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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스템 이야기 - 트릭 테이킹
코리아보드게임즈
2022-08-05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한 보드게임은 그 오랜 역사에 비례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발전해왔다. 이 다양한 게임들은 외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커다란 나무에서 여러 줄기가 뻗어 나가는 것처럼 공통된 요소에서 분화되기도 했다. 게임 간에는 그 외양과 진행 방식이 유사한 것이 있는가 하면, 외양은 달라 보이지만 진행 방식은 유사한 것도 있고, 외양은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진행 방식은 딴판인 것도 있다. 이 코너에서는 바로 이러한 게임의 진행 방식을 가리키는 표현인 게임 시스템(혹은 메커니즘)이 유사한 게임들을 살피며, 게임 시스템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다.

트릭 테이킹
트릭 테이킹(Trick Taking)이란 카드 게임의 한 종류로,대개 플레이어들은 동일한 장수의 카드를 나눠받고 몇 번씩 차례를 돌아가며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여기서 모든 플레이어들가 차례대로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카드 1장씩을 내는 것을 한 ‘트릭’이라 하고, 그중 가장 높은 등급의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이번에 공개된 트릭의 카드를 전부 가져가기(take) 때문에 ‘트릭 테이킹’이라 부른다. 이때 트릭을 따낸 플레이어가 가져간 카드는 다시 게임에서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트릭을 몇 번 땄는지 표시하는 용도로만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게임의 승패는 플레이어가 따낸 트릭과 관련이 있다. 게임에 따라 승패를 가리는 방식이 다른데, 몇 번의 트릭을 따냈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되는 게임도 있고, 트릭을 가능한 한 따내지 않아야 하는 게임도 있으며, 트릭을 따내는 과정에서 특정 종류의 카드를 얼마나 모았느냐를 따지는 게임도 있다.

플레잉 카드는 카드마다 수트와 랭크를 가지고 있다.

트릭 테이킹 게임은 플레잉 카드를 이용하여 발전해 왔기에, 플레잉 카드를 이루는 특징인 수트와 랭크를 모두 활용한다. 스페이드(♠), 하트(♥), 다이아몬드(◆), 클럽(♣)과 같은 각 카드를 구분하는 심볼이 바로 수트이며, 2, 3, … , Q, K, A와 같은 높낮이를 구분하는 숫자가 바로 랭크다. 현대 트릭 테이킹 게임에서는 플레잉 카드가 가지고 있는 4가지 수트와 13단계의 랭크를 벗어난 다양한 카드를 활용하는 것도 많다.

하나의 트릭은 시작 플레이어가 자기 손에 든 카드 중 1장을 골라 내려놓으면서 시작되는데, 이 카드의 수트를 리드 수트(Lead Suit)라 부른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자기 손에 해당 수트의 카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카드를 내야 한다. 이를 가리켜 수트를 따른다(Follow the suit)고 하며, 이는 트릭 테이킹 게임의 기본 규칙 중 하나다. 해당 수트의 카드가 없는 경우엔 아무 수트의 카드나 낼 수 있다. 모든 플레이어가 카드를 1장씩 내는 것을 한 트릭이라 부른다. 모두가 카드를 1장씩 낸 다음에 리드 수트 중에서 랭크가 높은 카드가 무엇인지를 따진다. 즉, 리드 수트를 따르지 않은 다른 수트의 카드는 그 랭크 자체가 무시된다. 해당 카드를 낸 플레이어는 이번 트릭에서 플레이어들이 낸 카드를 모두 가져가는데, 이를 가리켜 ‘트릭을 따냈다’라고 표현한다. 트릭을 따낸 플레이어가 다음 트릭의 시작 플레이가 되어 새로운 트릭을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모든 플레이어가 라운드를 시작할 때 받아 손에 들었던 카드를 모두 사용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고, 모두가 카드를 사용하면 한 라운드가 끝난다.

한 라운드로 게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트릭테이킹 게임은 여러 라운드를 되풀이하여 누적된 결과로 최종 승자를 가린다.

