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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텔 - 퍼블리셔 이야기
코리아보드게임즈
2022-09-26


마텔

마텔은 세계 최정상급 다국적 완구 회사다. 지난 2018년 한 해동안 마텔의 총 매출은 45억 달러(원화 환산 약 5조원)를 기록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 완구 회사 중 매출 1위 자리를 유지해왔다. 마텔은 세계 곳곳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업 분야도 넓고 다양하다. 그중에는 보드게임도 있다. 마텔의 사업 전체에서 보드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드게임은 마텔의 주요 사업 분야 중 하나다.

마텔의 설립
마텔의 역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1944년 말에 시작됐다. 엘리엇 핸들러와 루스 핸들러 부부, 그리고 해롤드 맷슨이 이 회사를 함께 창업했다. 핸들러 부부는 제품 디자인과 기획에 일가견이 있었고, 해롤드 맷슨은 어떤 물건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회사의 이름은 해롤드 맷슨의 별칭 매트(Matt)와 엘리엇 핸들러의 이름 앞글자 엘(El)을 따서 만들었다(Matt +El =Mattel). 이들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38년이었다. 엘리엇 핸들러와 해롤드 맷슨은 당시 조명 기구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엘리엇은 세든 집에 오븐이 없어 곤란해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해롤드에게 혹시 오븐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해롤드는 흔쾌히 오븐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두 사람이 좀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로도 인연을 계속 이어왔다. 마텔을 설립하기 직전에는 엘자크라는 패션 액세서리를 만드는 회사를 함께 다녔다.

엘리엇 핸들러(왼쪽), 해롤드 맷슨(가운데), 루스 핸들러(오른쪽)


1944년에 해롤드 맷슨은 엘자크의 경영 방침에 반발해 회사를 그만 두었고, 자기 집 차고를 작업실 삼아 이런 저런 물품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해 9월 말에 엘리엇과 루스 핸들러 부부는 해롤드 맷슨의 집을 방문했다. 엘리엇은 해롤드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액자를 제조해 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했고, 루스도 액자가 완성되면 자신이 판매를 맡겠다고 거들었다. 며칠 후에 해롤드는 엘리엇의 디자인을 활용한 액자 샘플을 만들었고, 루스는 이를 오스틴 사진관에 가져가 선보였다. 오스틴 사진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3,000달러 어치의 액자를 주문한 것이다. 이는 현재 약 4,500만원 정도의 가치를 갖는 금액으로, 아직 정식 사업을 시작하지 않은 세 사람에겐 매우 큰 금액이었다. 더군다나 이 주문을 납품하자마자, 오스틴 사진관에서 그 두 배에 달하는 물량을 추가로 주문했다. 일을 시작한지 한 달도 안 된 1944년 10월, 해롤드의 차고로는 작업량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이들은 새로운 공장 겸 창고를 마련했다. 개인 소규모 운영으로는 벅차다고 판단하여 이들은 새로운 회사의 설립을 꿈꾸기 시작했으며, 회사의 이름으로는 두 사람의 이름을 결합한 '마텔'이 적당하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1945년, 엘리엇도 엘자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마텔을 설립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마텔의 최초 사업 분야는 액자 제조였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엘리엇은 액자를 만들고 남은 목재들을 재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냈는데, 그것은 인형 집과 그 집에 어울리는 가구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세계 최고의 완구 회사는 이렇게 완구 분야에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세 명의 창업자 중 해롤드 맷슨은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 않아 건강이 악화되어 은퇴했고, 루스가 해롤드의 역할을 맡아 수행하게 되었다.

마텔의 성장
마텔이 본격적으로 완구회사로 입지를 다진 것은 1947년이다. 당시 마텔은 장난감 형태의 우쿨렐레인 <우카두들>을 발표했는데, 이 상품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8년 후인 1955년에는 미키 마우스 클럽 TV 시리즈의 스폰서를 맡아 광고를 집행하며 완구 판매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거두고 있던 미키 마우스 시리즈의 캐릭터를 자사 완구에 결합함으로써 막대한 판매량 신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전략은 다른 완구 회사는 상상도 못했던 획기적인 마케팅 방식이었기에 마텔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완구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지만, 4년 후에 일어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959년에 첫선을 보인 바비의 모습


