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러시 제작기

보드게임 카페에서 일하다 보드게임 만들게 된 이야기

요약정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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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커피 러시

 

☕보드게임 카페에서 알바하다가 아예 보드게임을 만들게 된 이야기

 

볼빨간 사춘기의 노래가 한창 많이 들리던 2016년 즈음의 어느 겨울날, 갓 군대를 전역한 23살 한의진 씨는 사당에 있는 보드게임 카페 ⟨스몰월드⟩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중이었다. 

 

보드게임 카페의 아르바이트라는 것은 규칙 설명이나 게임 정리와 같은 일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카페인지라, 손님들이 주문한 마실 것들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그는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카페 음료 만드는 법을 익혔고, 반복해서 만들다 보니 점점 손에 익어가던 중이었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더하면 아메리카노, 차가운 물과 얼음을 함께 곁들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우유를 더하면 카페라떼.. 시럽을 곁들이며 정신없이 음료를 만들던 중. 그는 문득 커피, 얼음, 우유, 물을 가지고 진행되는 어떤 게임에 대한 발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로부터 7년 후 어느 봄날

 

 

2023년 파주슈필의 커피 러시 전용관

 

 

2023년. 파주에서 열린 보드게임 행사 ⟨파주슈필⟩에는 단 하나의 게임만을 위한 전용관이 운영되며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된다. 그 게임은 바로 보드게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의진 씨가 고안한 게임 ⟨커피 러시⟩다. 


이 게임은 귀여운 구성품과 완성도 높은 아트워크로 시선을 끌었고, 게임으로서의 재미 또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래 7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발한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기까지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오, 이런 걸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다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불현듯 떠오른 영감을 실제에 옮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은 것이 바로 창작 활동이다.

 

 

 

☕구매할 만한 보드게임이 만들어진다는 것 

 

이런 창작의 만만찮음을 논함에 있어서, 당연히 보드게임 제작 또한 예외가 아니다. 완성도 높은 보드게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심미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규칙의 완성도와 균형과 같은 기술적인 영역은 물론, 더 나아가 종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실물 성형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떠올린 아이디어가 ⟨커피 러시⟩로 완성되기까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A4용지에 색깔 펜으로 얼기설기 그려 만들어진 초기의 커피 러시.

 

 

☕봄 | 두 달 동안 40가지 게임 구상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수년은 별다른 일 없이 흘렀다. 그러던 2020년, 한의진 씨는 ⟨창의인재 동반사업⟩에 참가하게 된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고 ⟨젬블로⟩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국내 창작 보드게임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2020년 연초에 시작해 가을까지 세 계절에 걸쳐 이어졌다. 

 

 

2020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진행 모습.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 문제로 인해 상당 부분이 온라인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출처 | 젬블로 컴퍼니 오준원 대표이사 블로그 

 

 

멘티와 멘토가 짝을 이뤄 보드게임을 만든 뒤, 가을에 시연하는 흐름이었다. 한의진 멘티는 이때 김연 작가를 멘토로 삼아 짝을 맺고 두 달 동안 총 40가지 방식의 게임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40가지 게임 중 작동 방식이 테마와 잘 맞고 비교적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 러시⟩에 그는 꽂혔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테스트 플레이에 돌입했다. 

 

 

 

☕여름 | 열혈 테스트 플레이 

 

문제는 당시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한창이던 때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테스트 플레이를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모은다던가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한의진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멘토인 김연 작가의 작업실에 찾아가 테스트 플레이를 했다. ⟨창의인재 동반사업⟩ 덕에 최소한의 테스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었다. 

 

 

재료 타일 변화 과정 

 

 

그 밖에도 주위 친구들과 테스트 플레이를 진행했다. 그는 본래에도 보드게임을 좋아했던 터라, 주위에 함께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이 있었고, 이 친구들이 항상 테스트 플레이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업그레이드 타일의 변화 과정 

 

 

또 ⟨창의인재 동반사업⟩을 함께하고 있던 다른 멘티들과 ⟨테이블탑 시뮬레이터(Table Top Simulator, 약칭 TTS)⟩를 통해 온라인상의 테스트 플레이도 많이 했는데, 막바지에 집중적으로 했던 이 TTS를 통한 테스트 플레이는 최종 규칙을 정립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시연회에 제출된 프로토타입 상태의 커피 러시

 

 

 

☕가을 | 시연회 

 

2020년 10월의 어느 날,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최종 시연회에는 약 20개의 게임이 완성되어 출품됐다. ⟨커피 러시⟩도 그중 하나였다. 이날 시연회 자리에는 코리아보드게임즈를 포함해 여러 보드게임 업체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직원이 ⟨커피 러시⟩에 주목했고, 한의진 씨는 보드게임 작가로서 코리아보드게임즈와 출판 계약을 맺게 된다. 

