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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1897이 만들어지기까지
코리아보드게임즈
2024-02-01


이 글은 보드게임긱의 운영자 에릭 마틴이 푸에르토리코 1897의 문화 자문을 맡은 제이슨 페레스로부터 푸에르토리코 1897로의 테마 변경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후 글로 옮긴 'How Puerto Rico 1897 Came to Be: An Interview with Jason Perez'를 저자의 승인 아래 번역한 것입니다.

라벤스부르거의 숙련자 게임 브랜드 알레아를 통해 안드레아스 자이파르트 작가가 발표한 전략 게임 <푸에르토리코>는 2002년에 첫선을 보인 이후, 2003년부터 2008년 8월까지 보드게임긱 평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다가, <아그리콜라>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다. 하지만, 2010년에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았으며, 나중에 <황혼의 투쟁>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발매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완벽했다는 뜻은 아니다.

2002년에 발매된 푸에르토리코의 모습

'플레이어가 카리브해의 섬 푸에르토리코에서 식민지 총독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과 '건물과 농장은 이주민이 없다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주민'이란 배를 타고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한 후 플레이어인 총독이 자기 소유지에서 일하도록 고용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단어다.
2006년에 한 보드게임긱 사용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시작했는데, 그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은 '피부가 까맣고 작은 노예들'을 부리는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게임에서 의도한 바이건 아니건 간에 노예를 고용하고 거래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 이 게임에서 두드러진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일이긴 하지만, 누구나 역사의 그 부분을 재현하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자 유튜브 채널 선반 이야기(Shelf Stories)의 진행자인 제이슨 페레스도 2005년에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한 후에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노예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이건 그냥 게임일 뿐이야. 이 게임은 괜찮은 게임이야.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어. 그냥 게임이나 하자.'라며 반발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중단되는 것을 발견했다.

2011년에 발매된 10주년 기념판(왼쪽)과 2013년에 만들어진 푸에르토리코 2판(오른쪽)

<푸에르토리코>의 퍼블리셔인 라벤스부르거는 전 세계 여러 퍼블리셔에게 이 게임을 판매했으며, 2011년 기념판과 2013년 2판 등 여러 판본의 게임을 냈지만, 1판과 비교했을 때 새로운 판본에서 변경된 것은 그림과 게임 구성물, 그리고 이전에 별도로 판매되었던 확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뿐이었다.
게임의 배경과 플레이어가 맡은 역할은 변하지 않았고, 2014년에 남겨진 "사람을 나타내는 갈색 구성물이 이주민인지 노예인지에 대해 떠드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멀리하세요. 이건 그냥 게임일 뿐입니다. 함께 게임하는 집단에 이 문제를 정치 사회적 논쟁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면, 전쟁게임이나 <카드 어게인스트 휴머니티>와 같이 안전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게임을 하면서 먼저 분위기를 깨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리뷰처럼 별거 아니라는 의견도 변하지 않았다.

알레아 브랜드의 새로운 스타일로 재탄생한 푸에르토리코 2020년 판본

2020년이 되자, 라벤스부르거는 당시까지 리오 그란데 게임즈가 가지고 있던 이 게임의 영어 판권을 되찾았고, 2019년 <라스베가스 로얄>에서부터 시작된 재발매된 알레아 제품군의 그림과 어울리는 또 다른 판본의 <푸에르토리코>를 발매했다.
이 판본에서 게임 속 일꾼은 더 이상 배를 타고 섬으로 오는 이주민이 아니라, 선술집에서 모집하는 존재가 되었고 구성물의 색깔이 갈색에서 보라색으로 바뀌는 등 설정의 일부 요소가 바뀌었다. 그 외에서 게임의 설정과 느낌은 같았으며, 제이슨 페레스가 2021년 1월 동영상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이러한 설정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


