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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오트의 선택 - 오토배틀 챌린저스
코리아보드게임즈
2023-12-07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른 유닛을 모으고, 각자 모은 유닛을 기반으로 대결도 벌이면서, 균형도 잘 잡힌 이상적인 덱 만들기 방식의 게임!"

나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도타2>와 같은 게임을 즐겨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 실력이 모자란 탓일 것이다. 아무래도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신체 능력이 의욕을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내가 <도타 2>를 인스톨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2019년쯤인데 <도타 오토 체스>라는 커스텀 유즈맵이 그렇게 재미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게임을 해 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도타 오토 체스

<도타 오토 체스>는 기본적으로 비디오 게임에서 컴퓨터와 플레이어의 대결이었던 ‘타워 디펜스’ 장르가 플레이어 간의 대결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게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택틱스 계열’ 비디오 게임과 ‘덱 만들기 방식의 보드게임’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기묘한 감각의 게임이라는 점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플레이어가 유닛을 구입한다. 그러고 나면 플레이어가 구입한 유닛들의 자동 전투가 벌어지는데 팀의 밸런스나 유닛 시너지를 고려하여 유닛을 모으면 그 실력이 팀의 전투력에 반영된다. 나는 비디오 게임에서 자동 전투가 일어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때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동 전투는 신체적인 능력을 배제하고 유닛을 잘 고르는 실력으로 승패가 갈리게 만드는 절묘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의외성 또한 게임을 숨죽이며 지켜보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았다. 타워 디펜스 계열 게임에서 타워 유닛을 구입하는 것은 보드게임에서 카드를 고르는 판단과 비슷하지만 타워 디펜스 게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이 기본이라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느껴지는 데 반해, 이 <도타 오토 체스>는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으로 신체 능력을 배제하고 보드게임처럼 대결하는 것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른 유닛을 모으고, 각자 모은 유닛을 기반으로 대결도 벌이면서, 균형도 잘 잡힌 이상적인 덱 만들기 방식의 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에이언즈 엔드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슬레이 더 스파이어와 클랭크 레거시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한 바 있다.

나는 이따금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른 유닛을 모으고, 각자 모은 유닛을 기반으로 대결도 벌이면서, 균형도 잘 잡힌 이상적인 덱 만들기 방식의 게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 <도타 오토 체스>가 놀랍게도 그 이상에 근접한 게임이었다. 이렇게 우수한 게임을 나만 알아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 <도타 오토 체스>는 이후에 독립 게임으로도 나왔고, 경쟁사가 비슷한 게임을 급히 만들어 출시하기도 했으며, ‘오토 배틀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정립한 선구자로 게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나는 한동안 <도타 오토 체스>를 보드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매우 이상적인 게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도타 오토 체스>를 보드게임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 듯한 게임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내 기대에 부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도타 오토 체스>와 비슷한 보드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잊어가던 때인 2023년, 마침내 내 이상에 부합하는 게임이 나왔다. 그것이 바로 <오토배틀 챌린저스>이다.

오토배틀 챌린저스에는 다양한 카드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덱을 만들어야 한다.

<오토배틀 챌린저스>의 시작은 다른 덱 만들기 게임들과 방식이 비슷하다. 플레이어는 10장 미만의 기본 카드로 구성된 덱을 하나 가지며, 라운드마다 1~2장 정도의 카드를 덱에 추가할 기회와 덱에서 카드를 제외할 기회가 주어진다. 흥미롭게도 이 게임은 진행 과정이 덱 만들기 게임보다는 오토 배틀러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보통 덱 만들기 게임에서는 카드를 써서 얻은 자원(및 추가 카드를 얻을 기회)으로 덱에 투입하고 싶은 새 카드를 구입하는 것으로 차례가 진행되며, 새로운 카드를 더함으로써 이후의 전략 방향이 나오기도 하고 자원 생산 효율까지 바꾸기도 한다. 반면, 이 <오토배틀 챌린저스>에서는 라운드마다 모든 플레이어가 공평하게 카드를 얻을 수 있고, 대결 단계가 되면 다른 플레이어와 대결해 승자가 점수를 얻는다.