 

 

최종 프로토타입을 기반으로 한 ⟨커피 러시⟩ 소개 영상. 이미 수개월에 걸쳐 다듬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최종 프로토타입조차 현재의 ⟨커피 러시⟩와 다른 점이 많다. 

 

 

 

☕찐찐막_찐_최종_최최종 테스트 플레이

 

작가와 퍼블리셔가 출판 계약을 맺고 난 뒤에, 이를 실제 상품으로서의 보드게임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퍼블리셔가 맡게 된다. 


보통 작가는 퍼블리셔와 독립적인 존재로 회사 외부에 존재하게 되는데, 한의진 작가는 출판 계약 이후 코리아보드게임즈에 입사하게 되었고, 자신이 작가로서 만든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 퍼블리셔의 직원으로서 참여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프로토타입 작업 당시 친구들과 숱하게 했던 테스트 플레이를 팀원들과 함께 100번 이상 더 하게 됐다고 한다. 

 

 

 

☕보드게임 에디터 

 

다시 2021년으로 돌아가서, 그날 시연회에 참석했던 코리아보드게임즈 직원은 이상우 씨였다. 현재는 펄스게임즈의 대표이자 보드게임 에디터로서 일하고 있다. 

 

 

이상우 보드게임 에디터 (현 펄스게임즈 대표)

 

 

보드게임 에디터는 상품으로서 하나의 보드게임을 제작하기 위해 규칙, 테마, 아트워크, 생산 등 전 과정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로 작가들의 프로토타입을 다듬어서 '사람들이 돈 주고 살 만한 마음이 드는'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그가 회상하는 당시의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날 (젬블로 컴퍼니) 오준원 대표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죠. …(중략)… 시연회가 열리는데 이날 꼭 와라. 와서 검토 좀 해달라.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찾아간 시연회에서 그는 자신의 눈에 띄는 3개 게임을 골라 프로토타입 실물과 규칙서를 전달받았다. 검토 기간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하나의 게임과 출판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커피 러시⟩다. 

 

 

 

☕작고 예쁜 구성품 설계 

 

이상우 씨는 처음 ⟨커피 러시⟩의 프로토타입을 보자마자 아기자기한 입체 구성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한다.

 

⟨커피 러시⟩는 플레이어가 주문을 처리하면 옆 사람에게 주문서가 날아가기에, 연신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라는 생각과 압박 속에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런 ‘나만 아니면 돼’ 식의 규칙이 ‘작고 귀여운’ 외형과 대비되면서 유쾌함을 이끌 어낼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또 언젠가 전시회에서 봤던 미니어처 찻잔에서 영감을 얻어, 음료 재료를 담을 작은 커피잔의 형태를 구상한다. 

 

 

 

☕규칙 개정 

 

이 커피잔이라는 '장치'가 생김으로 인해 규칙에도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다. 초기 ⟨커피 러시⟩에서는 주문 카드가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플레이어의 개인판을 떠나게 되면, 그 위에 있던 재료를 다른 카드들로 옮길 수 있었다. 

 

커피잔이 생기고 커피잔 안에 음료 재료를 담고 있자니, 만들다 만 음료의 재료를 꺼내서 다른 음료 주문에 사용되는 모습 자체에 심적인 거부감이 생겼다. 즉, 음료 재료가 컵에 담겨있는  모습은 훨씬 더 실재감 있게 테마를 구현한 반면, 만들다가 만 음료의 재료가 다른 주문에 사용될 수 있다는 규칙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한번 잔에 담긴 재료는 다른 잔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주요한 규칙이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외에도 상품화 과정에서 ⟨커피 러시⟩의 규칙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듬어진다. 주로 번잡하고 복잡한 요소를 단순화시키는 방향이었는데,  ⟨커피 러시⟩를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됐다. 플레이어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몇 명이 참여하든 40분 안에 끝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D 모델링 

 

2022년. 3D모델링 작업을 거쳐 커피잔을 비롯해 각종 재료의 샘플이 제작된다. 

