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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작가 필 워커-하딩과의 인터뷰
코리아보드게임즈
2023-02-02


2007년에 <아키올로지>를 발표하며 보드게임계에 이름을 알린 필워커-하딩 작가는 어느덧 수 많은 게임을 발표한 중견 작가가 됐다. <진저브레드 하우스>, <베런파크>, <임호텝> 등을 만든 그를 만나 보는 자리를 가졌다.

K: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한국 팬들에게 짧게 인사 한마디 해주세요.
P: 한국에 계신 보드게이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살고 있는 보드게임 작가 필 워커-하딩입니다. <아키올로지>나 <임호텝>, <카카오>, <베런파크> 같은 게임들을 만들었습니다. 보드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15년이 되었네요.

K: 언제부터 보드게임을 하셨나요?
P: 저는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게임을 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미국 매스마켓에 출시된 게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노폴리>, <클루>, <오퍼레이션>, <마우스 트랩> 같은 게임을 많이 했죠. 조금 나이가 든 뒤로는 <스코틀랜드 야드>나 <던전 & 드래곤> 같은 게임을 했습니다. 보드게임이 좀 더 흥미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K: 어떻게 보드게임 작가가 될 생각을 하셨나요?
P: 저는 원래 좀 창의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읽었죠.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좀 나이가 들어서는 음악에 빠져서 작곡을 하고 밴드에서 연주도 했습니다. 영화도 굉장히 좋아해서 대학에서는 영화제작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주 좋아하는 분야 중 하나인 게임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당연한 일이죠.

K:  어떻게 해서 게임 작가가 되셨나요? 처음으로 만든 게임은 어떤 게임이었는지도 궁금하네요.
P: 제가 처음으로 게임을 만든 건 정말 어렸을 때였어요. 물론 그때는 재미로 만들었죠. 형제나 사촌들과 함께 종이와 사인펜만 가지고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굉장히 유치한 게임이었겠지만 그 때 처음으로 게임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이죠. 20대 때는 독일 시장에서 재밌는 게임들이 출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 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죠. 그때 만든 게임이 <아키올로지>입니다. 땅을 파서 유물을 발굴하고 세트를 모아 점수를 내는 게임이었죠. 그리고 이 게임을 다듬어 <아키올로지: 카드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들어서 처음으로 정식 출시된 것이 이 게임이죠.(역자 주: 한국에 출시된 <아키올로지>의 원제는 <아키올로지: 카드게임>. 이하 <아키올로지>)

K:  보드게임 작가가 되기 전에는 무얼 하셨나요?
P: 굉장히 많은 것들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영화제작을 전공하고 단편 영화를 몇 편 만들었습니다. 웹 디자인 일을 하기도 했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게임을 만들기도 하지만, 교회에서 시간제 일도 하고 있습니다.


K:  다른 작가분들에 비해서 만나 보기가 쉽지 않은데, 팬들을 자주 만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P: 제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기 때문이지요. 해외 박람회에 더 많이 가고 싶지만 보통 1년에 1~2곳 정도밖에 갈 수 없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게임 디자이너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국제무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K:  혹시 작가님이 만든 게임 중 어떤 게임들이 한국에 출시되었는지 아시나요?
P: 그럼요. 사실 해외 파트너가 많은 출판사와 일하면 어떤 판본이 나왔는지 다 확인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키올로지>나 <카카오>. <임호텝>, <베런파크> 외에도 몇몇 게임들의 한국어판이 출시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신나는 일이지요.

K: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임들도 좀 있지만, 지금까지는 <아키올로지>가 한국에서 제일 사랑받고 있습니다.
P: 정말 좋네요! 아무래도 <아키올로지>가 첫 게임이다 보니 더 애착이 갑니다. 2016년에 일부 개정을 해서 새로운 탐험 판을 낼 때도 참 행복했죠(역자 주: 현재 한국어판이 바로 2016년 개정판을 기준으로 한다).

K:  2007년에 <아키올로지>를 출시한 후로 한동안 새로운 게임 소식이 없었는데, 최근 몇 년간 많은 게임을 출시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P: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취미 삼아 제 게임을 직접 출판했습니다. 일이나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틈틈이 해 왔죠. 게임 디자인에만 전념하고 출시는 다른 퍼블리셔를 통해 하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였습니다. 그즈음에 출시된 게임들 중 일부가 성공을 거두었고, 그때부터 게임 디자인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여길 수 있었죠. 그래서 그 시점부터 게임이 많이 출시된 겁니다.

K:  제일 좋아하는 게임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가장 많이 즐기시는 게임은 뭔가요?
P: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게임을 즐깁니다. 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레이스 포 더 갤럭시>를 꼽습니다. 카드 덱 하나로 정말 대단한 게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즐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앱으로도 즐기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카르카손>이나 <블로커스>, <포 세일>, <킹도미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있겠네요.

