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밖으로 - 늑대 (아기돼지 삼형제, 빨간모자)

아기돼지 삼형제와 빨간모자 모두에게 당하는 늑대의 수난기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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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속에서 하나의 구성물을 뽑아, 그에 얽힌 배경을 이야기하려 한다. 한 장의 카드, 혹은 시트나 구성물을 통해 사회와 역사, 사람과 사건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들어 봐 주시기 바란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과 <빨간모자 퍼즐게임>은 미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든 스마트게임즈의 1인용 퍼즐게임이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은 아기돼지들을 퍼즐판에 먼저 배치한 후 들과 집 타일들을 퍼즐판의 빈 공간에 맞게 내려놓는 게임이고, <빨간모자 퍼즐게임>은 빨간모자가 할머니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퍼즐판에 잘 맞춰놓는 게임이다. 두 게임에는 여러 가지 공통성이 있다. 잘 알려진 고전 동화의 이야기를 테마로 적용한 점이나, 각각의 이야기가 그림 동화책으로 엮여 제품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똑같으며, 평화로운 낮과 긴장되는 밤 모드를 고를 수 있다는 점도 같다. 거기에 박스의 크기나 구성물의 컨셉 등도 유사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확실한 공통점은, 아예 똑같은 구성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구성물은 바로 늑대다.
 
 
늑대 수난기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과 <빨간모자 퍼즐게임>에는 늑대 말이 하나씩 들어있다. 이 두 개의 말은 동일한 재질과 동일한 형태로 되어있다. 두 게임에서 유일하게 호환되는 구성물이라고나 할까. 서로 다른 두 게임에 동일한 말이 들어 있는 것은 물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알고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 두 게임의 늑대가 사실 설정상 동일 캐릭터라는 것이다. 게임 안에 들어있는 그림책에는 이 둘이 같은 늑대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두 그림책의 이야기는 늑대의 시각에서 앞뒤로 정확히 이어지며, 늑대는 두 책에서 모두 같은 결말을 맞는다.
 

하나는 빨간모자 퍼즐게임의 늑대 말, 다른 하나는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의 늑대 말이다. 어느 쪽이 어느 게임의 말일까?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과 <빨간모자 퍼즐게임>은 그 스타일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일종의 연작이다. 두 게임 모두 제품 박스에는 2015년 작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제품 안의 그림책 뒷표지에는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이 2014년 작, <빨간모자 퍼즐게임>이 2015년 작으로 표기되어 있다. 만 3세 이상을 위한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을 가지고 놀던 3세 어린이를 위해, 그 어린이가 4세가 된 해에 만 4세 이상을 위한 <빨간모자 퍼즐게임>을 내놓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림책 속에 나오는 늑대의 시간도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에서 <빨간모자 퍼즐게임>의 순서로 흐른다. 이 두 게임에서 늑대는 한번은 아기돼지 세 마리를 상대로, 한번은 빨간모자 가족을 상대로 고난을 겪으며 이야기를 끌어나가는데, 이 두 게임을 ‘늑대 수난기 연작’이라고 불러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
 
 
늑대가 어떻게 되었더라?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와 <빨간모자>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결말이 어떻게 되었더라?”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당황하는 경우가 꽤 많을 것이다. 그리고 정작 다른 사람들과 자기가 기억하는 결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서로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작품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많은 작가들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때로는 의식적으로 개조되었다.
 
<아기돼지 삼형제>가 민담의 형태로 전승되다가 처음 출판용 동화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890년 영국의 조셉 제이콥스에 의해서다. 이른바 ‘원작’ 취급을 받는 이 이야기에서 늑대는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를 잡아먹는데 성공하지만, 마지막에는 셋째 돼지의 계략으로 끓는 솥에 삶아져 저녁밥으로 잡아먹힌다.
 

