 기존 <티켓 투 라이드> 시리즈들과 달리, <티켓 투 라이드: 유령 열차>에서는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 목적지 카드의 조건을 달성하는 것 그 자체가 점수의 역할을 한다. 목적지 카드의 조건을 달성하면 즉시 해당 목적지 카드를 공개하고 새로운 목적지 카드를 받으며, 게임의 목표도 목적지 카드 6장을 달성하는 것으로 바뀐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적지 카드를 버릴 수 있게 하여 압박감에 취약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고, 노선 연결을 통해 얻는 점수를 없애 점수 계산을 간편화하면서도 게임이 주는 긴장감과 재미를 유지했다.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티켓 투 라이드 시리즈에는 다양한 게임들이 추가되었다.
다양한 <티켓 투 라이드> 시리즈 중에서 각자에게 적합한 게임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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