 

 

 

 

재료나 잔 이외에도 트레이 또한 모델링 작업을 거쳐 제작된다. 재료를 담는 투명한 정리통과 찻잔을 꼭 맞게 끼워 넣는 홈 등 ⟨커피 러시⟩의 숨겨진 매력이 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특히 커피잔을 끼워 넣는 트레이는 실제 다기 세트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고급 다기 세트를 개봉하면 컵의 옆면이 보이도록 하나하나 꼭 맞게 담겨있는데, 이런 모습에 착안해 트레이가 설계되고 제작되었다고 한다. 

 

 

 

☕아트워크 작업 

 

산뜻한 표지와 커피 메뉴 아트워크 역시 ⟨커피 러시⟩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로 꼽힌다. 

 

통상적으로 보드게임의 작화 작업은 외부 작화가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게임의 테마와 분위기에 맞춰서 화풍을 정한 뒤, 알맞은 사람을 탐색하는 것이다. 여러 작화가와 그림을 탐색하던 중에 황시원 작화가가 선택되었다. 

 

 

 

☕패키지 디자인

 

컨셉과 기획 의도 등을 들은 황시원 작화가는 두 가지 초안을 만들었다. 

 

 


패키지 스케치 초안 중 하나

 

 

초기 스케치는 '러시'에 초점을 맞추고 그려졌으며, 손님으로 붐비는 카페 내부를 다이나믹한 구도로 비추고 있다. 

 

당시 ⟨커피 러시⟩ 아트 디렉터였던 이수연 디자이너는 조자연 팀장과 이 초안을 두고 여러 논의를 했다고 한다. 구성물이 자아내는 '예쁨'도 '러시'만큼이나 주요하게 패키지에서 표현되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논의 끝에 이들은 '예쁜' 카페 외관과 '바쁜' 손님 둘 다를 보여줘 서 '러시'에 '예쁨'을 더하기로 결정한다. 

 

 

작화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수연 디자이너가 그린 스케치. 패키지 옆면까지 매장 벽면을 확장했다. 

 

 

이수연 디자이너는 창문 밖에서 가게 내부를 바라보는 그림으로 초안을 작성했는데, 주문 '러시'를 펼치는 사람들이 더 잘 보이도록 하라는 조자연 팀장의 조언에 따라, 매장 전경을 개방형 카페로 구성했다. 

 

 

당시 컨셉컷 - 해외 개방형 카페 사례

 

 

이렇게 하여, ⟨커피 러시⟩는 박스 자체가 카페 건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기획된다. 

 

 

입체적으로 그린 게임 상자 도안 초안. 

 

 

육면체 모양을 한 게임 상자 자체가 건물이 되고, 상자의 정면은 문이 되어, 카페 내부의 정경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구도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황시원 작화가가 만든 초안 

 

 

이후 표지 삽화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벽의 색을 바꾸고, 인물의 위치와 동작 등을 조정하여 많은 인물이 더 잘 보이도록 세밀한 조정을 거쳤다. 

 

 

 

 

 

☕커피 러시 출시! 

 

긴 여정을 거쳐, 마침내 시제품인 ⟨커피 러시⟩ 영어판 샘플이 만들어졌다. 2023년 2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완구박람회⟩에서 해외 다른 보드게임 퍼블리셔들에게 공개하기 위한 용도로서 영문판 샘플이 먼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샘플은 ⟨완구박람회⟩에서 많은 보드게임 퍼블리셔들의 눈을 사로잡았으며, 여러 해외 보드게임 퍼블리셔들과 그들 언어판에 대한 배급과 출판 계약을 맺었다.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커피 러시.
⟨커피 러시⟩는 20여 가지 언어 판본으로 제작되어 40여 개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2023년 4월, 시제품이 아닌 본격적인 상품이자 최초의 정식 판본으로서의 ⟨커피 러시⟩ 한국어판이 파주에서 많은 사람들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커피 러시⟩에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었기에, 그에 힘입어 2023년 겨울에는 ⟨커피 러시: 크리스마스 프로모⟩ 가, 2024년 5월에는 ⟨커피 러시: 파주 장단콩 프로모⟩와 첫 확장 ⟨커피 러시 확장: 케이크 타임⟩이 발매되기에 이르렀다. 

 

중국어, 러시아어, 헝가리어, 체코어 버전의 <커피 러시 확장: 케이크 타임> 

 

 

☕맺으며 

 

⟨커피 러시⟩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단계를 거쳐 보드게임을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지… 

 

지면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커피 러시⟩ 제작에 함께했었음을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는 당연히 보드게임을 즐기는 여러분도 포함되어 있다. 좋은 보드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는 보드게임을 즐기고 사랑하는 문화 속에 있을 것이기에...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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