1959년, 마텔은 완구 업계를 크게 뒤흔드는 신상품을 발표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도 마텔의 주요 브랜드로 남아있는 바비 인형이었다. 이 상품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다름아닌 루스 핸들러였다. 딸들이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던 것을 보다가 입체적인 형태의 사람 인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한다. 큰딸 바버라의 애칭을 따 '바비'라 지은 이 인형은 발매와 함께 어린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마텔을 완구 업계 선두 주자로 끌어 올렸다. 그 후 마텔은 1963년 연 매출 1억 달러를 돌파했고, 1965년부터는 포츈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마텔의 게임 분야 진출과 좌절
마텔은 1960년대부터 다른 회사를 여럿 합병하여 몸집을 불렸고, 동시에 여러 가지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당시 마텔이 인수 합병한 회사는 디&씨 토이(1962년), 홍콩 인더스트리얼(1966년), 프리시전 몰드(1966년), 스탠다드 플라스틱 프로덕트(1966년), 로즈버드 돌(1967년), 모노그램 모델스(1968년), A&A 다이 캐스팅(1968년), 래티 발렌사스카(1969년), H&H 플라스틱(1969년), 메타프레임(1969년) 등이다.

1976년에 대기업인 워너 커뮤니케이션즈가 아타리 사를 인수하며 비디오 게임 시장에 진출했다. 비디오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마텔의 경영진으로 하여금 비디오 게임 시장에 진출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7년 에 마텔은 마텔 일렉트로닉스란 자회사를 출범함과 동시에 비디오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마텔은 인텔리비전이란 비디오 게임기를 만들었으며, 1983년까지 총 300만 대를 판매했다. 인텔리비전을 앞세운 마텔은 북아메리카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아타리에 이은 2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비디오 게임 분야는 마텔의 기대에 부흥하듯 1982년까지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1983년 북아메리카에 소위 '아타리 쇼크'라고 불리는 비디오 게임 침체기가 찾아왔다. 이로 인해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북아메리카 비디오 게임 시장이 급격히 축소됐고, 마텔 역시 이 침체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1983년 한 해에만 3억 9천 4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은 마텔은 그해 여름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자 이듬해인 1984년 1월 20일에 인텔리비전의 생산을 중단하며 비디오 게임 부문을 정리했다.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의 막대한 손실은 마텔을 파산 일보 직전까지 몰고갔다.

 

마텔이 만들었던 게임기 인텔리비전


마텔의 보드게임 분야 진출
마텔이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는 완전히 철수했지만, 게임 분야에 대한 관심을 아예 놓은 것은 아니었다. 마텔은 비디오 게임 대신 보드게임 영역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1992년까지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텔이 보드게임 시장에 제대로 진입한 것은 1992년에 인터네셔널 게임즈를 인수하면서였다. 인터네셔널 게임즈는 이미 당시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카드 게임 <우노>를 유통하던 회사였다. 이 인수로 마텔은 단번에 보드게임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업체로 올라섰다.

우노


<우노>는 쉽고 빠른 진행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카드 게임이다. 하지만 사소한 규칙이 다르다거나 특수 카드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크레이지 에이츠, 마우마우, 원카드 등 다른 게임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이 게임들 모두 자기 손에 든 카드를 모두 내려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처음에 카드 여러 장을 받은 후 앞선 플레이어가 낸 카드와 숫자나 수트가 같은 카드를 내며 진행한다. 만약 카드를 낼 수 없다면 새로운 카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노>는 가장 먼저 정식으로 상용화가 되었다는 점이 다른 게임들과 크게 달랐다. 우노는 미국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이발사 멀 로빈스가 1971년에 크레이지 에이츠를 변형해 만든 게임이다. 자기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우노를 즐기던 멀 로빈스는, 점차 게임을 즐기는 빈도가 잦아지자 우노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게임임을 직감했다. 초판으로 5,000부를 찍어 자기 이발소 손님들에게 판매했는데, 이 5,000개는 전부 입소문만으로 팔렸다. 이 게임의 잠재력을 간파한 장례식장 주인 로버트 테작이 게임의 권리를 샀고, 인터네셔널 게임즈를 설립하여 생산과 판매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로버트 테작의 안목은 정확했다. 최초 발매된 시점으로부터 50여 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우노>는 누적 판매량 1억 개를 돌파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카드 게임이 됐다. 쉽고 직관적인 규칙, 특수 카드에 의해 발생하는 의외의 상황이 주는 즐거움, 운에 의한 승부 등 <우노>가 가진 여러 가지 매력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즐거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스크래블