트릭 테이킹 게임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카드 게임의 역사를 연구한 마이클 더멧 교수에 의하면 1000년대 초반에 중국에서 기원한 카드 게임이 유럽으로 전래되었다고 한다. 이 카드 게임은 돌아가며 카드를 내려놓고, 가장 랭크가 높은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딴다는 트릭테이킹의 아주 기초적인 형태만을 띄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수 백년에 걸쳐 발전해, 현재의 트릭테이킹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이 발전 과정에서 가장 큰 혁신으로는 15세기에 발명된 ‘트럼프(trump)’와 17세기에 발명된 ‘입찰(bidding)’을 꼽는다.

‘트럼프’는 ‘으뜸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른 수트보다 랭크가 높은 카드를 뜻한다. 한 수트 전체를 트럼프로 설정하는 경우도 있고, 한두 장의 카드 일부에만 트럼프 능력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트럼프가 포함된 트릭 테이킹 게임에서는 손에 리드 수트의 카드가 있다면 리드 수트를 따라 카드를 내야 하지만, 손에 리드 수트의 카드가 없다면 이때 트럼프를 대신 낼 수 있다. 누군가가 이렇게 트럼프 카드를 내면, 리드 수트 중 랭크가 가장 높은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아닌 트럼프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따낸다. 물론, 한 트릭에 여러 장의 트럼프가 나왔다면 그중 더 높은 랭크의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따낸다. 트럼프의 존재는 게임 진행에 극적인 요소를 배가시켜 주었기에, 트럼프가 발명된 이후에 만들어진 트릭 테이킹 게임 중에는 트럼프가 없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입찰’이란 트럼프 수트를 무작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수트를 정하기 위한 경매를 진행하는 것이다. 비딩은 17세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옴브레’에서 처음 등장해서,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컨트랙트 브릿지’에서 완전히 정립하게 된다.

이제 대표적인 트릭 테이킹 게임 몇 가지를 통해 트릭 테이킹 게임이 어떤 식으로 분화 발전하였는지 살펴보자.

하트

윈도우 3.1에는 트릭 테이킹 게임인 ‘하트’가 포함돼 있었다. 다만, 프리셀, 지뢰찾기, 솔리테어보다는 인기가 없었다.

트릭 테이킹 게임은 수백년에 걸쳐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과정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 발전하였다. 그런데, 정작 트릭 테이킹 게임의 기원이 된 중국과 동북아시아에서는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마이티’가 잠깐 인기 있었지만, 몇몇 곳에서만 유행을 탔다가 금방 사그라들었다. 사실상 트릭 테이킹 게임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트릭 테이킹 게임이 다시 소개된 계기는 매우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 3.1에는 마우스의 활용 방법을 익히기 위한 용도의 게임 몇 가지가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트릭 테이킹 게임인 ‘하트’이다. 하트는 윈도우 3.1부터 윈도우 7까지 꾸준히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를 통해 트릭 테이킹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도 제법 많다.

1880년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하트에는 다양한 변형 규칙이 있는데, 윈도우에 포함된 하트는 그중에서도 ‘검은 여인’이란 변형 규칙을 포함한 것이다. 여기서는 이 버전을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시작 플레이어인 가인이 클럽 2를 내며 트릭이 시작됐고, 클럽이 리드 수트가 됐다. 나영은 리드 수트를 따라 클럽 A를 냈다. 다희는 손에 수트가 클럽인 카드가 없기에 아무 수트의 카드나 낼 수 있어 스페이드 K를 냈다. 래원은 손에 클럽 9, 클럽 J, 클럽 Q가 있으므로 다른 수트의 카드를 낼 수 없고, 반드시 이 중에서 한 장을 내야 한다. 래원이 어느 카드를 내건 리드 수트인 클럽 카드 중에서 가장 랭크가 높은 클럽 A를 낸 나영이 이번 트릭을 딸 것이다.

하트는 4가지 수트로 이뤄진 52장의 카드를 사용하며, 4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한다. 한 라운드가 시작되면 카드를 모두 나눠가진 다음, 각자 손에 든 카드 중 3장을 선택해 다른 플레이어에게 준다. 첫 번째 라운드에는 왼쪽 플레이어, 두 번째 라운드에는 오른쪽 플레이어, 세 번째 라운드에는 마주 보는 플레이어에게 카드를 준다. 네 번째 라운드에는 아무에게도 카드를 주지 않는다.