1904년에 레너드 레슬리 브룩 작가가 쓰고 그린 꼬마돼지 삼 형제 중에서
 
제이콥스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시기의 많은 작가들은 동화는 어린이에게 교육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시간을 지나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각색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셋째 돼지의 집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하고, 늑대는 물이 끓는 솥에 빠지지만 돼지의 저녁밥이 될 위기까지는 가지 않고 무사히 도망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에서 늑대의 신세는 이보다 좀 더 나아졌다. 이 게임에서 늑대는 화상조차 입지 않는다. 아기돼지들이 어린이 독자들의 정서를 고려해서인지 물이 끓는 솥 대신 빈 나무통에 늑대를 빠뜨렸기 때문이다. 늑대가 갇힌 나무통은 아기돼지들의 손에 의해 강물에 빠지고, 늑대는 정처 없는 표류를 시작한다.
 
늑대의 신세는 시간이 지나고 여러 작품을 전전하면서 많이 달라졌지만, 늑대가 맡은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늑대는 돼지를 단숨에 잡아 삼킬 수 있는 존재이며, 작중에서 유일한 위협이다. 이 위협을 피하기 위해 돼지들에게 주어진 임무가 집짓기이며, 임무를 허술하게 실행한 등장인물부터(즉, 짚단으로 만든 집→나무로 만든 집→벽돌로 만든 집) 공격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늑대는 꽤나 모순적인 존재다. 늑대는 임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하려 하지 않은 돼지들부터 공격하는, 즉 나쁜 어린이에게 벌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애초에 이 늑대가 없었다면 그런 임무는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늑대는 이 동화에서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상황을 제시해주는 역할과 상황에 대해 잘못 대처한 어린이들을 체벌하는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으며, 이 역할은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작가, 혹은 어른들의 의도를 그대로 이미지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늑대는 이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읽어주는 어른의 페르소나이며, 아기돼지 삼형제는 이 이야기를 듣는 어린이들이 동화 속에서 맡은 일종의 아바타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왼쪽)의 결말과 빨간모자 퍼즐게임(오른쪽)의 앞부분
 
나무통을 타고 떠내려간 늑대의 뒷이야기는 <빨간모자 퍼즐게임>에서 다시 이어진다. <빨간모자 퍼즐게임>의 그림책에서는 침엽수가 울창한 숲속 냇가로 떠내려갔던 늑대가 물에 가까이 자라있는 키 작은 침엽수의 가지를 붙잡고 살아난다. 나무통에서 벗어나 육지에 올라온 늑대가 빨간모자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화 <빨간모자> 역시 <아기돼지 삼형제>와 마찬가지로 구술로 전해져 온 민담을 채집하여 동화로 각색한 것이 시초다. 두 동화 모두 유사한 분위기와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데,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아기돼지가 맡았던 역할을 <빨간모자>에서는 주인공인 빨간모자가 맡게 되며, 늑대에는 여전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의 감정이 이입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스마트게임즈가 이 동화들을 퍼즐게임으로 만들면서 유독 늑대만은 동일 캐릭터로 설정한 것은 꽤나 합리적이다.
 

플뢰리 프랑수아 리샤르 화가가 1820년 경에 그린 빨간모자
 
<빨간모자>를 처음 동화로 만든 것은 프랑스의 샤를 페로다. <아기돼지 삼형제>의 초판과는 반대로, 이 이야기에서 살아남는 것은 늑대뿐이다. 샤를 페로가 정리한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지만, 빨간모자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다. 샤를 페로는 이 이야기를 쓴 의도가 무엇인지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동화 안에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곱게 자란 소녀가 길에서 만난 이 늑대와 같이 수상한 남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 정중한 행동을 하는 늑대가 사실은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는 것을 어찌 알았으랴!”
 