<우노>를 통해 보드게임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업체가 되긴 했지만, 마텔의 보드게임 제품군은 완구 업계의 영원한 숙적이라 불리는 하스브로에 크게 못 미쳤다. 인터네셔널 게임즈를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94년에 영국의 JW 스피어 앤 손즈가 매물로 나왔다. JW 스피어 앤 손즈는 단어 게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스크래블>의 전 세계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였다. 단, <스크래블>의 미국과 캐나다 판권은 하스브로가 보유하고 있었다. 즉, 하스브로에게 이번 매물은 <스크래블>의 전 세계 판권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으며, 마텔로서는 이제 막 진출한 영역에서의 제품군을 크게 강화시키는 동시에 경쟁사를 견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둘은 인수를 위한 입찰 경쟁에 돌입했고, 결국 마텔이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여 <스크래블>에 대한 권리를 취득했다.

겉보기부터 십자말풀이를 연상시키는 <스크래블>은 가로•세로 15칸으로 이뤄진 게임판 위에 알파벳 타일을 놓으며 단어를 만들어야 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모든 단어는 가로나 세로 방향으로 일렬로 만들어지며, 단어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알파벳 타일은 서로 공유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단어는 실제 유효한 단어여야 한다. 모든 알파벳 타일의 오른쪽 아래에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플레이어는 단어를 만들 때마다 자기가 사용한 알파벳 타일에 적힌 숫자만큼 점수를 얻는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사용하기 어려운 알파벳을 사용해 단어를 만들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점이다. 이 숫자는 <스크래블>을 만든 윌리엄 버츠 작가가 신문에 실린 단어를 살펴보며 각 알파벳의 출현 빈도를 계산하여 조정했다고 한다. <스크래블>을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점은 게임판에 표시된 특수 점수 칸이다. 어떤 칸은 그 칸에 놓인 알파벳 타일의 점수를 2배나 3배로 만들어주며, 또 다른 칸은 그 칸을 포함해서 단어를 만들었을 경우 단어 전체의 점수를 2배나 3배로 만들어준다. 따라서 같은 구성의 알파벳 타일을 가지고도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플레이어가 받는 점수는 천차만별이다. 즉, <스크래블>은 단순히 어휘력에 따라 단어를 잘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 아니라 알파벳 타일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에 대해 전략적인 고려를 해야 하는 게임이다.

<스크래블>은 발매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알파벳 타일로 단어를 만드는 단어 게임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문자를 이용해 단어를 만든다는 점과 타일 배치에 따른 전략성 등이 더해져 한 장르의 완성된 전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크래블>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일까? <스크래블> 이후의 단어 게임은 <스크래블>과 아예 다른 발전 방향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픽셔너리
<스크래블>의 판권 인수 경쟁에서는 마텔이 승리했지만, 사실 하스브로 입장에서는 권리를 확대할 수 있었던 기회를 상실했을뿐 대단한 손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1994년에 이 두 회사는 <픽셔너리>의 인수를 두고 또 다시 충돌했다. 당시 <픽셔너리>를 출판하던 웨스턴 퍼블리싱은 1979년에 마텔이 인수했던 회사인데, 앞서 언급했던 마텔의 파산 위기가 찾아왔던 1983년에 부동산 투자자인 리처드 A. 번스타인에게 매각됐다. 1990년대에는 웨스턴 퍼블리싱의 경영이 악화되었는데, 번스타인은 회사를 매각하기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해 핵심 사업부만 남기고, 그외의 사업부를 매각하고자 했다. 이 상황에서 마텔은 웨스턴 퍼블리싱으로부터 <픽셔너리>를 비롯한 몇 가지 게임에 대한 권리를 사오기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이때 하스브로가 나타나 웨스턴 퍼블리싱의 게임과 퍼즐 부문을 인수하면서 마텔은 <픽셔너리> 하나에 대한 그나마 일부 지역에 제한된 권리만 확보할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영어권에서 유명한 두 게임 <스크래블>과 <픽셔너리>의 판권은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인 마텔과 하스브로에게 나뉘게 되었다.