그런 다음 손에 클럽 2를 가진 플레이어가 시작 플레이어어가 되어, 클럽 2를 내려놓으며 트릭을 시작한다. 손에 클럽이 있는 플레이어는 반드시 클럽 카드를 내야 하며, 클럽이 없다면 다른 수트의 카드를 낼 수 있다. 모든 플레이어가 카드를 1장씩 냈다면 그 다음에 리드 수트인 클럽 중에서 가장 높은 랭크의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따내고, 새로운 선 플레이어가 되어 다음 트릭을 시작한다.

수트 중 하트에는 특별 규칙이 있는데, 하트가 ‘깨지기’ 전까지는 하트를 리드 수트로 낼 수 없다. 하트는 손에 리드 수트인 카드가 없어 하트 카드를 내거나, 시작 플레이어가 되어 리드 수트를 내야 하는데 손에 하트 카드 말고는 다른 카드가 없을 때 깨진다. 한 번 하트가 깨진 다음부터는 하트를 자유롭게 낼 수 있다.

모든 플레이어가 손에 든 카드를 다 내려놓았다면 라운드가 끝나고, 각자 자신이 가져간 트릭에 하트 카드와 스페이드 퀸이 있는지 확인한다. 하트 카드는 1장당 1점, 스페이드 퀸은 13점의 감점을 받는다. 단, 감점을 주는 카드를 한 플레이어가 모두 가져갔다면 ‘슛 더 문’이라고 해서 오히려 다른 모든 플레이어에게 26점의 감점을 안길 수 있다. 한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플레이어들이 받은 감점을 기록해 한 플레이어의 누적 감점이 100점 이상이 되는 순간 게임이 끝나고, 감점이 가장 적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하트는 근대에 만들어진 트릭 테이킹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비딩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며, 가져간 트릭에 따라 감점을 받기 때문에, 트릭을 따는 게임이라기보다는 ‘트릭 회피 게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휘스트

19세기 중반에 매리 엘렌 베스트 화가가 그린 '휘스트를 하는 사람들'

트릭 테이킹 게임 역사에서 중요한 게임 중 하나를 꼽으라면 ‘휘스트’를 들 수 있다. 앞서 설명한 하트 역시 휘스트에서 파생된 게임으로, 휘스트는 오랜 기간 동안 발전을 거듭하며 많은 트릭 테이킹 게임의 토대가 됐다. 휘스트는 약 1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에 유행한 트릭 테이킹 게임 ‘트럼프’의 인기 있었던 변형 규칙인 ‘러프 앤 아너’를 대체한 것이 바로 휘스트인데, 정확한 이름이 없다가 후에 휘스트란 이름을 얻게 된다.

휘스트는 4가지 수트로 이뤄진 52장의 카드를 사용하며, 4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한다. 두 명씩 한 팀을 이뤄 게임을 하며,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카드를 1장씩 뽑아 더 높은 랭크의 카드를 가진 2명과 더 낮은 랭크의 카드를 가진 2명이 서로 팀을 이룬다. 같은 팀원끼리는 서로 마주 앉는다. 각자 자기 손에 든 카드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으며, 신호을 보내는 것도 안 된다. 딜러는 카드를 한 장씩 나누어 주며, 가장 마지막 카드 1장을 펼쳐놓는다. 이 카드의 수트가 트럼프가 된다.

딜러의 왼쪽 플레이어부터 원하는 카드를 내며 첫 트릭을 시작한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시작 플레이어가 낸 카드의 수트를 따라야 하며, 리드 수트가 없는 경우에만 원하는 카드를 낼 수 있다. 리드 수트 중 가장 랭크가 높은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따내며, 만약 트럼프가 나왔다면 트럼프 중 가장 랭크가 높은 트럼프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딴다. 그리고 트릭을 따낸 플레이어가 다음 트릭을 시작한다.

