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요리사 개발기

김밥만큼 맛깔나는 게임이 완성되기까지.

요약정보

이야기
720

2025-05-19

#김밥요리사

#고태윤

#개발기

 

 

김밥 요리사 개발기

만 8세 이상 | 2~4명 | 15분

 

 


낯선 게임에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김밥 요리사  와의 첫 만남.

 

몇 해 전, ⟨꼬치의 달인⟩을 만든 고태윤 작가와 게임 제안 미팅을 했다. 작가가 선보인 게임은 저마다 특색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구성물이 한데 모여 유난히 독특해 보이는 프로토타입이 있었다. 상자에 적힌 짧은 타이틀은 바로 “KIMPAP”.

 

4개의 주사위에는 각 면마다 다른 조건이 그려져 있고, 이 주사위들을 굴려서 나온 조건에 모두 부합하도록 재빨리 재료를 배치하고 김밥을 말아내는 스피드 액션 게임이다. 고태윤 작가는 프랑스의 로베르토 프라가 작가와 많은 협업을 하는데, 두 작가가 김밥을 만드는 과정에 착안해 구상한 것이다.

 

 

<김밥 요리사> 프로토타입과 수많은 구성물 테스트 샘플의 모습.

 

 

구성물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김밥을 돌돌 마는 액션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김과 밥, 지단을 유연한 재질의 얇은 직사각형 판으로 표현했고, 속 재료는 여러 색깔의 나무 막대로 표현했다. 막대 재료들을 조건에 맞게 배치한 뒤 직사각형 재료로 말아 김밥을 만드는 방식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직관적인 구성물이었다. 먼저 완성한 사람이 큰 점수를 가져갈 기회를 얻는데, 주어진 조건과 다른 김밥을 완성했다면 득점 기회는 날아가기 때문에 민첩함이 기본이면서도 정확함도 필수인 즐거운 파티 게임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파티가 아닌 다른 부류의 게임 소싱에 더 초점을 두고 있었기도 하고, 게임을 좀 더 잘 소화할 만한 구성물 아이디어를 얼른 찾지 못했기에 작가에게 거절의 말을 전했다.

 

 

 

다시 만난 김밥.
본격적인 개발 시작.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고태윤 작가와는 계속 소통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의 미팅에서 이 게임을 다시 보여주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 아르헨티나 퍼블리셔와 계약해 소규모로 출시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작가는 글로벌 퍼블리싱이 가능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출시를 제안했다.

 

규칙이야 여전히 좋았고, 상품이 되면서 그래픽과 만듦새도 일신되었다. 그럼에도 구성물만큼은 여전히 아쉬웠다. 완성한 김밥은 초록색 고무 밴드로 묶어 고정하는 데다가, 파랑이나 분홍색으로 재료가 꾸며져 있어 우리가 아는 모습의 김밥과는 거리가 있었다. 테마보다는 파티 게임의 구현에 무게를 둔 느낌이 강했다.

 

 

2023년에 아르헨티나의 Ruibal Hermanos S.A.에서 출시한 의 모습.
이미지 출처: Boardgamegeek

 

 

개발사의 의도는 존중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천국’이라는 간판까지 걸고 팔 만큼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음식을 이대로 세상에 소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김밥이 서구권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할 때라 수출 발판도 더 넓어져 있었기에, 제대로 된 구성물로 김밥을 구현하기로 마음먹고 계약을 체결하여 개발을 시작했다. 김밥이라는 음식이 주요 소재이지만, 김밥을 허둥지둥 신나게 말게 될 플레이어야말로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게임 이름이 ⟨김밥 요리사⟩로 결정되었다.

 

 

 

김밥을 김밥답게.
구성물 개발 이야기.

 

우선 재료들을 잘 고정하면서 완성된 모양이 김밥처럼 보이게 할 방법을 찾아 보았다. 도시락 용기에 넣어 틀처럼 모양을 잡는 방식, 참깨 모양 단추로 김밥을 잠그는 방식 등 여러 방안을 구상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채택된 방식이 벨크로 재질 김으로 김밥을 말아낸 뒤 김 끝을 그대로 몸체에 붙여 완성하는 것이었다. 발에 김을 깔아 놓고 그 위에 밥을 펴고 모든 재료를 올려 원통형으로 말아낸 뒤, 김 끝에 물을 묻히거나 밥풀을 붙여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가장 닮은 방식이다.