<픽셔너리>는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수에 따라 각 팀의 게임말을 움직여 가장 먼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 팀이 승리하는 간단한 구조의 게임이었지만, 주사위를 굴려 게임말을 움직이기 위해 전에 없던 새로운 조건이 추가됐다. 그건 바로 팀원 중 한 명이 카드에 적힌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른 팀원들이 제한 시간 내에 그림의 정체를 맞혀야만 주사위를 굴려 게임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픽셔너리>는 출판되자마자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으며, 1989년에는 동명의 TV 게임쇼가 제작돼 NBC 방송국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픽셔너리>는 이후에 만들어진 여러 게임에 영향을 미쳤다. <픽셔너리>처럼 그림을 그리며 진행하는 게임 대부분이 한 플레이어가 문자로 기록된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른 플레이어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맞히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텀블링 몽키


끊임없이 인수 합병을 진행하던 마텔은 1997년 아이디얼 토이 컴퍼니를 인수했다. 아이디얼 토이 컴퍼니는 1967년에 <커 플렁크>라는 게임을 출시했는데, 막대가 잔뜩 꽂힌 원통에 구슬을 부어놓고 막대를 하나씩 돌아가며 빼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막대를 하나둘 빼다 보면 어느 순간엔 구슬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고, 자기 차례에 떨어진 구슬은 각자 자기 앞으로 가져간다. 마지막 구성물이 떨어지면 게임이 끝나고, 해당 구성물을 가장 적게 가진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마텔은 이 <커 플렁크>를 개량해서 만든 새로운 게임을 1999년에 출시했는데, 이 게임이 바로 <텀블링 몽키>다.

텀블링 몽키의 원숭이에 달린 꼬리는 장식으로서도 훌륭하지만, 기능적으로도 훌륭하게 활용된다.


<텀블링 몽키>는 <커 플렁크>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모양과 구성물 구조를 비롯해 다양한 부분을 손본 게임이다. <커 플렁크>는 구슬이 떨어지려면 어느 정도 차례가 진행되어야 했지만 <텀블링 몽키>는 초반부터 원숭이가 떨어질 틈이 생기도록 만들어 초반 긴장감을 높였다. 한번 막대들의 틈 사이로 떨어지면 끝이었던 <커 플렁크>의 구슬과 달리, <텀블링 몽키>의 원숭이들은 고리처럼 말린 긴 꼬리 때문에 떨어지다가도 아래층에 꼬리로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플레이어들이 막대를 잘만 움직이면 이 꼬리를 이용해 막대에 걸려 있는 원숭이를 다른 막대로 옮기는 등 다양한 손재주를 부릴 수도 있다. 떨어트린 구슬이나 원숭이가 벌점이 된다는 구조는 <커 플렁크>와 <텀블링 몽키>가 똑같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이 발휘될 기회도 적고 구슬이 우르르 떨어지며 다소 허무하게 끝나던 게임을 초반부터 끝까지 긴장감 있는 게임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은 아주 큰 발전이었다.


이미 베스트셀러임이 검증된 상태로 마텔의 제품군에 편입됐던 <우노>나 <스크래블>과 달리 <텀블링 몽키>는 거의 아무런 인지도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기에 처음부터 마텔의 주력 게임으로 취급받지는 못했다. 특히나 완구업계에서는 한 제품의 생명 주기가 짧은 만큼, 마텔에서 <텀블링 몽키>의 위치는 시험삼아 몇 년 운영해보는 정도의 제품 취급이었다. 마텔의 다른 게임들이 결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던 2000년대의 한국에서 <텀블링 몽키>만은 유독 많이 판매됐다. 마텔에서는 이 판매 결과를 통해 <텀블링 몽키>가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좀 더 비중을 두게 된다. 그 결과 <텀블링 몽키>는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2015년엔 <텀블링 몽키>의 프랜차이즈를 확대하는 <텀블링 몽키 2>가 발매됐다.