<아기돼지 삼형제>에서의 늑대는 다소 모호한 ‘위험’ 자체를 이미지화한 것이지만, <빨간모자>에서의 늑대는 좀 더 명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샤를 페로의 이 언급은 주인공인 빨간모자가 젊은 여성의 대표 격이며, 늑대는 처음 보는 남성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늑대에 이입한 교육자의 페르소나는 빨간모자에게 이입한 어린이들에게 아기돼지 삼형제보다 더 위험한 시련을 주려 하며, 이를 위해 부조리한 상황을 마련한다. 어머니가 어린 소녀에게 눈에 잘 띄는 빨간모자를 씌운 채 위험한 숲길을 혼자 건너 할머니 집으로 가라고 지시한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할머니의 마을은 왜인지 마을에서 많이 떨어진 숲속에 있으며, 이 숲은 오늘날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등에서 몬스터가 주로 등장하는 ‘필드’의 역할을 수행한다. 빨간모자는 꽃구경을 하느라 할머니 집에 늦게 가게 되고, 그 사이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은 뒤 뒤돌아서 빨간모자도 한입에 삼킨다.
 

빨간모자 퍼즐게임의 그림책에선 유명한 늑대와 빨간모자의 문답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페로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훗날 빨간모자 민담을 다시 동화로 만든 그림 형제는 이 결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하다. 그림 형제는 이 이야기를 자신들의 동화에 넣으면서, 이 결말을 바꾸기 위해 자신들의 다른 동화인 <늑대와 7마리 아기염소>의 스토리를 빌려왔다. 늑대의 배를 갈라 빨간모자와 할머니를 꺼내고, 대신 돌을 늑대 뱃속에 가득 채워 넣은 후 배를 꿰맸다는 결말 말이다. <늑대와 7마리 아기염소>에서는 이 역할을 엄마 염소가 맡았지만, <빨간모자>에서 어머니가 마지막에 할머니 집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이상했기 때문인지 그 역할은 ‘지나가던 사냥꾼’이라는 뜬금없는 존재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빨간모자>일 것이다. 그림 형제는 이 결말의 동화를 내놓은 이후에도 개운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훗날 개정판에서 빨간모자와 할머니가 새로운 늑대를 잡아 죽인다는 또 다른 결말을 추가하기도 했다.
 
<빨간모자 퍼즐게임>의 스토리는 그림 형제의 것을 대체로 따르고 있지만,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처럼 늑대의 처지가 원작보다 좀 나아졌다. 사냥꾼은 나무꾼으로 대체되었으며, 나무꾼은 늑대의 배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잠든 늑대를 뒤집어 들어서 탈탈 터는 방식으로 빨간모자와 할머니를 꺼낸다. 늑대는 처음에 타고 온 나무통에 다시 들어가고,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의 결말과 마찬가지로 표류의 길을 가게 된다.
 