자기 덱에서 카드를 1장씩 뽑아 공원판 위에 놓으면 자동으로 카드간의 대결이 벌어진다.

‘다양한 기능의 카드가 들어 있는 덱으로 상대의 덱과 전투하는 게임’이라고 하면 아주 복잡한 게임일 것 같지만 <오토배틀 챌린저스>의 대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쉽다. 보통 플레이어들이 대결하는 카드 게임이라면 전투하는 유닛에 해당하는 카드, 지원하는 아이템이나 마법 주문이 묘사된 카드 등 다양한 카드와 그들의 복잡한 시너지가 실타래처럼 얽힌 게임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오토배틀 챌린저스>의 카드는 모두 전투 유닛으로, 파워를 나타내는 수, 그리고 다른 대결형 카드 게임과 비교할 때 복잡하지 않은 효과로 이루어져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게임은 ‘오토배틀’, 즉 자동으로 전투가 진행되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덱을 섞은 뒤 덱에 포함된 카드들은 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전투에 투입된다. 카드 효과 또한 공개될 때를 비롯한 특정 조건이 되면 발동하는 식으로 ‘오토배틀’에 맞춰져 있다. 카드는 섞인 순서에 따라 전장에 나오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어떤 카드를 낼지를 선택하는 전술적인 안목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용 타이밍을 결정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면 전장을 크게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효과들이 엉뚱한 타이밍에 발동되어 별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동시에 4개의 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

‘카드 대결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전술적 안목이 발휘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보다 더 중요하고 새로운 재미를 제공한다. 플레이어 간의 대결은 컵라면이 익기도 전에 끝나며, 1시간도 안 되는 게임 시간 동안 7번의 카드 대결을 하고, 이 대결과 대결 사이에 플레이어는 카드를 5장 뽑은 뒤 그중 한 장이나 두 장을 덱에 추가할 수 있다. 7번의 대결을 하는 장기전 속에서, 뽑은 카드들 가운데 덱 전체에 잘 어울리는 적절한 카드를 선정하는 지점에서 전략적인 감각이 요구된다.
<오토배틀 챌린저스>의 대결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선공 플레이어가 더미에서 카드 1장을 펼친 뒤, 이 카드에 깃발을 놓는 것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이제 상대 플레이어는 더미에서 카드를 차례로 공개하다가, 공개한 카드의 총 파워가 깃발을 보유한 카드의 파워 이상이 되는 순간 깃발을 빼앗는다. 이때 가장 마지막에 나온 카드가 새로운 깃발 보유자가 되며, 이제 공수가 바뀌어 깃발을 빼앗긴 플레이어가 다시 카드를 순서대로 공개하며 깃발을 되찾을 기회를 노린다. 이렇게 번갈아 가며 깃발 빼앗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자기 덱의 마지막 카드를 공개하고도 깃발을 빼앗지 못하면, 깃발을 지켜낸 상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오른쪽 플레이어의 파워 5짜리 러버덕이 깃발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왼쪽 플레이어의 공격이 시작됐다. 파워 2짜리 탤런트 카드가 나온 상태에서는 아무 변화 없지만, 다음에 파워 4짜리 챔피언이 나오면 왼쪽 플레이어의 파워 총합이 더 높으므로 깃발은 왼쪽 플레이어의 차지가 된다. 깃발을 빼앗긴 러버덕은 벤치로 자리를 옮길 것이다.