손에 든 모든 카드를 내려놓았다면 한 라운드가 끝나며, 각 팀이 따낸 트릭의 갯수에 따라 점수를 얻는다. 트릭을 6개보다 많이 따낸 팀은, 초과한 트릭 하나당 1점을 얻는다. 한 라운드에는 총 13번의 트릭이 진행되므로, 실력이 엇비슷한 두 팀간의 대결에서 한 번에 2점 이상을 따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반복해서 라운드를 진행하다가 총점 5점을 먼저 따낸 팀이 승리한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휘스트를 즐겼으며,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휘스트는 많은 곳에 흔적을 남겼다. 특히, 에드거 앨런 포 작가는 1841년에 발표한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 한 문단에 걸쳐 휘스트에 대한 찬양의 글을 남겼다.

"휘스트가 연산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최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체스를 하찮은 것이라며 삼가하면서도, 휘스트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열중하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것들 중 휘스트만큼 분석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없다. 기독교 국가 최고의 체스 명인이라고 해봐야 그저 체스의 명인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휘스트에 능란하다는 것은 두뇌와 두뇌가 겨루는 더 중요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휘스트에 능란하다고 함은 게임을 진행함에 있어 정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점을 파악하는 완벽성을 포함한다. 이런 것은 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를 띄며, 평범한 이해력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사고 속에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신경 써서 관찰함은 명백하게 기억함이기에 집중력이 높은 체스 플레이어라면 휘스트도 꽤 잘할 것이며, 본래 게임이란 특정한 구조를 기반으로 하기에 ‘호일의 법칙’도 아무나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기억력과 호일이 책에서 서술한 팁을 따르는 것이 게임을 잘하는 기술의 전부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석가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단순한 법칙의 한계를 뛰어넘은 곳에서라 할 수 있다. 분석가는 조용함 속에서 관찰과 추리를 계속한다. 아마도 그의 상대방도 동일한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획득한 정보에서 격차가 생기는 것은 추리를 타당하게 했는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의 질에 기인한다.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야말로 필수다. 분석가는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다. 게임을 한다고 할 때도 게임 외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연역적 추론을 거부하지 않는다. 자기 편의 표정과 상대방 각각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비교 관찰한다. 그리고 각자 손에 든 카드를 어떻게 분류하는 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상대방이 손에 든 카드를 보는 시선을 통해 트럼프 카드와 높은 랭크의 카드가 어떻게 되는지를 세어둔다.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각자 확신에 찼을 때, 놀랐을 때, 승리할 때, 원통해 할 때의 표정 변화를 주목한다. 따낸 트릭을 가져갈 때의 태도를 통해 그 플레이어가 해당 수트로 다시 한번 트릭을 따낼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며, 카드를 탁자 위에 내던지는 것을 통해 무엇을 가장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무심하고 경솔히 내뱉은 말이라거나, 우연히 카드 1장을 떨어트리거나 손에 든 카드가 젖혀졌을 때 당황하는 모습, 얼마나 많은 트릭이 진행됐는지 카운팅하거나, 손에 든 카드의 배열 순서, 난처해하는 모습, 망설임, 열의와 두려움, 이런 모두가 분석가에게 명백한 직관적 인식을 제공하며 실제 상황의 표시로서 작용한다. 처음 두세 번 가량의 게임이 진행되고 나면, 분석가는 각자 어떤 카드를 들고 있는지 완전히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다음부터는 상대가 모두 손에 든 카드를 공개하기라도 한 듯이 완벽한 정확성 속에서 차례차례 카드를 맞춰 낼 것이다."

- 에드거 앨런 포, <모르그 가의 살인> 중에서

이와 별개로 아서 코난 도일 작가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살해당하기 직전에 휘스트를 즐긴 피해자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헨리 제임스 작가의 <여인의 초상>에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휘스트에 비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에 걸쳐 휘스트의 다양한 변형 규칙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1890년에 만들어진 ‘브릿지 휘스트’는 훗날 ‘컨트랙트 브릿지’로 발전하며, 휘스트가 트럼프의 자리를 대체한 것처럼 휘스트의 자리를 대체하기에 이른다.

컨트랙트 브릿지

1942년 미국 시머 대학교의 브릿지 클럽. 브릿지는 20세기를 주름 잡은 트릭 테이킹 게임이다.

