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보드게임은 10만 종에 이른다. 수없이 많은 게임이 탄생해, 어떤 것들은 잊히고 어떤 것들은 명작으로 남는다. 이 코너에서는 보드게임의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100선을 뽑아 소개한다.
보드게임의 소재는 다양하다. 영화적 상상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상상하거나 욕망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게임 그 자체가 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게임은 대체로 탁자에 모여 앉아서 할 수 없는 게임을 탁자 위에서 흉내 내는 형식으로, 온라인, 디지털 게임을 흉내 내는 보드게임이나 여러 사람과 자본이 필요한 대형 게임을 흉내 내는 보드게임 등이 있다. 후자의 경우 대표적으로 스포츠 베팅 소재의 게임을 들 수 있는데, 이런 게임 중 다수가 경마를 흉내 낸 게임이며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경마 게임도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명작으로 취급되는 스포츠 베팅 게임 중에서도 특이하게 경마 대신 다른 소재를 사용한 게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카멜업>이다.

두바이에서 열린 낙타 경주
<카멜업>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아시아 등을 비롯한 몇몇 지역의 명물인 낙타 경주를 소재로 한 게임이다. 주사위에 따라 여러 마리의 낙타가 각자 전진하고, 플레이어들은 경주 결과를 예측하여 베팅해야 한다. 게임 내내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베팅을 추측하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배당을 따져야 하며, 때로는 경주 과정에도 개입해야 한다. 어린이도 즐길 수 있을 만큼 규칙이 간단한 편이지만, 여느 경마 게임보다 더 오밀조밀한 장치들을 자랑한다. 낙타를 움직이고, 베팅하고, 때로는 승부 과정에도 직접 손을 대면서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어느새 테이블 위에 사막의 모래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카멜업은 낙타 경주를 탁자 위로 옮긴 게임이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기 차례에는 구간 예측 티켓 1장 가져오기, 관중 타일 놓기, 피라미드 티켓 가져오기, 경주 우승자나 꼴찌 예측하기 중 한 가지 행동을 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구간에서 어느 낙타가 가장 앞설지 베팅하는 구간 예측 티켓. 베팅한 낙타가 1등이나 2등이면 돈을 벌지만, 아니라면 돈을 잃는다.
이 중에서 구간 예측 티켓 1장 가져오기와 경주 우승자나 꼴찌 예측하기가 베팅에 해당한다. 구간 예측 티켓 1장 가져오기는 원하는 낙타의 구간 예측 티켓을 가져와 자기 앞에 놓는 것으로, 온전한 하나의 경주 전체가 아닌 현재 진행 중인 구간에서 어떤 낙타가 가장 앞설지 베팅하는 행동이다. 한 구간이 진행되는 동안 가져갈 수 있는 구간 예측 티켓에는 제한이 없으므로, 한 색깔의 티켓을 여러 개 가져가는 것도 가능하며 남보다 먼저 가져갈수록 배당이 크다. 경주 우승자나 꼴찌 예측하기는 이번 구간이 아니라 전 구간 경기의 최종결과에 베팅하는 행동이다. 경주가 끝났을 때 우승 또는 꼴찌를 할 것으로 예측되는 낙타를 선택하며, 해당 낙타 카드를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뒷면으로 꼴찌 또는 우승 칸에 놓는다. 한번 놓은 뒤에는 변경이나 취소가 불가능하다.

카멜업에서는 낙타 위에 낙타가 올라타며 경주가 진행된다. 이 상황에서 검은 낙타가 움직이면, 그 위에 있는 노란 낙타와 녹색 낙타가 같이 움직인다.
피라미드 티켓 가져오기와 관중 타일 놓기는 경기 진행에 관련된 행동이다. 이 중에서 피라미드 티켓 가져오기는 낙타를 앞으로 달리게 하는 행동으로, 먼저 피라미드 티켓을 가져온 후 피라미드에서 주사위 하나를 공개한다. 그리고 공개된 주사위와 같은 색깔의 낙타를 주사위 숫자만큼 전진시킨다. 낙타가 움직여서 도착한 칸에 다른 낙타가 있다면 그 낙타 위에 올라타며, 만약 움직여야 할 낙타 등에 다른 낙타가 올라탄 상태라면, 올라탄 낙타도 함께 움직인다. 다른 낙타 등에 올라타면 사실상 남보다 한 번 더 움직이는 셈이므로 꽤 유리해지지만, 이 게임에는 트랙을 거꾸로 달리는 ‘정신 나간 낙타’도 있으므로 이 낙타 위에 올라탔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관중 타일 놓기는 낙타를 응원 혹은 야유하는 관중을 경주 트랙의 빈칸에 놓는 행동이다. 낙타가 달리다가 관중이 있는 칸에 도착하면, 관중의 응원을 받았느냐 야유를 받았느냐에 따라 한 칸 더 앞으로 가거나 한 칸 뒤로 물러난다.

