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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왕국의 건축가 • 장인의 시대 확장 • 환상의 걸작 확장 - 보드게임 소개
코리아보드게임즈
2022-11-30

만 14세 이상 | 1~5명 | 60~80분

"모략과 배신이 팽배한 시대에 왕의 신임을 받는 건축가로서의 삶이란?"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는 셈 필립스 작가는 2009년에 자신의 게임을 발표하기 위해 가필 게임즈를 설립했다. 설립 후 5년간은 주로 쉽고 간단한 게임들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뉴질랜드 내에서만 판매되었고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14년 킥스타터를 통해 발표한 <북해의 조선공>으로 뉴질랜드 밖에 있는 보드게임 팬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이후 후속작인 <북해의 침략자>와 <북해의 탐험가>를 발표해서 하나의 시리즈를 완성했으며, <북해의 침략자>가 2017년 독일 올해의 숙련자 게임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되며, 그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다.

셈 필립스 작가와 가필 게임즈를 전 세계에 알린 '북해' 시리즈

바이킹의 역사를 담은 ‘북해’ 3부작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가필 게임즈는 2018년 이 흐름을 잇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한다. 이 작품이 바로 <서쪽 왕국의 건축가>이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유럽 중세의 모습을 정립한 프랑크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서로마 제국 쇠락 이후 등장한 프랑크 왕국은 서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했으며, 이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로마 가톨릭의 수호자 역할을 하기도 했던 나라이다. 실제로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카롤루스 대제는 교황청으로부터 서로마 황제임을 인정하는 대관을 받기도 했다. 로마 가톨릭으로 종교가 통합되고 나라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힌 후, 프랑크 왕국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사회 구조가 자리 잡았는데, 우리가 중세 유럽 하면 흔히 떠올리는 기사, 농부, 성직자로 이루어진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베르됭 조약의 결과로 프랑크 왕국은 서프랑크왕국, 중프랑크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회색으로 칠해진 곳이 서프랑크 왕국.

<서쪽 왕국의 건축가>의 구체적인 시대 배경은 카롤루스 대제가 죽고 50년 가량이 지난 850년 경의 프랑크 왕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프랑크 왕국은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후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후손들의 상속 분쟁이 있었고, 843년엔 이를 수습하기 위한 베르됭 조약으로 인해 서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 동프랑크 왕국 이렇게 셋으로 분열되기에 이른다. ‘서쪽 왕국’은 이중에서 서프랑크 왕국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혼란이 있은 후 중앙과 멀리 떨어진 지방에는 온갖 부정부패가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플레이어들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왕의 명령을 받들어 부패한 지방에 각종 건물을 짓고 왕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행동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가능한 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모은 다음, 그렇게 모은 자원을 사용해 점수화하는 것이 많은 전략 보드게임이 보이는 패턴이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도 일단은 그런 패턴을 따르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원을 모으고, 모은 자원을 활용해 건물을 지어야 된다. 하지만,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그런 정석만을 충실하게 따르는 게임이 아니다. 전략 게임의 정석만을 따르는 게임이라면 쇠락하고 있는 서프랑크 왕국이라는 독특한 게임 배경을 사용할 필요 없이, 중세나 르네상스 때 유명한 군주 이름이나 도시 이름 하나를 골라 제목으로 지었을 것이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의 독특함은 바로 이 게임 배경에서 나온다.

각자 자신의 일꾼을 게임판의 행동 칸으로 보내, 그곳의 행동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게임 속 배경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게임의 진행 방식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겠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일꾼 놓기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다. 각 플레이어에게는 정해진 개수의 일꾼이 주어지며, 차례마다 일꾼 1명을 게임판의 여러 행동 칸 중 하나에 놓고 그곳에 적힌 행동을 수행하면 된다. 다만 작가의 이전 게임인 <북해의 침략자>가 일꾼 놓기 방식을 색다른 방법으로 풀어냈듯이, <서쪽 왕국의 건축가>의 일꾼 놓기 방식에도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부분이 있다.