‘컨트랙트 브릿지’는 트릭 테이킹 게임의 대표작으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바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휘스트에서 파생된 브릿지는 원래 ‘비릿치(biritch)’ 혹은 ‘러시안 휘스트’라 불렸으나, 비릿치와 비슷한 발음인 영어 단어 브릿지(bridge)란 이름으로 정착됐다. 컨트랙트 브릿지도 휘스트와 마찬가지로 2명씩 한 팀을 이뤄 게임을 진행하며, 일반적으로 팀을 구성하는 방식도 같다. 단, 트럼프 수트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가르는 부분부터 휘스트와 컨트랙트 브릿지의 차이가 발생한다. 컨트랙트 브릿지에서는 플레이어가 카드 13장을 받은 다음, 딜러부터 돌아가며 경매를 진행한다. 이를 ‘입찰’이라 부르며, 가장 높은 값을 부른 플레이어가 경매를 따내고 이번 라운드의 시작 플레이어가 된다. 대개는 자신이 따내고자 하는 트릭에서 6을 뺀 값을 부르기에 이 값은 1에서 7 사이의 숫자가 된다

시작 플레이어는 어떤 수트를 트럼프로 할 것인지를 선언할 수 있으며, 트럼프 수트가 없다고 선언할 수도 있다(이렇게 트럼프 수트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이드’라 부른다). 시작 플레이어의 팀을 공격팀이라 부르고, 상대 팀을 방어팀이라 부른다. 공격팀의 목표는 입찰한만큼의 트릭을 따내는 것이고, 방어팀의 목표는 공격팀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휘스트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시작 플레이어부터 트릭을 진행하며 리드 수트 중 가장 높은 랭크의 카드를 낸 플레이어나 트럼프 중 가장 랭크가 높은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따내고, 다음 트릭의 시작 플레이어가 된다. 휘스트와 다른 점은 시작 플레이어의 파트너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모두 탁자 위에 펼쳐 놓는다는 점이다. 이 카드들을 ‘더미’라 부르며, 시작 플레이어는 자기 파트너의 차례에 어느 카드를 낼 것인지 지시하면서 게임을 진행한다.

휘스트와 다른 또 한 가지는 한 게임이 끝났을 때 단순히 더 많은 트릭을 따낸 팀이 득점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공격팀이 입찰한 것 이상의 트릭을 따냈다면 공격팀이 점수를 얻고, 공격팀이 입찰한 것보다 적은 트릭만을 따냈다면 방어팀이 점수를 얻는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게임을 진행하여 게임을 하기 전에 설정한 값에 먼저 도달한 팀이 승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컨트랙트 브릿지는 휘스트에서 파생되어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 차츰 휘스트의 자리를 대신해 나갔다. 20세기에 쓰여진 많은 소설에서는 휘스트가 아닌 브릿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19세기말에 쓰인 아서 코난 도일 작가의 추리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휘스트를 했다면, 20세기에 쓰인 애거서 크리스티 작가의 추리 소설에선 등장인물들이 브릿지를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브릿지의 인기는 유럽을 넘어섰으며 급기야는 아시안 게임 시범 종목으로도 채택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위자드
오랜 전통을 가진 트릭 테이킹 게임들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엔 현대의 트릭 테이킹 게임을 살펴볼 차례다. 현대의 트릭 테이킹 게임은 컨트랙트 브릿지와 플레잉 카드에서 벗어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산물들인데, 그중 대표적인 게임이 <위자드>다.

물론, <위자드>에서도 휘스트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트릭 진행 모습도 휘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작 플레이어가 원하는 카드를 내며 첫 트릭을 시작한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시작 플레이어가 낸 카드의 수트를 따라야 하며 리드 수트가 없는 경우에만 원하는 카드를 낼 수 있다. 리드 수트 중 가장 높은 랭크의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따내며, 만약 트럼프가 나왔다면 트럼프 중 가장 랭크가 높은 트럼프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딴다. 그리고 트릭을 따낸 플레이어가 다음 트릭을 시작한다. 그리고 <위자드>에서 트럼프를 선택하는 방법 역시 휘스트와 비슷하다. 카드를 나눠주고 난 다음 카드 더미 맨 위의 카드를 공개하고, 그 카드의 수트가 트럼프가 된다.