K:  최근 가장 성공한 작가 중에 한 분으로 꼽히는데, 작가님의 게임이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P: 우선, 제 게임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네요. 저는 사람들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게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기를 바라지요. 그래서 가르치고 배우기 쉬운 게임을 만듭니다. 아마 이런 점 때문에 제 게임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스시 고>가 제 게임 중 가장 성공한 게임인데, 퍼블리셔인 게임라이트에서 열심히 마케팅해 준 덕도 많이 봤습니다.

K:  만드신 게임의 스타일이 아주 다양한데요, 그 다양함 사이에 공통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P: 좋은 질문이네요. 저는 다양한 게임들에 관심이 있고, 제가 디자인한 게임들이 다양하다는 말을 듣는 게 기쁩니다. 저는 규칙은 간단하지만 플레이어들의 전략적인 선택이 중요한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게임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이런 점들이 제 게임에서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K: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개발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P: 이 게임을 만들 때 가장 흥미를 가진 부분은 타일을 쌓는 방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타일 놓기 게임에서는 타일을 평면에 놓지만, 저는 위로도 쌓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몇 년 동안이나 개발을 계속했죠. 하지만 항상 위로 쌓아서 3차원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타일 놓기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변함 없었습니다.

K:  <진저브레드 하우스>는 동화적인 콘셉트의 게임인데요. 처음부터 이런 테마였나요?
P: 이 게임은 개발 과정에서 테마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맨 처음 프로토타입의 테마는 계단식 논에 차를 재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도시 테마로 바뀌었고, 그다음에는 성이었죠. 제가 룩아웃 게임즈에 보낸 마지막 프로토타입은 초콜릿 공장을 건설하는 테마였습니다. 동화 속 세상에서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만드는 테마는 룩아웃 게임즈에서 생각해 냈죠. 그 아이디어는 게임과 잘 어울렸고, 그림을 포함한 최종 결과물 역시 테마와 잘 어울렸습니다.

K: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개발하는데 영향을 준 게임이 있나요?
P: 이 게임은 <베런파크>의 자매 게임 같다고 생각합니다. <베런파크>에서는 아이콘을 덮어서 타일을 가져오죠. 이 메커니즘을 좀 더 사용해 보고 싶어서 <진저브레드 하우스>로 가져왔습니다. 여기서는 아이콘을 덮어서 자원을 가져오죠. 이 메커니즘을 처음 사용했던 것은 지금은 <진저브레드 하우스>가 된 게임의 첫 프로토 타입이었습니다.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이리저리 발전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자바>를 여러 해 동안 즐기면서 타일을 쌓는 방식에 관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K: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앞으로 출시될 게임에 대해서 조금 알려주실 수 있나요?
P: 아마 다음에 나올 가장 기대되는 제 게임은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입니다. 매튜 던스탠 작가와 함께 만들고 코스모스와 함께 개발한 스토리 게임이죠. 독일에서는 이미 출시가 되었습니다. 곧 영문판도 출시될 예정이며, 다른 언어판도 어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각각의 게임은 컴퓨터로 하는 ‘포인트 앤 클릭’형식의 어드벤처 게임이나 어드벤처 게임북 형식과 비슷합니다. 앞으로 여러 방향으로 이 시리즈를 발전 시켜 나갈 생각을 하면 정말 흥분됩니다. 2020년에 그 외 다른 게임들이 몇 개 출시됩니다만, 아직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파티 게임도 몇 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르죠. 이 게임들도 언젠가는 정식 출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K:  게임을 개발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P: 제가 가장 영감을 많이 얻을 때는 게임을 할 때입니다. 게임을 하다가 이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뭘까 생각할 때가 있죠. 어떤 때는 “이 게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소는 뭐지?”, “이 게임의 이런 부분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에서부터 새로운 게임의 아이디어가 시작됩니다. 정말 재미있게 게임을 즐긴 뒤에,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들에게 똑같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 과정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노트에 써 둡니다. 테스트해 볼 만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 게임을 해 볼 수 있도록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듭니다. 그 뒤에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 개발이 시작되거나, 아니면 이건 안 되겠다는 현실적인 자각을 하게 되죠.

K:  오스트레일리아의 게임 시장은 어떤가요? 보드게임 작가들은 많이 있나요?
P: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보드게임은 점점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보드게임 디자인 커뮤니티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나라들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는 매튜 던스탠이나 피터 호우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레일 게임즈(제 동생의 회사죠.)나 굿 게임즈, 레드 지니 같은 보드게임 회사도 있습니다.

K:  지막으로 한국의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P: 한국에서 보드게임이 발전해 나간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제 게임을 사랑해 주시고 함께 즐겨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보드게임 많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