일꾼 놓기 방식의 기본 규칙은 일꾼이 이미 놓인 칸에는 다른 일꾼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자기 일꾼을 먼저 놓아 해당 칸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선점’한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그렇기에 차례 순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모든 플레이어가 일꾼을 다 사용하면 게임판에 놓인 일꾼은 전부 회수되고, 행동 칸 선점 경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 이렇듯 자신이 원하는 행동 칸을 차지하기 위해 일어나는 자리싸움이 일꾼 놓기 게임이 가지는 묘미이며, 게임을 치열하고 경쟁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이 규칙을 깨트렸다. 이미 일꾼이 있는 칸에 다른 일꾼이 들어갈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의 일꾼으로 인해 내 행동이 방해받지 않으며, 게임판의 일꾼을 회수하고 초기화하는 절차도 없다. 더욱 독특한 것은, 내 일꾼이 있는 칸에 내 일꾼을 추가로 놓으면 그 칸의 행동 효율이 높아진다. 이전 차례에 놓은 일꾼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회수되지 않고, 이후의 행동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상식적이다. 나무꾼이 더 많다면 더 쉽게 더 많은 나무를 벨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미 자기 일꾼 3명이 놓인 채석장에 네 번째 일꾼을 놓으면 돌 4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일꾼들은 계속해서 이 자리에 남아 있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중심가를 이용해  채석장에 있는 일꾼 모두를 포획하면, 이들 모두가 교도소로 보내진다.

하지만, 여기서 게임의 배경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이곳은 부패한 서쪽 왕국으로, 이 게임에서 자원 채굴을 비롯한 대다수의 행동은 일종의 ‘불법조업’이다. 플레이어들은 특정 행동 칸에 들어가 불법을 자행하는 일꾼들을 포로로 잡을 수 있다. 또한 다른 행동 칸에서는 이렇게 잡아들인 일꾼들을 교도소로 보내면서 보상으로 은화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이 게임에서 돈을 버는 주요한 수단이기에, 행동 효율을 높이겠다고 우르르 모여 있으면 십중팔구 남에게 잡혀가게 되는 것이다. 보통의 일꾼 놓기 게임이 가지는 선점과 차례 순서를 통한 상호작용에서 벗어나,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더 활발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을 만들어 냈다. 서로의 일꾼을 잡아넣고, 대가를 지불하고 교도소에 잡혀 들어간 일꾼들을 데려오며 복수를 맹세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 어떤 곳보다도 강력한 효과를 제공하지만, 남용하면 악행 수치가 쌓이는 암시장.

다른 행동 칸들 역시 심상치 않다. 일단 고급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암시장 행동 칸이 있다. 이 암시장도 매우 독특한데, 보통의 다른 일꾼 놓기 게임처럼 칸마다 일꾼 1명씩만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총 세 곳 있는 암시장 칸이 전부 차게 되면, 그 순간 왕의 감찰이 이루어지고 암시장에 놓인 일꾼은 자동으로 교도소로 잡혀가게 된다. 그밖에 플레이어들이 지금까지 지불한 세금을 싹 훔쳐 가는 세금 관리소 행동 칸, 교도소에 붙잡힌 자기 일꾼을 석방시킬 수 있는 구치소 칸 등이 있다.

게임판 가장 자리에는 플레이어의 도덕성을 수치로 나타내는 선행 트랙이 존재한다. 어떤 장소에서 무슨 행동을 했냐에 따라 이 수치가 오르내리며, 해당 수치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적용 받는다.