제이슨 페레스는 2021년 1월에 '이번 판본에서 보여준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대한 변화는 충분하지 않다'는 제목의 스레드를 보드게임긱에 올렸다. 보드게임긱의 운영자인 에릭 마틴과의 인터뷰에서 "알레아의 안드레 마크 씨가 제가 올린 영상을 보고는 '대화했으면 한다'고 연락하더군요. 그는 제가 올린 영상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현했으며,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게임에 제가 참여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안드레 마크의 연락을 받은 제이슨 페레스는 2021년 3월에 '푸에르토리코 1897: 보드게임의 새로운 비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제작해서 올렸다. 이 영상에서 그는 게임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제이슨 페레스는 "마치 면접을 보는 심정으로 준비했습니다. 마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이런 것이 필요했죠. 인생의 핵심은 과도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제가 <푸에르토리코>에 대해 하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테마를 도입하는 것으로,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열대 섬과 역사를 원했고, 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식민지화를 원했을까요? 장점은 유지하면서 단점을 버릴 수 있을까요? 단점은 특정한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게 다예요. 원래 이 게임은 신대륙에 대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설계되었으며, 저는 독일인이 어떤 방식으로 신대륙에 대해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다른 모든 좋은 요소들을 잘 구현했는데, 어떻게 하면 역사와 열대 지방의 모습을 잘 살릴 수 있을까요? 플레이어들이 로마나 푸에르토리코와 같은 곳을 여행하면서 게임과 관련된 역사 관광에 흥미를 느끼는데, 저는 그것이 가능한 시기를 찾아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푸에르토리코>의 배경과 관련하여 두 가지 주요 사항이 바뀌었으며, 이런 바뀐 점은 게임을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했지만, 게임의 기본 규칙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제이슨 페레스는 "시대적 배경이 16세기의 신대륙에서 1897년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식민지에서 독립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즉, 플레이어가 그런 역할을 맡은 사람들임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이슨 페레스는 "푸에르토리코에 진정한 독립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할양되었죠. 1897년에 자치권을 얻었지만, 이듬해인 1898년에 미국인들이 차지하게 되었죠. 1897년이라는 해는, 노예제에서 벗어났으면서 아직 미국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인 해이죠. 저는 과녁 한 가운데를 맞히려고 노력했습니다."
배경의 시간대를 옮기는 것 말고도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맡은 역할도 바꾸고자 했다. 제이슨 페레스는 "플레이어는 자본가도 상인도 아니고,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적인 농부가 됩니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역사 서술은 대통령이나 지도자, 탐험가의 관점에서 서술되기에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의 경험은 간과되곤 한다. "새로운 <푸에르토리코는 사람들이 스스로 돈을 벌고, 스스로를 돌보고, 모두가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모두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죠. 푸에르토리코에는 담배 농가의 전통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독립적이죠. 담배는 가난한 사람들의 작물이었지만, 이를 재배함으로써 먹고 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의 일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푸에르토리코>의 새로운 판본인 <푸에토리코 1897>에서 담배는 가장 가치 있는 작물이 되었으며, 당시 경제에서 담배의 역할을 대변한다(역자주: 기획 당시 담배의 가치를 변경하고자 했으나, 원 판본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테레시타 레비 박사의 저서 '제국의 푸에르토리코인: 담배 재배자와 미국 식민주의'

역사 애호가인 제이슨 페레스는 2014년에 출간되었으며 1898년부터 1950년까지를 다루는 서적인 <제국의 푸에르토리코인: 담배 재배자와 미국 식민주의>를 쓴 테레시타 레비 박사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고 말한다.
레비 박사는 제이슨 페레스가 살고 있는 뉴욕에 있는 리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페레스는 레비 박사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푸에르토리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를 만났다. 페레스는 "박사님께 게임을 보여드렸을 때, 배와 이주민 토큰을 살펴보시는데, 좀 부끄러웠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람들이 저보고 말하길 쉽게 화를 낸다고 말하지만, 실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게 이 게임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푸에르토리코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학자에게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푸에르토리코 1897의 건물들. 가능한 한 푸에르토리코에 실존할 것 같은 건물의 모습들을 재현하려 했다.

