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대신 색연필을 굴리고 그려요
"주사위 대신 색연필을
굴리고 그려요"
만 8세 이상 | 2~4명 | 30분
어떤 게임 구성물을 굴려 나온 값을 시트에 수기로 기록하며 진행하는 게임을 롤 앤 라이트(Roll and Write) 게임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게임은 ⟨요트 다이스⟩로, 주사위를 굴린 뒤 점수지에 직접 주사위 조합 점수를 기록한다.
이후 각종 변형꼴이 등장했으나, 시트에 기록한다는 점만큼은 공통 사항이다. 보드게임으로 볼 때 (주사위 등을) 굴리는 행위는 여기저기에서도 많이 있지만, 펜을 써서 기록을 하는 행위가 여느 보드게임과의 근본적인 차이이기 때문이다.
굴린 결과를 조건에 맞게 기록지에 칠해서 점수를 얻는다.
대부분의 보드게임에서 점수는 토큰이나 트랙으로 표시한다. 게임판에 경로를 표시하기 위해 ⟨카탄⟩은 도로 토큰을, ⟨티켓 투 라이드⟩는 기차 토큰을 제공했다.
이렇듯 게임판을 손상하지 않고 게임 상황의 변화를 표시하기 위해 온갖 구성물이 준비되는 여느 보드게임과는 달리, 롤 앤 라이트는 게임판 위에 직접 그려 게임판을 손상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각종 구성물을 모두 없애고 게임판 시트를 대량으로 넣어 준다. 그야말로 미니멀리즘 보드게임이다.
⟨굴러라 색연필⟩에서 사용된 굴리기용 구성물은 제목 그대로 색연필이다.
롤 앤 라이트란 토큰 등 구성물을 없애고 시트를 사용한다는 방법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각각의 롤 앤 라이트 게임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주는 건 여느 보드게임과 마찬가지로 게임 방식이다. 그러나 어떤 게임들은 ‘롤 앤 라이트’라는 지점에 변주를 주기도 했다. 주사위를 굴리는 대신 카드 덱의 카드를 한 장 한 장 뒤집는 방식을 취한 어느 게임은 ‘플립 앤 라이트(Flip and Write)’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굴러라 색연필⟩은 그것보다는 덜 파격적인 방식을 취했다. ‘롤 앤 라이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되, 굴리기용 구성물을 주사위가 아니라 색연필로 한 것이다.
⟨굴러라 색연필⟩에는 다섯 색깔 색연필이 들어 있다. 육면체 주사위와 마찬가지로 여섯 개의 면이 있기에, 육면체 주사위와 완전히 똑같이 기능한다. 게다가 이렇게 굴린 색연필 중 하나를 플레이어가 선택해서 가져가고, 그 색연필로 바로 시트에 표시한다.
일반적인 롤 앤 라이트 게임이 시트와 펜과 굴리기용 구성물로 이루어졌다면, ⟨굴러라 색연필⟩은 굴리기용 구성물과 펜을 합친 것이다.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극대화이다.
색연필의 한 면이 길기 때문에, 그려야 하는 요소가 다소 복잡하더라도 그대로 표시해 놓을 수 있다. 그래서 보다 직관적이다.
물론 겨우 그 구성물 개수 줄이기만이 이 방식의 이점은 아니다. 색연필의 각 면은 어지간한 육면체의 한 면보다 공간 여유가 있어, 활용하기가 좋다. 그래서, 육면체 주사위에서 한 면에 숫자나 기호 한두 개를 제공하고 그것을 시트에 나오는 무언가로 변환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색연필을 굴려 나온 면에 표시된 기호들을 그대로 시트에 기록하게 했다.
그래서 직관성이 더 뛰어나다. ⟨굴러라 색연필⟩의 어떤 시리즈를 즐기든 그 방법이 금방 이해가 되는 건 이렇게 색연필을 사용한 영향이 크다.
총 3종의 게임은 각각 특징이 확실히 다르다.
⟨미지의 유적⟩은 기호와 색깔을 맞추는 셋 컬렉션 게임에 가깝다. 골라온 색연필로 표시된 모양의 기호를 칠해야 하는데, 기록지에서 같은 색깔 테두리의 기호를 칠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칠할 기호가 있다면 테두리 색이 색연필 색과 맞지 않아도 반드시 칠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불리한 색연필을 일부러 남기는 식으로, 색연필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견제가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푸르른 정원⟩은 타일 놓기 퍼즐에서 타일을 대신해 색연필로 칠하게 만들었다. 색연필을 굴려 나오는 칸 수만 맞출 수 있다면 그 타일 모양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셈이다. 조건에 맞지 않으면 색연필로 아예 색칠을 할 수 없으며, 좋은 점수를 만들기 위해 한 영역을 한 색깔로 칠할 것인지 두루 칠할 것인지 등의 선택도 고민해야 한다.
⟨산호초 탐사⟩는 길 연결 게임으로 세 게임 중 가장 자유도가 높고 견제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색연필에 표시된 대로 길을 그리되, 일직선으로 그려야 하는 것도 있고 꺾어서 그려야 하는 것도 있다.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 가장 많지만,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에 길을 어떻게 이을지를 늘 생각하며 그리는 것이 좋다.
어느 게임이든 각각의 개성이 분명하며, 각 게임에는 난이도를 높여가며 즐길 수 있게 기록지가 3종류씩 들어 있다. 보드게임계의 유명한 다작가 라이너 크니치아 작가 작품들의 특징인, 깔끔한 규칙과 적당한 변주, 복잡다단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략적인 전개, 선택의 딜레마가 잘 느껴진다. 롤 앤 라이트 게임답게 준비도 정리도 아주 간편하다는 것은 덤이다.
롤 앤 라이트의 팬이나 라이너 크니치아 작가 작품의 팬이라면 굳이 말할 것도 없이 즐겨봐야 할 게임이다. 조금 오버하자면, 소싯적에 육각 연필 굴려서 시험지 정답을 찍어 본 사람이라면 그 연필 굴리는 맛에 즐겨봐도 좋을 것 같다.
글: 신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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