발전된 현대 인쇄 기술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카드마다 다른 그림으로 표현한 <위자드>의 카드는 플레잉 카드의 외양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위자드>는 여러 면에서 휘스트와 닮은 점이 많지만, 차이점도 꽤 많다. 이전까지의 트릭 테이킹 게임들과 달리 <위자드>는 3명부터 6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원 구성으로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은 현대 트릭 테이킹 게임의 발전 방향이기도 하다.

광대(왼쪽)와 위자드(오른쪽)

<위자드>는 플레잉 카드처럼 4가지 수트로 이뤄진 카드를 이용하지만, 플레잉 카드에 없는 두 가지 카드가 포함돼 있다. 항상 트럼프이면서 다른 카드보다 무조건 더 높은 랭크로 간주되는 ‘위자드’와 항상 트럼프가 아니면서 다른 카드보다 무조건 더 낮은 랭크로 간주되는 ‘광대’가 <위자드>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카드다. 또 카드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 넣은 것도 보통의 플레잉 카드와 대비되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 특이하게도, 라운드마다 모든 카드를 나눠주는 전통 트릭 테이킹 게임에서 벗어나, 위자드에서는 라운드마다 플레이어에게 나눠주는 카드의 장수가 달라진다. 첫 번째 라운드에는 1장, 두 번째 라운드에는 2장, 세 번째 라운드에는 3장으로, 이렇게 라운드가 거듭될 때마다 각 플레이어는 카드를 1장씩 더 받는다. 어떤 카드가 사용되었는지를 카운팅하고 암기해야 했던 전통 트릭 테이킹 게임과 달리, 운의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좀 더 가볍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 준호는 자신이 트릭을 하나도 따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고, 은지와 현수는 트릭 하나를 딸 것이라 예측했다. 실제 라운드가 끝난 결과 준호와 현수는 예측이 맞았기에 20점식을 받았고, 현수는 트릭을 하나 땄기에 추가로 10점을 더 받았다. 하나를 딸 것이라 예측했지만 트릭을 하나도 따지 못한 은지는 예측의 오차인 한 트릭만큼인 10점을 잃어, -10점이 됐다.

카드를 모두 나눠 가지고 트럼프가 공개된 다음에는 ‘예측’이란 단계가 추가된다. 컨트랙트 브릿지에서 입찰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자신이 얼마나 많은 트릭을 따낼 것인가를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고 숫자를 입찰한 플레이어만 자신의 입찰 값을 달성해야 했던 컨트랙트 브릿지와 달리, <위자드>에선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이 예측한 값을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히 예측한 값만큼의 트릭을 따내야 한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라운드가 끝났을 때 따낸 트릭 수를 정확히 예측한 플레이어는 20점을 얻고, 따낸 트릭 하나당 10점씩 추가로 얻는다. 하지만, 예측이 틀린 플레이어는 예측보다 모자라거나 넘친 트릭당 10점씩을 잃는다.

예측은 <위자드>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제한된 정보 속에서 가능한 한 정확한 예측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며, 라운드가 진행되는 중에도 자신의 예측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다.

스페이스 크루
2019년 에센 <슈필>에서 발표된 <스페이스 크루>는 여러모로 색다른 트릭 테이킹 게임이다. 개인이 승리 또는 내가 속한 팀의 승리를 위해 서로 겨뤘던 트릭 테이킹 게임과 달리 <스페이스 크루>에선 모든 플레이어가 한 팀이 되어 협력해야 하며, 준비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현대에 만들어진 보드게임 시스템 중 하나인 협력과 다양한 목표 모듈이 트릭 테이킹과 결합된 것이다. 이는 이전까지의 트릭 테이킹 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혁신으로 트릭 테이킹 게임이 현대 보드게임으로서 거듭났음을 의미한다.