또한 이 게임에는 선행 수치라는 각 플레이어의 도덕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존재한다. 선한 행동을 하면 선행 수치가 오르고,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선행 수치가 내려간다. 대표적으로 암시장을 이용하면 선행 수치가 내려가는데, 그 밖에도 자신의 수습생 하나를 알게 모르게 없애버리고 선행 수치와 점수를 바꿔 갖는 더 비도덕적인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선행 수치에 따라 플레이어에게는 일종의 제약과 혜택이 동시에 주어진다. 선행 수치가 높은 플레이어들은 암시장은 이용할 수 없지만, 선행을 얻을 때마다 빚 카드 1장을 변제할 수 있다. 선행 수치가 낮은 플레이어들은 대성당 건설 등의 작업에 참여할 수 없지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부패한 중세 왕국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은 허상에 가깝다. 여타 전략 게임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이 서쪽 왕국 특유의 분위기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게임의 그림이 그 분위기의 완성도에 마지막 획을 긋는데, 마케도니아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마하일로 디미트리예프스키 화가가 이 부패한 서쪽 왕국을 시각적으로 완성될 수 있게 묘사해 놓았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수습생과 건물들이 게임에 또 다른 변주를 선사하며, 어떤 수습생과 건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전략을 시도할 수 있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자원을 모으고, 모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간결한 방식의 게임이다. 거기에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주는 수습생을 확보하고, 건물의 효과를 사용하고, 남들보다 빨리 대성당 공사에 참여해 점수를 올려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역시 게임의 매력은 흔히 볼 수 없는 게임 배경과 독특한 방식의 상호작용에 있다. 유쾌하고 독특하며 가벼운 전략 게임을 원한다면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만약 게임의 배경이 주는 분위기를 즐기기보다는 조금 더 진중한 전략 게임을 원한다면 별도로 나온 2개의 확장판을 적용하면 된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 확장: 장인의 시대>는 2020년에 발표된 첫 번째 확장이다. 이 확장에는 ‘장인’이라는 새로운 일꾼이 등장한다. 장인은 그 자체만으로 일꾼 2명 몫을 하면서, 행동을 할 때 발생하는 선행 수치 손실을 막아준다. 복잡함은 크게 더하지 않으면서, 전략적 선택 요소를 조금 더 늘려준다. 그 밖에도 건물이나 수습생의 효과를 강화해주는 장식 및 도구라는 완전히 새로운 요소, 6명이 함께 게임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추가 플레이어 구성물, 새로운 건물과 수습생이 대폭 추가되었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 확장: 환상의 걸작>은 2022년에 발표된 두 번째 확장이다. 본 확장을 사용하면, 기존의 선행 수치 외에 ‘영향력’이라 불리는 또 다른 평판 수치가 도입된다. 영향력이 커지면 받는 혜택도 있고, 영향력을 유사시 자원 대신 쓸 수도 있다. 또 이 영향력을 올리기 위한 새로운 요소로 공주와 모리배가 등장한다. 공주와 모리배는 게임판을 돌아다니는데, 이들이 있는 칸을 이용할 때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공주보다는 모리배를 따라가는 것이 더 확실한 이익을 주지만, 특정한 상황에 모리배와 함께 있는 자들은 페널티를 받고, 공주와 함께 있는 자들은 혜택을 얻게 되어 있다. 이제 자기 차례에 일꾼을 놓을 때 공주와 모리배의 위치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이 영향력의 중요한 사용처로 걸작이라는 특별한 건물이 추가된다. 걸작은 많은 자원과 영향력을 소비해야 지을 수 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로, 플레이어에게 큰 혜택을 준다.

<서쪽 왕국의 건축가>는 기본판만으도 충분히 재밌지만, 확장판을 더하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양쪽 모두 매력적인 게임으로, 같이 즐기는 플레이어의 성향에 맞춰 이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원하는 방식으로 부패와 음모의 서쪽 왕국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수상 내역
2020 Nederlandse Spellenprijs Best Expert Game Winner
2020 Gouden Ludo Best Expert Game Winner
2019 UK Games Expo Best Board Game (European Style) Judges Award Winner
2019 Mensa Select Winner
2019 Kennerspiel des Jahres Recommended
2019 International Gamers Award - General Strategy: Multi-player Nominee
2019 Dragon Awards Best Science Fiction or Fantasy Board Game Nominee
2019 American Tabletop Strategy Games Nominee
2018 Swiss Gamers Award Nominee
2018 Meeples' Choice Nominee
2018 Golden Geek Most Innovative Board Game Nominee
2018 Golden Geek Board Game of the Year Nominee
2018 Golden Geek Best Strategy Board Game Nominee
2018 Golden Geek Best Solo Board Game Nominee
2018 Golden Geek Best Board Game Artwork & Presentation Nominee
2018 Cardboard Republic Architect Laurel Nominee
2018 Board Game Quest Awards Game of the Year Nominee
2018 Board Game Quest Awards Best Strategy/Euro Game Wi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