관중 타일을 이용해 낙타의 움직임에 좀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플레이어마다 자기 차례에 원하는 행동을 선택해서 수행하다가, 누군가 마지막 피라미드 티켓을 가져가 마지막 낙타를 움직이고 나면 한 구간이 끝난다. 주사위 숫자에 따라 마지막으로 낙타를 움직인 뒤, 구간 정산을 진행한다. 어떤 낙타가 이번 구간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모든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피라미드와 구간 예측 타일에 따라 금액을 정산한다. 이렇게 여러 구간을 진행하다가 결승선을 통과한 낙타가 생기면 즉시 경주가 끝난다. 마지막 구간 정산과 우승자와 꼴찌에 대한 최종 정산을 한 다음, 가장 돈이 많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경주에 직접 개입하거나 남의 발을 걸고넘어지는 것도 물론 재미가 있지만,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베팅이다. 플레이어는 자기 차례마다 다음의 셋 중 하나에 배팅할 수 있다.
• 이 낙타가 이번 구간 끝난 시점에서 제일 앞서거나 최소 2위는 할 것이다
• 이 낙타가 이번 경주에서 최종적으로 우승을 할 것이다
• 이 낙타는 이번 경주에서 꼴찌를 할 것이다

구간이 시작될 때 낙타들이 이렇게 촘촘히 붙어 있다면, 어느 낙타건 1등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주사위의 숫자는 1부터 3까지 있으며 모든 낙타에게 한 번씩 움직일 기회가 있기에 승패는 금방 확정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경주에서는 ‘앞에 있는 낙타의 등에 올라타기’ 때문에 꼴찌의 속도에 큰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론상으로는 모든 낙타가 같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칸에 있는 두 낙타의 경주 결과를 판정할 때는 위에 있는 낙타를 선두로 판정한다. 구간이 시작될 때엔 어떤 일이건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에 예측 불가능한 것 같지만, 주사위가 하나 하나 공개될 때마다 점차 확정된 과거로 인해 한 구간에서 벌어질 일이 점차 예측 가능한 범위로 좁혀진다. 그리고, 한 구간을 지날 때마다, 그리고 낙타 하나가 달릴 때마다 좀 더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그렇다고 경우의 수가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베팅을 최대한 늦게 하는 것이 좋으냐 하면, 베팅을 남보다 먼저 한 플레이어일수록 더 큰 보상을 받기 때문에 꼭 그렇지도 않다. 결국 승패의 관건은 아주 미묘한 타이밍에 자신의 운을 거는 데 있다.

독일 올해의 게임상 트로피를 들고 있는 슈테펜 보겐 작가
<카멜업>은 슈테펜 보겐 작가가 만든 게임이다. 그는 예술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문화사와 미디어 관련 학문을 강연하는 대학교수이기도 하다. 교육 및 연구, 집필 등 학자로서의 활동을 열성적으로 해나가면서 틈틈이 보드게임을 만들어왔는데, 그중 2개의 작품이 독일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하는 실적을 거두었다. <카멜업>은 그 2개의 게임 중 하나로(다른 하나는 2012년 독일 올해의 게임상 어린이 게임 부문 수상작인 <쉬납트 허브>), 2014년 당시 <스플렌더>, <콘셉트> 같은 거물급 라이벌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거두었다.
상용화되기 전 <카멜업>의 프로토타입은 ‘(T)OLLES KAMEL’이라는 이름이었다. TOLLES KAMEL은 멋진, 혹은 훌륭한 낙타라는 의미이며 OLLES KAMEL은 늙은 낙타라는 의미인데, 철자 하나 차이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응용한 말장난이다. 게임 자체에도 장난스러움이 잔뜩 들어있으니 꽤 어울리는 이름이다. 상품화 과정에서 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그 말장난은 사라졌지만, 게임 상자의 앞면 디자인을 장난스럽게 만들어 그 분위기를 살려냈다. <카멜업> 초판의 상자 앞면은 익살스러워 보이는 낙타의 얼굴도 걸작이지만, 게임 이름부터 으로도 으로도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이 게임이 에센 박람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자연히 이름 논란도 벌어졌는데, 온라인상에서 게임 이름이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첨예하게 맞섰다. 개중에는 심지어 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실패한 로고 디자인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저 논란이라는 것은 진짜 이름이 뭔지 알면서 벌인 집단적 장난에 불과하다. 팬들이 여기저기서 이런 장난을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카멜업>에 대한 많은 사람의 애정은 물론, 본 게임이 풍기는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까지 간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이라는 이름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꽤나 대단한 것이어서, 그 언어유희를 표현한 티셔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Camel Cup으로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카멜업 초판의 로고 디자인
다른 게임에서 발견하기 힘든 독창적인 개성과 그러면서도 규칙이 쉬워 접근하기 좋다는 점 때문에 이 게임은 마니아층과 라이트 유저층을 가리지 않고 퍼져 나갔다. 성공한 게임이 언제나 그렇듯 <카멜업>의 파생작도 많이 등장했다. 10명까지 즐길 수 있는 확장판, 카드게임 버전, 모바일 앱 등이 등장하면서 어떤 자리에서나 즐길 수 있게 되었고, 2018년에 이르러서는 구성물과 아트워크를 전체적으로 일신한 개정판이 출시되었다. 종이 피라미드가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3D야자수가 등장하는 등 구성물이 고급스러워졌으며, 추가된 규칙과 함께 새로 등장한 '정신 나간 낙타'는 게임의 코믹한 분위기를 배로 만드는 감초가 되었다.
수상 이력
2022 Geek Media Awards Game of the Year for Beginners Winner
2020 Gra Roku Best Party Game Nominee
2016 Hungarian Board Game Award Nominee
2015 Nederlandse Spellenprijs Best Family Game Nominee
2015 Lys Grand Public Finalist
2015 Boardgames Australia Best International Game Nominee
2014 Vuoden Peli Family Game of the Year Nominee
2014 Spiel des Jahres Winner
2014 Juego del Año Finalist
2014 Guldbrikken Best Family Game Nominee
2014 Golden Geek Best Family Board Game Nomi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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