대체로 덱에 있는 카드의 파워 총합이 높은 플레이어가 유리하지만, 대결은 자동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화력이 낭비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대 플레이어의 파워 7짜리 카드가 깃발을 지키고 있을 때, 내 덱에서 1짜리 카드, 6짜리 카드 순서로 카드가 공개됐다면 파워 6인 카드가 새로운 깃발 보유자가 되므로 상대의 공격에 비교적 오래 버틸 만하다. 반대로 6짜리 카드, 1짜리 카드 순서로 공개됐다면 1짜리 카드가 새로운 깃발 보유자가 되므로 훨씬 빠르게 깃발을 내주게 될 것이다. 게다가 특정 상황에서 카드의 파워를 높여주는 카드를 비롯해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덱을 구성한 카드의 파워 총합이 높은 플레이어가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한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에 흥미로운 것이 벤치이다. 벤치는 말하자면 싸움이 끝난 카드들이 놓이는 곳인데 여기에는 최대 6종류의 카드만 놓일 수 있으며, 7번째 종류의 카드를 놓게 되는 순간 패배한다. 따라서 숫자 총합이 낮아지는 것을 감수하고 덱에서 카드를 제거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일부러 같은 이름의 카드를 모으기도 한다. 다른 방법으로, 카드의 가짓수는 유지한 채 벤치를 비우는 효과를 지닌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벤치가 비어 있는 경기 초반에 이런 카드가 공개되어 아무런 효과도 없이 낭비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덱 구성 단계에서는 이렇게 카드 5장을 뽑고, 여기서 어떤 카드를 추가할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항상 덱에 원하는 카드를 추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덱 구성 단계가 되면 각자 5장의 카드를 뽑는다. 이 카드들 모두를 싹 버리고 다시 뽑는 기회가 한 번 주어지긴 하지만, 카드 더미의 극히 일부 카드만을 보고 추가할 카드를 선택하게 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게임 경험이 늘어나면 이상적인 카드 조합에 관한 안목이 생기지만, 이번에 뽑는 카드 5장에 그 이상적인 카드들이 들어온다는 보장 따위는 없는 것이다. 항상 이상과는 달리 조금씩 삐걱거리고, 원치 않는 카드 중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카드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음에도 마지못해 선택한 카드가 실제 대결에서는 의외의 강함을 발휘하는 경우가 생기는 점도 이 게임이 선사하는 재미 중 하나다.

게임에 참여한 모두에게 각자 라운드마다 어느 공원에서 대결을 벌여야 하는지, 해당 라운드가 끝나면 어떤 카드를 추가할 수 있는지가 표시돼 있는 토너먼트 계획표가 주어진다. 이 게임이 하나의 거대한 대회이며, 각각의 경기마다 어느 경기장에서 대결을 벌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대결 단계가 끝나면 점수를 얻고, 새로운 라운드의 덱 구성 단계와 대결 단계가 진행된다. 정해진 토너먼트 계획에 따라 플레이어들은 리그전에 최대한 가깝게 대결을 벌인다. 4명이 게임을 한다면 나를 제외한 3명을 번갈아 가며 상대하게 되지만, 8명이 게임을 한다면 이 게임은 일종의 미니 카드 게임 대회 같은 분위기가 된다. 덱 구성 단계에서 카드를 뽑는 덱이 A, B, C의 세 레벨로 이루어져 있어서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더 높은 레벨의 강력한 카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라운드 승자가 얻는 점수도 커진다. 그렇게 7번째 라운드까지 진행한 뒤에는, 이때까지의 전적을 통틀어 승점 1위인 플레이어와 2위인 플레이어 간의 결승전이 펼쳐지며 최종 승자가 정해진다.

카드를 뽑는 덱은 A, B, C의 세 레벨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더 높은 레벨의 카드에 접근할 수 있다.

보통 플레이어 간의 대결을 벌이는 카드 게임은 괜히 어려워 보이고, 특별히 이런 장르에 관심이 있는 취미인들이나 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게임은 보통 진입 장벽이 상당한데, 이 <오토배틀 챌린저스>는 이런 게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어떤 카드를 선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의 피드백을 빠르게 받을 수 있고, 다음 라운드를 위한 카드 선택에 참조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한 번의 게임 안에서 여러 번 이루어진다. 이런 게임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대결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카드의 가치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 어린 조카, 동네 사람, 지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직접 접했기에, 나는 <오토배틀 챌린저스>가 얼마나 위대한 게임인지에 대해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대결에서의 승패가 결정되면 악수를 하며 마무리하는 것이 인지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