 
늑대, 반격당하다
<아기돼지 삼형제>와 <빨간모자>는 이후로도 수없이 많은 개조를 거쳤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여성과 결혼이라는 주제의식을 다룬 <아기돼지 세자매>라는 수작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늑대와 돼지가 선악의 위치를 서로 바꾼 작품들도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심지어 벽돌과 강철로도 늑대를 막아내지 못한 아기돼지 삼형제가 늑대 전문 킬러인 빨간모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식으로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빨간모자의 할머니가 자기 집으로 찾아오는 늑대, 빨간모자, 사냥꾼을 차례대로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지만,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데는 시대의 변화도 무관하지 않았다. 특히나 <빨간모자>의 경우는 샤를 페로의 주제의식에 반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많아졌다. 빨간모자의 성 역할이 반전되거나, 늑대의 위협적 이미지가 거세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써버가 1943년에 발표한 작품 <어린 소녀와 늑대>에서는 할머니 집에 도착한 주인공이 바구니에서 총을 꺼내 늑대를 사살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오늘날 어린 소녀들을 속이는 것이 옛날처럼 쉽지 않다”는 의미심장한 문구와 함께 말이다.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은 프랑스의 그림작가이자 동화작가 토미 웅거러(국내에서는 <곰인형 오토>의 작가로도 유명하다)의 1979년 작 <빨간모자>도 도발적이다. 토미 웅거러는 원작의 교훈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물론, 어린이가 읽을 이야기를 어른들이 선별하는 것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동화 내에서 주인공 빨간모자의 캐릭터 성격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런 그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이 빨간모자는 진짜 올바른 빨간모자이며 그 멍청한 동화 속의 빨간모자가 아니다. 확신하건대 이 이야기는 빨간모자의 진정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늑대로부터 어른의(혹은 이전 작가들의) 의지를 분리했다. 이 이야기에서 늑대는 하나의 선택지로 등장하며, 위협이 되는 존재는 늑대가 아니라 부모와 할머니로 등장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빨간모자가 이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늑대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맺어지는데, 동화의 스토리는 물론이고 구조 자체도 작가의 의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쿠르트 바르취가 1985년에 발표한 시 <빨간모자와 늑대씨>에 이르면 더욱 원작의 성격에 대한 비판이 강해진다. 이 이야기에서 빨간모자는 두 차례의 성추행을 당한다. 처음에 할머니 집에서 늑대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돌아오는 길에 숲속에서 사냥꾼을 만나게 되는데, 사냥꾼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지만 사냥꾼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 경험을 자기와 함께 재현해보자고 한다. 사냥꾼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온 빨간모자는 시름시름 앓아눕는데, 그 빨간모자를 병간호하는 것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다. 이 시의 전반적인 흐름은 ‘어리석은 여성이 자초한 상황으로부터 여성을 구원하는 남성’의 존재에 대해 반박하거나 최소한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야기에서 사냥꾼은 늑대와 동일한 이미지를 갖게 되며, 원작에서의 늑대와 같이 교육자의 의지를 대변하는 장치는 없다. 그렇기에 어린이에게 읽히기 위해 쓴 시라기보다 동화를 어린이에게 읽어줄 어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의 그림책 중에서
 
 
늑대는 필요 없다
샤를 페로가 만든 필연에 의해 어른, 혹은 남성, 혹은 전근대 사회의 대변자 역할을 해왔던 늑대는 수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대인들에게 공격당하거나 그 역할로부터 분리되어, 오늘날은 예전과 같은 힘을 잃어버렸다. 옛날이야기에서 늑대는 스토리상의 갈등 요소이기 이전에, 어린이들이 쉽게 말을 듣게 만들기 위한 어른의 위협이었지만, 더 이상 늑대라는 소재는 어린이들에게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호랑이가 물어간다”라는 말이 더 이상 옛날만큼 위협적이지 않듯이 말이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과 <빨간모자 퍼즐게임>에서도 늑대는 무서워 보이기는커녕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초라한 신세다. 나무통에 갇혀 아기돼지들에게 신나게 굴려지고, 나무꾼의 손에 뒤집어 들려서 탈탈 털리고, 시리즈 내내 강물에 떠내려가며 표류하는 신세다. 심지어는 게임 안에서도 사실은 주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에서도 <빨간모자 퍼즐게임>에서도, ‘낮 모드’의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현대의 많은 어른들도 더 이상 늑대의 위협에 기대어 어린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어린이를 설득하는 교육 방식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 늑대는 확실히 어른과 어린이가 대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본편에 뒤지지 않는 부록
<아기돼지 삼형제 퍼즐게임>과 <빨간모자 퍼즐게임>을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는 어른들이 각자 생각할 문제겠지만, 그 문제와는 별도로 제품에 동봉된 그림책은 꼭 한번 정독해볼 것을 권한다. 양쪽 다 단순히 게임에 딸려온 부록 수준으로 치부하기에는 매우 잘 만들어진 그림책들이다.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스토리를 완벽하게 구현한 점이나 캐릭터의 뛰어난 심경 표현 등은 어린이가 이해하기에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돼지의 감정표현을 위해 표정만이 아니라 귀의 모양까지 동원한 점이나, <빨간모자 퍼즐게임>에서 두 페이지를 동원한 하나의 컷으로 동화와 게임을 훌륭하게 오버랩시킨 부분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뻔히 아는 이야기니까’라는 이유로 책을 보지 않은 채로 게임을 시작해버렸다면 정말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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