 

흔히 “찍찍이”라고 부르는 벨크로는 나일론 소재라 유연하고 탄성이 있어 김밥을 꾹꾹 누르며 말아도 파손 우려가 없다. 또한, 밸크로의 양면이 서로 달라붙는 특성은 김의 안쪽 면을 김의 바깥면에 붙여 김밥을 완성하는 방식을 구현하기에 완벽했다. 다양한 크기와 성질을 지닌 벨크로 샘플을 제작하고 테스트한 끝에 게임에 최적화된 벨크로 김을 만들어냈다. 대신, 원안에는 없던 ‘항상 김이 가장 바깥에 위치해야 한다’는 규칙을 추가했고, 이 규칙을 활용해서 김과 다른 재료가 서로 닿거나 닿지 않게 하라는 주사위 조건도 추가했다.

 

다음은 속 재료의 선정이었다. 김밥 속은 매우 다양하지만, 보드게임의 구성물을 무한히 넣을 수는 없으니 선정에 고민이 많았다. “김밥”이라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재료인지, 게임에 지장이 없도록 재료끼리의 색깔 구분이 잘 되는지, 완성되었을 때 예쁘게 보일지 등 나름의 기준을 세워 생각했고, 사내 조사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달걀, 단무지, 치즈, 시금치, 깻잎, 햄, 당근을 일차 선정했고, 이후 규칙에 필요한 구성물 수에 맞춰 소거해 나갔다. 그런 뒤 치즈와 단무지, 깻잎과 시금치 등 색깔이 비슷한 재료들은 형태와 톤에 차이를 주기로 했다.

 

 

완성된 구성물로 김밥을 만드는 모습.

 

 

 

김밥만큼이나 맛깔 나는
아트워크.

 

구성물 설계와 동시에 패키지 이미지 기획도 진행되었다. 김밥을 형태와 정서 면에서 모두 이해해야 어울리는 그림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싶었다. 인터넷을 한 달 가까이 뒤져도 보고, 개발팀과 연이 닿은 곳들에 연락도 돌려 보던 끝에 알맞은 아티스트를 찾아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게임 속도와 분위기에 맞게 역동적인 구도와 과감한 투시로 김밥을 완성한 상황을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고민을 더 할수록, 김밥 재료들이 어우러지는 조화와 이 조화를 정성스럽게 만드는 요리 과정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누군가가 김밥을 만드는 상황과 김밥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동시에 담는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또한, ⟨김밥 요리사⟩임에도 셰프의 주방이 아니라 가정집의 부엌이 배경인 것도 포인트이다. 김밥이 따뜻한 가정의 음식이며 집에서 김밥을 만들 때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요리사가 되듯, 이 게임에서도 가족이나 친구 누구나 김밥 요리사가 된다는 점을 담고자 했다.

 

 

첫 스케치부터 완성본까지의 패키지 그림 변천사 (왼쪽 위 ▶ 오른쪽 위 ▶ 아래 순). 초기에는 수출을 고려하여 영문으로 작업했다.

 

 

최고의 김밥 요리사가
되어 보자!

 

이제 ⟨김밥 요리사⟩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시되었다. 규칙이 쉬워서 누구나 금방 김밥을 만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주사위 조건에 맞게 김밥을 설계하며 느끼는 치열한 계산의 맛, 틀린 부분을 고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의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게 될 여러분이 이제 요리사다. 완전히 잘못 만든 김밥을 자신 있게 내세우거나, 김밥을 살짝만 들어도 재료가 줄줄 흐르며 망가지는 등 다 함께 깔깔거릴 수 있는 재미난 상황도 펼쳐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눈썰미와 손놀림을 제대로 대결하는 경쟁 게임다운 승부의 순간을 만끽해 보자.

 

 

 

도움말은 단 하나. 주문을 차분히 확인하고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김밥을 말자. 경쟁자들의 쉴 틈 없는 손놀림을 보게 되면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김밥과 다르게 말 때가 참 많다. 그러나 가장 바깥에 김을 놓고 그 안에 모든 재료가 조건에 맞게 들어있기만 한다면, ⟨김밥 요리사⟩에서는 완벽한 김밥이 된다. 자, 이제 손을 풀고 김밥 재료를 잘 챙겨 놓자. 주사위가 구르면, 완벽한 김밥을 향한 김밥 요리사들의 한판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에디터: 안현수

글: 염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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