세훈부터 게임을 시작했다. 세훈은 첫 번째 트릭을 분홍 9로 시작한다. 이번 트릭에서 분홍 1을 따고 과제를 달성할 계획이다. 주헌은 분홍 5를 낸다. 인경은 손에 분홍 카드가 하나도 없어서 아무 카드나 낼 수 있다. 인경은 노랑 2를 내기로 한다. 분홍 1을 갖고 있던 은지는 분홍 1을 이번 트릭에 낸다. 분홍 카드 중 가장 높은 숫자를 낸 사람은 세훈이므로 세훈이 이번 트릭의 승자가 된다. 또한 세훈이 분홍 1을 땄으므로 세훈의 과제는 달성되고, 세훈은 달성한 과제 카드를 뒤집어 놓는다.

한 트릭의 진행 과정만 보면 <스페이스 크루>도 휘스트와 별 다를 바 없다. 시작 플레이어가 원하는 카드를 내며 첫 트릭을 시작한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시작 플레이어가 낸 카드의 수트를 따라야 하며, 리드 수트가 없는 경우에만 원하는 카드를 낼 수 있다. 리드 수트 중 가장 랭크가 높은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따내며, 만약 트럼프가 나왔다면 트럼프 중 가장 랭크가 높은 트럼프를 낸 플레이어가 트릭을 딴다. 그리고 트릭을 따낸 플레이어가 다음 트릭을 시작한다. 이 부분만 보면 특별할 게 전혀 없는, 극도로 평범한 트릭 테이킹 게임이다. 사실 트릭 테이킹 시스템은 완성된 문법을 가지고 있는만큼 변주를 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스페이스 크루는 모두가 힘을 합쳐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는 협력 게임이기에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만들졌다. 통신 토큰은 그런 제약 속에서 제한된 방식의 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스페이스 크루>는 휘스트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더군다나,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 플레이어들은 말이나 몸짓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서로 협력해서 게임을 진행해야 하는데, 의사소통에 있어서 제약이 있는 것이다. 대신에 플레이어 간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통신 토큰을 이용한 것이다. 통신 토큰을 사용하면 손에 든 카드 1장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탁자 위에 펼쳐 놓고, 그 위에 통신 토큰을 올려 모두에게 약간의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단, 이때도 제한이 있는데, 펼쳐놓는 카드는 손에 들고 있는 해당 색깔의 카드 중 가장 높은 랭크의 카드이거나, 가장 낮은 랭크의 카드, 혹은 유일한 카드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또 하나는 게임 중 비상수단인 조난 신호 토큰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토큰을 사용하면 각자 손에 들고 있는 카드 중 1장을 옆 플레이어에게 넘겨줄 수 있다. 조난 신호 토큰을 사용하면 임무 완수를 하고도 감점을 받기에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임무가 실린 임무 일지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추진해야 할 목표는 임무 일지라는 형태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다. 임무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임무를 완수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고, 여러 임무 중에 재미있을 것 같은 것부터 고르거나 반대로 재미있었던 임무를 다시 진행할 수도 있다. 임무 번호가 낮을수록 완수하기 쉽고, 높아질수록 완수하기 어려워진다. <스페이스 크루>의 임무는 트릭 테이킹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방법을 활용하도록 만들어졌다. 처음엔 단순히 특정한 플레이어가 정해진 카드가 포함된 트릭을 따내도록 만들면 되지만, 점차 정해진 카드가 포함된 트릭을 특정 순서에 따라 따내야 하며, 정해진 누군가는 트릭을 따지 않도록 한다거나 매우 랭크가 낮은 카드로 트릭을 따내게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점점 고도의 방법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설계돼 있다. 그렇기에 <스페이스 크루>의 임무를 전부 완수하는 것은 트릭 테이킹 게임에 익숙한 플레이어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가 된다. 하지만 그 기본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으므로 트릭 테이킹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스페이스 크루>의 임무를 하나씩 완수해나가다 보면 트릭 테이킹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익힐 수 있다. 

클라이밍과 트릭 테이킹
앞서 하트에 대해 설명할 때 트릭 테이킹 게임이 동북아시아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못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동아시아에도 트릭 테이킹 게임과 비슷한 게임이 있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를 ‘사다리 오르기’ 혹은 ‘클라이밍’이라 부르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