페레스와 레비 박사는 다양한 판본에 존재하는 모든 농작물, 건물, 모든 세부 사항을 검토했다. 페레스는 "이 프로젝트는 때때로 주제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세바 사항이 제대로 표현되기를 바랐습니다. 작가가 게임 시스템이 세부 사항이 제대로 작동하도로 세부 사항을 점검하듯이 말이죠."라고 맣하며, 배경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어, 푸에르토리코에는 송수교(aqueduct)가 없었으며, 보석이 없기에 보석상도 없었는데, 왜 게임에는 이런 건물 타일이 있을까와 같은 것이다(편집자 주: 송수교는 일반적인 수로로, 보석상은 양복점으로 바뀌었다). 페레스는 <푸에르토리코 1897>의 건물 타일은 현지의 풍경을 담은 건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주화 10개짜리 건물들은 푸에르토리코의 랜드마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스터에그입니다. 알고 있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페레스가 말하길, 레비 박사 외에도 <푸에르토리코 1897>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화가인 가브리엘 라모스라고 한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유럽인, 아프리카인, 카리브해 원주민이 뒤섞여 있는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표지에 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이 현지의 이야기가 되길 바랐고, (라모스가 그린) 표지는 무엇보다도 푸에르토리코의 다문화적인 이야기를 잘 전달합니다."

가브리엘 라모스 화가가 그린 푸에르토리코 1897의 표지

라모스는 다른 게임 구성물에도 풍미를 더했다. 페레스는 "기존 <푸에르토리코>의 개인판은 밋밋합니다. 그저 있어야 할 것들이 배치되어 있을 뿐이죠."라 말했다. 페레스는 라모스에게 푸에르토리코에 사는 사람들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개인판에 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연령대와 피부색을 가진 인물 10명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라모스와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이렇게 묻더군요. '제가 저희 가족을 그리는 걸 원하세요?' 물론이죠. 저는 게임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의 농부를 원했죠. 이들이 그저 어딘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나 상인이 아니라, 현지에서 무언가를 하는 현지 사람이길 바랐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거 좋네. 나랑 상관없지만'이라고 말하겠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페레스가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한 가지는 게임 규칙에 관한 것으로, 게임 속 경제 구조와 게임 진행 방식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는 "저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했다면 이 게임이 더는 노예제를 바탕에 두고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데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저 지치지 않는 일꾼이죠. 예전 판본은 보스의 판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노예를 사오는 것도 돈이 들었으니까요."

푸에르토리코 1897의 개인판에는 농장을 이끌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라벤스부르거 북아메리카의 국제 마케팅 매니저 캐시디 워너는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논의는 2019년경에 저를 비롯한 글로벌 팀의 여러 사람이 경영진에게 이 문제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영진은 저희 의견에 귀를 기울여 사람들을 영입할 수 있도록 허락했죠." 하지만, <푸에르토리코> 2020년 판본의 변화는 충분하지 않았다. "저희는 플레이어들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지만, 편안하게 느껴야 할 사람들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소외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켰죠."
워너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회사로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개발 과정을 다양성과 포용성 위원회를 포함하도록 변경했죠. 저희는 이제 모든 게임에서 모든 관점을 고려할 수 있도록 일련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 프로젝트에 문화 자문을 의뢰할 필요가 있는가? 대표할 수 있는 화가를 찾아야 하는가?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은 무엇인가? 개발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가?"라고 했다.

푸에르토리코 1897의 역할 타일

워너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소외시켰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이슨 페레스와 가브리엘 라모스와 같은 분들이 게임 개발에 참여해야 하고, 문화 자문을 맡은 이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플레이어를 돌보고 모두가 환영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이슨 페레스의 말처럼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플레이어가 맡은 역할의 변화는 "좋은 점을 유지하면서" 과거의 게임을 기피했던 사람들을 다시 게임으로 끌어들이는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는 "플레이어들은 역사에 대한 대서사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모든 과거 역사가 나쁘다는 주문을 깨기 위해 시점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역에 친화적이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죠. 그 사람들을 멋지게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게임의 시대와 배경을 잘 아는 사람들을 제작팀에 합류시켜야 할 것이다. 페레스는 "규칙서를 검토하는 단계이건, 개발 초기에 문화 자문을 맡을 사람을 참여시켜 그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문제가 생긴 후에 발생할 악의적인 언론 보도와 그에 대해 대응하는 것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들 수 있다"고 말한다.
<푸에르토리코 1897>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2022년 10월에 첫선을 보였으며, 2024년 1월에 한국어판으로도 소개되었다.

제이슨 페레스는 아부엘리타(Abuelita, 할머니에 대한 공경)에 대한 표현이 없다면 그것은 푸에르토리코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