애플 투 애플
마텔은 2007년에 아웃 오브 더 박스 퍼블리싱으로부터 베스트셀러 파티 게임 <애플 투 애플>을 인수했다. 앞선 경우와 달리 회사 전체를 인수 합병한 것이 아니라 <애플 투 애플>과 그 시리즈만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독립된 보드게임 퍼블리셔로서 운영을 계속하고 싶던 아웃 오브 더 박스 퍼블리싱과 베스트셀러 게임 하나만을 원한 마텔, 이 둘의 요구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애플 투 애플>에서 한 플레이어가 수식어가 표시된 녹색 사과 카드를 내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 수식어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명사가 적힌 빨간색 사과 카드를 1장씩 내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녹색 사과 카드를 낸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낸 빨간색 사과 카드들을 누가 냈는지 모르게 섞은 다음, 한 장씩 펼치며 읽는다. 예를 들어 녹색 사과 카드가 '무시무시한'이고, 플레이어들이 낸 카드가 '자동차', '강아지', '로케트', '풍선 검' 등이라면, '무시무시한 자동차', '무시무시한 강아지'와 같은 식으로 읽는다.모든 카드를 다 읽은 다음, 녹색 사과 카드를 낸 플레이어는 빨간색 사과 카드 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카드 한 장을 선택하고, 그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득점한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다양한 카드의 조합으로 기상천외한 단어들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 단어들이 빚어내는 혼란과 웃음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뛰어나다. 더군다나 '가장 어울리는 카드'를 선택할 때,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카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어처구니 없는 카드', '가장 많은 사람을 웃긴 카드'와 같은 식의 선택이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애플 투 애플>은 오랜 기간 최고의 파티 게임이란 평을 받았다.

한국어판이 별도로 출시되지 않았고, 카드마다 각기 다른 영어 단어가 표시되어 있어 어휘력을 요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동호인 사이에서만 회자되었을 뿐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대신 영어 단어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파티 게임으로서 인기를 얻기보다는 교육 업체에서 영어 교육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바 있다.

블로커스


마텔이 그 다음에 인수한 게임은 바로 <블로커스>다. 매우 직관적이고 간략한 규칙을 가지고 있음에도 승리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과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블로커스>는 1992년에 베르나르 타비티앙 작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다음 오랜 시간에 걸쳐 게임을 개발한 끝에 1999년에 세코이아를 통해 발매됐다. 세코이아는 <블로커스>와 그 시리즈만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블로커스>가 한 회사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블로커스>는 에듀케이셔널 인사이츠를 통해 미국에 발매된 이후 2003년에 멘사 마인드 게임 상을 수상하는 등 미국 시장에 안착했다. 이후로도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지역에서 베스트셀러로 판매되었고, 마텔이 <블로커스>를 인수한 것은 2008년에 이르러서였다.

<블로커스>는 다양한 폴리오미노 도형을 이용한 게임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똑같은 구성을 가진 폴리오미노 타일을 갖고 게임을 시작하며, 처음에는 게임판의 자기쪽 꼭지점에 타일을 놓으며 시작하고 그 다음 차례부터는 이전에 놓은 자기 타일과 꼭지점만 연결되게 놓아야 한다. 게임판 위에 타일이 하나 하나 놓일수록 필연적으로 게임판 위에는 새로운 타일을 놓을 공간이 적어지고, 누군가는 타일을 놓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타일을 놓을 수 없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막바지에 이르면 타일을 더 놓을 수 없게 된 플레이어가 나오기 시작하고, 모든 플레이어가 타일을 놓을 수 없게 되면 게임이 끝난다. 최종적으로는 게임판 위에 올려놓은 타일마다 칸 수를 세어 가장 많은 칸을 올려놓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페이즈 10


마텔은 2010년에 펀덱스로부터 <페이즈 10>을 인수했다. <페이즈 10>은 1982년 발매 이후 미국에서 <우노> 다음으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던 카드 게임인데, 이 인수로 인해 미국에서 팔리는 수많은 카드 게임 중 1위와 2위가 마텔의 것이 되었다. 참고로 <페이즈 10>은 2022년 미국 국립 놀이 박물관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를 정도로 미국에서 강햔 영향력을 발휘한 게임이다.

<페이즈 10>은 차례마다 카드 1장을 가져오고 차례를 마칠 때 카드 1장을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손에 든 카드를 일정 규칙에 맞게 조합하는 '러미' 계열의 게임이다. <페이즈 10>이 다른 러미 계열의 게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페이즈마다 완성시켜야 하는 카드의 조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페이즈 10>에선 같은 숫자로 이뤄진 카드들을 '세트'라 부르고 연속되는 숫자로 이뤄진 카드들을 '런'이라 부르는데, 각 페이즈마다 만들어야 하는 세트나 런의 조합이 다르다. 페이즈 1에선 3장짜리 세트 2개를 만들어야 하고, 페이즈 2에선 3장짜리 세트 1개와 4장짜리 런을 만들어야 하며, 페이즈 3에선 4장짜리 세트 1개와 4장짜리 런 1개를 만들어야 하는 식이다. 페이즈가 올라갈수록 점점 만들기 어려워진다. 라운드 중에 페이즈를 완성한 플레이어는 다음 라운드에 다음 페이즈에 도전하게 되고, 완성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이번 라운드에 완성하지 못한 페이즈에 다시 도전해야 한다. 따라서, 게임이 진행되면서 플레이어는 각기 다른 페이즈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 되며, 가장 먼저 10번째 페이즈인 페이즈 10을 완성시킨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고스트 헌터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마텔은 이미 판매가 검증된 베스트셀러를 인수해 자기 제품군으로 삼았다. <커 플렁크>를 개량해 새로운 게임으로 만든 <텀블링 몽키> 정도가 매우 예외적으로 보일 정도다. 사실 그동안 마텔이 자체 개발한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엔 히맨 세계관을 활용한 <마스터스 오브 더 유니버스: 이터니아의 전투>를 발매한 적도 있고, <우노>를 인수한 다음엔 '<우노>의 제조사가 만든 게임'이란 광고 문구를 붙인 여러 가지 카드 게임들을 만들어서 발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대체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설령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우노 어택>이나 <스크래블 스크램블>처럼 대체로 유명 게임의 시리즈물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2013년에 일어난 마텔 독일 지사의 새로운 시도는 매우 상징적이다.

2013년에 마텔 독일 지사는 독일 보드게임의 문법을 그대로 담은 <고스트 헌터>와 <왕을 위한 왕관>을 발매했다. 이 중 <고스트 헌터>는 2014년 독일 올해의 게임상 어린이 게임 부문을 수상하며, 독일 보드게임계의 인정을 받았다. 그해 유력한 경쟁작 중 하나였던 <할리갈리 컵스>를 제쳤다는 것도 이변이었다. 마텔은 독일 지사가 얻은 성과를 그 즉시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마텔 독일 지사에서는 꾸준히 독일식 보드게임을 발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고스트 헌터>와 같은 성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한 번의 성공은 지금까지 유명한 게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만 성공해온 마텔에게 있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고스트 헌터> 상자에 표기된 대상 연령은 만 8세 이상이지만, 독일 올해의 게임상 심사위원단은 이 게임이 만 7세의 어린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연령 표기 조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마텔은 여전히 만 8세 이상을 대상 연령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스트 헌터>가 가진 규칙의 복잡성을 감안하면 마텔이 만 8세 이상이란 표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고스트 헌터>는 <팬데믹>과 같은 협력 게임을 어린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와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규칙으로 개량한 게임이다. 모든 플레이어는 저택 안에 배치된 보석 8개를 모은 다음 탈출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차례마다 주사위를 굴린 결과에 따라 움직이고, 보석을 얻는다. 주사위를 굴려 유령 그림이 나오면 저택에 유령이 나타나며, 유령이 하나둘 모이다 보면 강력한 붉은 유령으로 변하기도 한다. 붉은 유령 여섯이 등장하면 패배하므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보석을 모아 저택을 탈출하거나, 유령을 퇴치하며 패배 조건의 등장을 지연시켜야 한다. 유령 하나하나에 홀로 대항할 수도 있지만 혼자서는 유령을 물리치기 어려운 반면 여럿이 함께 모이면 유령에 대항하기 쉬워진다. 특히 붉은 유령과는 혼자서는 대항할 수 없고 붉은 유령이 있는 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도 다른 플레이어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유령과 대항하는 부분이 <고스트 헌터>의 핵심적인 요소이자 매력 포인트다.

마치며
마텔이 보유한 보드게임 제품군으로 미루어보아, 마텔 보드게임 사업의 방향은 매우 명확해 보인다. 검증된 베스트셀러를 인수하고 그렇게 인수한 보드게임을 전 세계에 판매하는 것이 지금까지 마텔의 주된 방식이었다. 물론 이것은 세계 최정상급 완구 기업이자, 전 세계에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기에 세울 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시장은 점점 바뀌기 마련이고, 마텔이 <우노>를 인수한 지도 벌써 27년이 지났다. 마텔에서도 독일 지사 같은 새로운 시도들을 하나씩 추가해가고 있다. 액자를 만들다 남은 자투리 목재들이 마텔을 완구회사로 바꿔놓았듯이, 20년 후 마텔에게 보드게임의 의미가 어떤 것이 될지는 모르는 법이다.